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예보와 함께한 34년…두려움의 연속

WMO 기준 강수예보 정확도 90% 넘지만

특정 지역·단시간 폭우 땐 “틀렸다” 비난

폭염·열대야 특보 신설…선제 대응에 주력

‘긴급재난문자’ 발송 시스템 구축 보람느껴

극한날씨 최선 다해 예보…응원·애정 당부

이미선 기상청장이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동작구 기상청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이미선 기상청장이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동작구 기상청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예보가 크게 빗나간 다음 날이요? 한마디로 ‘초상집 분위기’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 것 같습니다.”

365일 24시간. 우리의 일상을 좌우하는 날씨에 대한 모든 서비스를 담당하는 기상청. 99번 정확한 예측이 이뤄지더라도 단 한번의 오차로도 큰 질타를 받는 게 기상청의 숙명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오늘도 사명감을 갖고 날씨를 예측하는 데 진심이다.

지난달 31일 취임 1주년을 맞은 이미선 기상청장을 만나 이런 날씨 예보의 어려움에 대한 질문부터 던졌다. 이 청장은 “날씨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진 만큼 예보가 빗나갔을 때 쏟아지는 비판도 한층 커졌다”며 “기상청 내부에서 느끼는 무게는 그보다 훨씬 크다”고 했다.

예보를 보고 행사나 여행 일정을 취소해 경제적 손실을 입는 경우도 있고 예상보다 많은 비가 내려 인명·재산 피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래서 예보관들은 ‘비가 온다’는 예보를 내놓고 퇴근한 뒤에도 실제로 비가 내릴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청장은 “예보관들은 사후 분석을 통해 놓친 부분은 없었는지, 원인은 무엇이었는지 살펴본다”며 “수치예보 모델에 개선할 점은 없는지, 변화된 상황을 제때 잘 전달했는지 등을 끊임없이 점검하고 개선하려고 노력하지만 자연 앞에서 겸허해지는 순간이 많다”고 말했다.

34년간 기상청에서 근무한 이 청장에게도 잊히지 않는 날들이 있다. 그는 예보관 시절 가장 긴장했던 2010년 추석 연휴 첫날을 떠올렸다. 당시 서울에는 천둥·번개를 동반한 시간당 최대 100㎜의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광화문역과 강남역 사거리 등 곳곳이 침수됐고 이날 강서(287.5㎜), 강남(280㎜), 마포(274.5㎜), 강동(262㎜) 등 곳곳에서 많은 강수량이 기록됐다.

이 청장은 “‘물 폭탄 맞은 서울, 광화문 등 곳곳이 물바다’라는 당시 기사 제목이 지금도 떠오른다”며 “비가 온다는 예보 자체는 맞았지만 예상보다 훨씬 많은 비가 내리면서 예보관들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총괄 예보관으로 근무할 때는 ‘힘들다’는 생각보다 ‘두렵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했다. 이 청장은 “‘더 정확하게 예보했다면 괜찮았을까’, ‘앞으로 어떻게 해야 더 정확한 예보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계속 던졌다”며 “예보관의 역할과 책임이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지 절감하게 해준 사례도 많았다”고 전했다.

‘강수예보 정확도 90%’인데…왜 국민은 못 믿을까

기상청이 고민하는 지점은 단순한 적중률 만이 아니다. 현재 기상청의 강수예보 정확도는 세계기상기구(WMO)의 평가 기준으로 90%를 넘는다.

하지만 국민이 체감하는 정확도는 이와 다르다. 이게 날씨를 예보하는 기상청의 가장 큰 어려움이다. 넓은 지역 대부분에 예보한 만큼 비가 내렸더라도 특정 지역에 짧은 시간 폭우가 쏟아지면 해당 지역 주민에게는 ‘비 예보가 틀렸다’고 느껴질 수 있다.

이 청장은 “기후변화로 강수가 국지적으로 강해지는 경향이 나타나면서 기존의 예보 정확도와 국민 체감 사이에 간극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기상청은 3시간 누적 0.1㎜ 이상을 ‘비가 온 것’으로 판단하는 기준을 사용하고 있다. 이 청장은 이런 기준부터 다시 들여다보고 국민이 실제로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예보 정확도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기상청이 집중하는 것도 한발 더 나아간 체감형 기상정보다. 예보를 맞히는 것 뿐 아니라 국민이 위험을 미리 알고 실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는 설명했다.

폭염·호우 예보도 ‘더 일찍, 더 촘촘하게’

기상청은 올해 18년 만에 폭염 대응 체계를 손질했다. 기존 폭염특보에 더해 폭염중대경보와 열대야주의보를 도입했다. 지난 7월 경북 경산과 포항에서 처음 폭염중대경보가 발령되면서 관계기관이 함께 대응하는 체계도 가동됐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폭염이 발생하기 4~5일 전부터 발생 가능성을 단계별로 알려주는 방안도 추진한다. 폭염이 닥친 뒤 대응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사전에 대비할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다.

