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두 여인’
일본 국민은 국가와 사회가 위기라고 느끼는 순간 강하게 결속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 결속의 중심에는 항상 천황제가 자리 잡고 있다. 이때 여성이 전면에 등장하여 국면 돌파를 해낸 역사적 사례가 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7세기 후반에 나라 지역을 중심으로 활약한 지토 천황이다. 그녀는 일본 고대 역사상 가장 강력한 통치력을 발휘한 천황으로 평가받는다.
지난해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나라(奈良) 여인’이란 화두를 던지며 현대 일본정치에서 여성 최초로 집권 자민당 총재와 총리 자리에 오른 뒤에, 전격적인 중의원 해산이란 승부수를 던져 개헌선을 훌쩍 뛰어넘는 의석수를 확보하며 순식간에 정국 주도권을 장악했는데, 흥미롭게도 이런 과단성 있는 행보가 지토 천황을 연상케 한다.
다카이치 총리가 태어나고 자란 나라현은 지토 천황이 천황제를 확립하고 일본이란 국호를 최초로 사용하며 국가로서의 뼈대를 세운 곳으로 현대 일본 국가 정체성의 발원지다. 나라현에는 다카이치군이란 지명이 있다. 이곳은 온돌 유적이 발견되는 등 오래전부터 한반도 출신 도래인들이 터를 닦고 살아온 곳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나라 지방은 다카이치 총리의 정치를 해독하는 데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곳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번 회에서는 또 한 명의 ‘나라의 여인’ 지토 천황의 파란으로 점철된 일생을 소개한다.
남편과 함께 쿠데타 거사
우노노 사라라(후에 지토 천황)의 인생은 초년기부터 험난했다. 5세 때 외조부가 모반 혐의로 부친 나카노 오에 황자(후에 덴치 천황)에게 자결을 강요당해 사망하고 이에 정신적 충격을 받은 모친도 세상을 뜨는 비운을 겪었다. 13세가 되던 해에는 부친이 자기 동생 오아마(후에 덴무 천황) 황자에게 딸 4명을 정략결혼으로 시집을 보내 동생을 자기 영향력 아래에 묶어두려고 했는데 여기에 그녀도 포함되었다.
덴치 천황은 그의 아들 오토모 황자에게 후계자 자리를 물려주려는 생각을 굳히자 아들의 강력한 경쟁자인 동생을 살해하려고 기도했다. 이 낌새를 알아차린 오아마 부부는 언제 살해당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갖자 즉시 삭발하고 출가를 핑계 삼아 친아들을 데리고 나라 지방의 요시노로 피신하여 은둔 생활에 들어갔다. 덴치 천황이 사망하자 오아마는 은둔지 요시노에서 나와 군사를 일으켜 쿠데타에 성공했다. 이때 우노노 사라라는 남편의 여러 부인 가운데 유일하게 남편과 사선을 함께 넘었다. 정권을 장악한 오아마가 천황에 즉위하자 우노노 사라라는 황후로 등극했다.
천황제 확립하여 일본 국가 형성의 초석을 다져
덴무 천황은 재위 중에 “황후는 항상 천황 곁에서 정치에 조언했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듯이 우노노 사라라 황후와 공동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황후가 낳은 아들 구사카베 황자를 후계자로 지명했다. 덴무 천황은 병석에 눕자 “천하의 모든 일은 대소사를 막론하고 황후와 황태자에게 보고하라”라고 칙명을 내려 두 모자가 공동으로 정무를 맡도록 했다. 우노노 사라라 황후는 686년 남편 덴무 천황이 사망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아들의 경쟁자인 오쓰 황자에게 모반 혐의를 뒤집어씌워서 숙청하는 등 잔혹한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덴무 천황 사망 3년 후에 아들 구사카베가 병에 걸려 급사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의 뒤를 이을 인물은 나이가 고작 7세에 불과한 구사카베의 아들 가루 황자(후에 몬무 천황)밖에 없었다. 그러자 황후는 정치 수완을 발휘해서 손자가 성인이 될 때까지 스스로 천황에 즉위하는데 이 여성 천황이 바로 지토 천황이다. 그녀는 가루 황자가 14세가 되자 천황 자리를 그에게 물려줬다. 702년에 세상을 뜬 지토 천황은 남편 덴무 천황, 본인, 손자 몬무 천황의 3대에 걸쳐 일본에 여인천하 시대를 연 여걸로 평가받는다.
그녀가 남긴 주요 업적으로는 ‘일본’을 국호로 정하고 ‘천황’ 호칭을 대내외적으로 사용하게 한 것을 들 수 있다. 또한 최초의 본격적인 법전인 다이호율령을 제정하여 일본 국가 형성의 초석을 다졌고, 수도 후지와라경을 조성했다. 이밖에도 아스카키요미하라령을 시행하여 호족들이 소유하고 있던 토지와 백성들을 모두 천황의 소유로 정해 천황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천황제 중앙집권 국가의 틀을 확립했다.
통일신라와 견고한 우호 관계 구축
지토 천황이 일본정치의 중심에 서 있던 덴무·지토·몬무 천황 시기에 일본은 친신라 외교 노선을 취하며 통일신라에 승려와 유학생으로 구성된 견신라사를 파견하여 교류를 활발하게 전개했다. 신라는 지토 천황이 사망하자 조문 사절을 보내왔고, 일본은 신라 효소왕이 사망하자 신라 사절에게 애도를 표하며 예를 갖추기도 했다. 한일 역사에서 이때가 양국 간 우호 관계가 가장 견고한 시기로 기록된다.
‘신라 사나이’ 이재명 대통령과 ‘나라 여인’ 다카이치 총리가 먼저 나라에서 만나 우의를 다졌고 이번에는 안동에서 만나 신뢰를 굳혔다. 필자는 다카이치 총리가 1350여 년 전에 신라와 우호 관계를 이끌던 지토 천황과 오버랩되면서 앞으로 한일 양국 정상 간의 셔틀 외교도 밀도를 더하며 순항할 것이라는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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