전국 곳곳에서 데이터센터 건설을 둘러싼 님비 갈등이 번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신규 데이터센터에 대한 금지·제한 조치가 지난 6월 말 300건에서 한 달 만에 500건을 넘어섰다. 전력망 확충 비용이 결국 지역 전기요금 인상으로 돌아온다는 불안이 근저에 깔려 있다. 데이터센터 한 곳이 완공된 뒤 실제로 고용하는 인력은 수십 명에 그친다. 반면 그 여파는 변전소 증설과 송전선 보강이라는 형태로 지역 전체에 퍼진다. 공교롭게도 한국 정부는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데이터센터 사업자에게 자체 전력원 확보와 전력망 접속 비용 부담을 요구하는 해외 흐름과 달리, 재생에너지와 원전·화석연료를 조화롭게 활용해 안정적 전력을 공급하고 AI 데이터센터 전용 요금제까지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정책적 혜택이 실제 부지·전력 확보라는 물리적 제약까지 풀어줄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이런 흐름이 계속된다면 정부가 잡은 AI 데이터센터 확충 목표치를 육지에서만 채울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설령 부지 문제를 넘더라도 더 큰 벽이 남는다. 전력이다. 데이터센터 한 곳이 원전 한 기에 맞먹는 전력을 상시로 요구하는 시대에, 그 많은 전기를 어디서 끌어올 것인가. 지난달 14일 방한한 빌 게이츠 테라파워 이사회 의장은 정기선 HD현대 회장과 서울에서 만나 소형모듈원전(SMR)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데이터센터, 해상풍력, 원전. 언뜻 서로 다른 세 산업처럼 보이지만 공통분모가 하나 있다. 바로 ‘부유식’이다. 이 세 산업의 한가운데에는 뜻밖에도 선박을 만들던 조선업이 있다. 해양플랜트로 다져온 기술이 이제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다.
부유식 데이터센터, 육지의 한계를 넘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10월 오픈AI와 부유식 데이터센터(FDC) 공동 개발 협력체계를 구축했고, 최근 미국선급과 로이드선급으로부터 50메가와트급 FDC 개념설계 인증을 받았다. HD한국조선해양도 지난 7월 8일 슈나이더일렉트릭과 FDC 인프라 기술 공동개발 업무협약을 맺었다. 김형관 HD한국조선해양 대표와 권지웅 슈나이더일렉트릭코리아 대표는 협약식에서 “글로벌 데이터센터 기술 역량과 조선·해양 엔지니어링 노하우를 결합해 차세대 FDC의 새 기준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바다 위에 데이터센터를 띄우는 이유는 명확하다. 육상 데이터센터는 전체 사용 전력의 절반가량을 냉각에 쓰는데, 해수를 냉각수로 직접 활용하면 이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부지 확보난과 긴 인허가 기간, 그리고 앞서 언급한 주민 반대라는 세 가지 장애물에서도 비교적 자유롭다. 필요하면 위치를 옮길 수 있다는 점도 육상 시설에는 없는 장점이다. 국내 조선 빅3 모두 FDC 사업에 진출했거나 검토 중이며, 삼성중공업은 대만 정보통신 박람회 ‘이노베이트 APAC 2026’에서 미국 AI 서버업체 수퍼마이크로와도 공동개발협력을 체결했고, 로이드선급 산하 컨설팅사 로이드어드바이서리와 북미 데이터센터 인프라 분석·시장성 평가에서도 손을 잡았다.
업계에서는 이런 행보를 조선업의 ‘탈전통 산업화’ 사례로 본다. 선박 건조 중심이던 사업 구조가 해상 플랜트, 해양에너지, 디지털 인프라로 영역을 넓히는 구조적 전환이라는 평가다. 다만 아직 세계적으로 상용화 사례가 드문 초기 시장이라, 해상 환경 특유의 진동·경사·염분·습도 변화가 정밀 AI 서버의 수명과 안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실증을 거쳐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부유식 해상풍력, 조선업의 완충재가 되다
해상풍력은 크게 바다 밑바닥에 기초를 박는 고정식과, 발전기 자체를 물 위에 띄우는 부유식으로 나뉜다. 고정식은 수심이 얕아야 유리해 유럽과 중국이 앞서 있지만, 한국 동해안처럼 수심이 깊은 지형에서는 오히려 부유식이 현실적인 대안이 된다.