호우 예보도 바꾸고 있다. 수도권에서 시범 운영 중인 호우특보 해제예보를 전국으로 확대하고 2027년에는 3일 전부터 호우 발생 가능성을 단계별로 제공하는 체계를 구축할 예정이다. 예비특보부터 특보, 긴급재난문자, 해제예보까지 이어지는 전 생애주기형 예보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예보의 시간과 공간도 촘촘해진다. 오는 11월부터는 5㎞ 격자의 중기예보를 최대 11일까지 제공한다. 기후변화를 보여주는 핵심 기후변수 94개를 선정하고 국가 차원의 기후변화 감시체계를 구축한 것도 지난 1년간의 변화다.

그는 기상청이 추구하는 것은 단순히 예보 적중률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고 했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국민에게 필요한 정보를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하느냐가 중요한 과제라는 설명이다.

이 청장이 기상청에서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으로 꼽은 것도 이런 변화가 실제 재난 대응으로 이어진 사례였다. 그는 기후변화감시예측법 제정과 함께 2017년 포항에서 규모 5.4의 강진이 발생했을 당시 지진조기경보 체계를 구축한 일을 꼽았다. 당시 지진화산국장이었던 이 청장은 ‘1초라도 빨리 지진 정보를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포항 지진을 계기로 기상청이 직접 긴급재난문자를 발송하는 시스템이 구축됐고 지진조기경보 시간도 단축됐다. 기상청은 이후 국회에서 ‘지진 진동을 느끼기도 전에 지진 재난문자를 먼저 수신했다’며 박수받기도 했다. 당시 약 26초가 걸리던 지진조기경보는 현재 7초 내외까지 빨라졌다.

AI가 다 맞히면 예보관은 필요 없을까…“오히려 역할 중요”

기상예보 환경에도 인공지능(AI)이 화두다. 기상청은 구글의 그래프캐스트, 엔비디아의 포캐스트넷, 화웨이의 판구, 유럽중기예보센터의 AIFS 등 해외 AI 예보모델을 활용하는 한편 한국형 기상 AI 기반모델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한국형 수치예보모델도 고도화하고 있다. 한국은 자체 전 지구 수치예보모델을 보유한 세계 9개국 가운데 하나다. 현재 8㎞ 격자의 전 지구 예측모델을 운영하고 있으며 올해 6~7월 기준 예측 성능은 세계 4~5위 수준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이 청장은 AI가 인간 예보관을 대신할 수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AI는 과거의 방대한 기상자료를 학습해 미래를 예측하지만 기후변화로 과거에 없었던 극한 기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청장은 “역설적으로 기후변화로 극한 기상이 많아질수록 인간 예보관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기술이 발전할수록 예보관에게 요구되는 역할도 달라진다고 그는 강조한다. 수치예보모델과 AI가 내놓은 수많은 예측자료를 바탕으로 급변하는 상황을 판단하고 국민에게 어떤 정보를 언제 전달할지 결정하는 마지막 판단은 사람의 몫이라는 것이다.

완벽한 예보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예보가 틀렸다면 원인을 찾고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더 정확하게 예측하기 위해 모델을 개선하고 관측망을 촘촘하게 만들고 예보관의 판단력을 높이는 것. 34년간 기상청에 몸담은 이 청장이 말하는 ‘예보의 과정’이다.

이 청장은 “기후변화로 점점 어려워지는 날씨에 대항해 자연의 한계를 극복하고 주어진 환경 내에서 최선을 다해 기상예보를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보관들은 밤낮없이 일하고 예보를 내놓은 뒤에도 실제 날씨가 지나갈 때까지 마음을 놓지 못한다. 예보가 빗나간 날에는 자신을 탓하며 사후 분석에 매달린다고 한다. 이런 예보관들에 대해 이 청장은 국민들의 응원과 애정을 부탁했다.

이 청장은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의 수치모델, 조기경보 기술, 레이더운영 기술, 위성운영 기술 등 선진기상이 ‘K-기상’이라는 이름 아래 전 세계로 뻗어 나가길 바란다”며 “꿈을 이뤄 나가는 기상청이 되기 위해 다시금 최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전새날 기자

이미선 청장이 걸어온 길

▷ 1966 부산 출생

▷ 1989 이화여대 과학교육과 졸업

▷ 1991 서울대 대기과학 석사 졸업

▷ 1992 기상청 기상연구사 입직

▷ 1999 서울대 대기과학 박사 졸업

▷ 2009 예보상황과장, 총괄예보관, 예보정책과장

▷ 2015 국가기상위성센터장

▷ 2016 관측기반국장

▷ 2017 지진화산센터장, 지진화산국장

▷ 2019 광주지방기상청장

▷ 2021 기후과학국장

▷ 2025 수도권기상청장

▷ 2025 제17대 기상청장


newda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