한국석유공사는 2021년 생산이 끝난 동해가스전 플랫폼을 해상변전소로 재활용해, 26만 세대가 쓸 수 있는 78만MWh 규모의 국내 최초 부유식 해상풍력 사업을 추진 중이다. 울산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추진 가능한 울산 부유식 해상풍력 사업은 총 3.6GW 규모로, 모두 조성되면 연간 약 1만2500GWh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울산의 2024년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이 750GWh였던 것과 비교하면 압도적인 규모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 산업이 조선업의 고질적 약점을 보완해준다는 사실이다. 조선업은 해운사 발주에 좌우되는 수주산업 특성상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데, 부유식 해상풍력은 정부의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15년 단위로 물량이 예측되는 계획산업이다. 대형 강재 가공과 용접, 도장, 해양 물류라는 동일한 인프라를 쓰면서도 수요가 안정적이니, 조선업의 수주 변동성을 완충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생에너지 카드로 꼽혀온 부유식 해상풍력은 한동안 고전을 면치 못했다. 고금리로 자금 조달 비용이 치솟으면서 개발사들의 사업성 셈법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올 상반기 부유식 해상풍력 고정가격계약 입찰에서 해울이2가 선정됐고,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 6월 30일 향후 10년간 55GW, 해마다 4GW 이상을 공고하는 중장기 입찰 로드맵을 내놓으며 그중 울산 부유식 해상풍력만 2031년까지 4.3GW를 보급하겠다고 못박았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한국이 2040년이면 세계 4대 부유식 해상풍력 보급국이 될 것으로 내다본다.
해외 상황을 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게 실감 난다. 영국풍력산업협회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실제 가동 중인 부유식 해상풍력은 7개국 16개 사업, 총 277메가와트에 그친다. 노르웨이가 100메가와트(3개 사업)로 가장 앞서고, 영국 78메가와트(2개), 중국 40메가와트(5개)가 뒤를 잇는다.
다만 계획·개발 단계까지 포함한 전 세계 파이프라인은 324개 사업, 221기가와트 규모로 지금의 발전량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크다. 2030년까지는 중국과 영국이 전체의 45%, 41%를 차지하며 시장을 이끌 것으로 전망되고, 프랑스·노르웨이·일본은 2030년대에 본격적으로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 국가들은 올 1월 북해 해상풍력을 2040년까지 100기가와트로 확대하고 부유식 개발도 함께 가속화하기로 합의했다. 프랑스는 올 하반기 약 5기가와트 규모의 부유식 입찰을 시작한다.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부유식 조달 사업으로, 이 입찰의 흥행 여부가 프랑스 부유식 시장이 상업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전 세계 해상풍력 자원의 80% 이상이 수심 60미터를 넘는 심해에 있다는 점에서, 부유식은 이제 대안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주류가 될 수밖에 없는 기술로 꼽힌다.
부유식 원전, 빌 게이츠가 다시 찾은 이유
세 산업 중 가장 극적인 진전을 보이는 곳은 원전이다. 삼성중공업은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개발한 일체형 소형모듈원자로 ‘SMART 100’ 2기를 탑재한 부유식 해상 원자력발전 플랫폼 ‘FSMR’의 개념설계 인증을 이미 획득했다. 원자로와 안전시스템을 하나의 격납용기 안에 모듈화해 선상 탑재 전 육상에서 충분히 시험·검증할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HD현대의 행보는 한층 구체적이다. HD한국조선해양은 지난 5월 테라파워가 개발하는 나트륨 원자로의 핵심 설비인 원자로 인클로저 시스템 제작·공급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투자자에서 실제 제작사로 역할이 확대되는 단계다. HD한국조선해양은 2022년 11월 테라파워에 3000만달러를 투자한 것을 시작으로, 2024년 12월에는 테라파워가 미국 와이오밍주에 짓는 345메가와트급 소듐냉각고속로에 들어갈 원자로 용기 제작을 수주했다.
지난 14일 회동에서 정기선 회장과 빌 게이츠 의장은 기술·제조·시공을 아우르는 협력체계를 기반으로 나트륨 원자로 상용화 방안을 논의했다.
정 회장은 “기술, 제조, 시공을 아우르는 협력체계를 기반으로 차세대 원자로 상용화에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며 “자체적인 기술 개발과 글로벌 기업들과의 협업을 통해 SMR 발전 수요 증가에 적극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초대형 선박과 해양플랜트를 만들어온 조선업의 고난도 용접, 품질보증, 대형 구조물 제작, 모듈화 역량이 원자로 기자재 제작으로 그대로 확장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같은 날 게이츠 의장은 SK그룹 경영진과도 만나 ‘한국형 나트륨’ 사업모델을 논의했고, SK이노베이션은 테라파워와 SMR 사업협력 주요 조건 합의서를 체결했다. 마침 이달 SMR 특별법 시행과 첫 건설부지 선정이 예정돼 있어, 제도적 기반도 함께 갖춰지는 시점이다.
세 산업을 관통하는 것은 결국 하나의 질문이다. 육지가 감당하지 못하는 것을 바다가 대신 감당할 수 있는가. 데이터센터는 냉각과 부지, 해상풍력은 수심과 변동성, 원전은 부지 확보와 주민 수용성이라는 각기 다른 육상의 제약을 바다라는 같은 해법으로 우회한다.
이 흐름에서 한국이 유독 유리한 이유는 LNG를 실은 채 바다 위에서 원유를 생산·저장·하역하는 부유식 설비와 해양플랜트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건조해온 조선 3사의 축적된 기술 때문이다. 선박 한 척을 파는 대신, 데이터센터라는 부동산을, 발전소라는 인프라를, 원자로라는 설비를 파는 사업으로 영역을 넓히는 셈이다.
해외 협력 역시 이 구조를 뒷받침한다. 오픈AI·수퍼마이크로와의 데이터센터 협력, 테라파워와의 원전 협력 모두 한국의 제조 역량을 발판 삼아 미국이라는 세계 최대 에너지·AI 수요처를 정조준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국내 시장만으로는 규모의 경제를 만들기 어려운 신산업일수록, 처음부터 글로벌 빅테크·에너지 기업과 손잡는 전략이 필수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낙관만 할 일은 아니다. 데이터센터는 해상 환경의 진동과 염분, 습도 변화가 정밀 서버에 미치는 영향이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고, 해상풍력은 입찰 제도가 고도화되는 하반기까지 정책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 원전은 인허가와 안전 규제, 손해배상 책임 체계 정비가 상용화의 최종 관문이다. 원자력 추진선과 부유식 원자로에 대한 국제 규제 체계 마련 논의도 아직 진행 중이며, 원자로 자체의 안전성뿐 아니라 선박 운항과 항만 입출항, 핵안보, 손해배상까지 여러 규제가 동시에 걸려 있어 상용화까지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다.
세계 시장을 봐도 초기 국면이다. 부유식 해상풍력의 전 세계 실제 가동량이 300메가와트에도 못 미친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파이프라인의 규모와 실제 가동량 사이의 간극이 클수록, 그 간극을 먼저 메우는 기업과 국가가 시장을 선점하게 된다. 그럼에도 육상의 물리적 한계가 뚜렷해지는 지금, 바다는 더 이상 조선업만의 영역이 아니라 데이터센터·에너지·원자력 산업이 함께 겨루는 새로운 격전지가 됐다. 배를 만들던 나라가 이제 바다 위에 산업 전체를 띄우려 하고 있다. 조선업의 다음 반세기를 결정할 승부는 이미 도크가 아니라 이 세 산업의 실증 현장에서 갈리고 있다.
bonsang@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