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에 밀려났던 오프라인이 돌아오고 있다. 극적인 반전은 아니다. 장을 보러 가는 곳이 아니라 시간을 보내러 가는 곳. 오프라인의 문법이 달라졌다. 질문은 간단하다. 오프라인은 어떻게 살아남았나. 답은 역설적이다. 덜 팔았다. 그랬더니 더 팔렸다.
대형마트의 공식은 명확했다. 넓은 매장과 저렴한 가격. 소비자는 빠르게 장바구니를 채우고 떠났다. 체류 시간은 짧을수록 효율적이었다. 온라인은 이 공식을 깼다. 가격 비교는 손안에서 이뤄졌다. 배송은 주문한 다음 날 도착했다. 마트가 제공하던 편의와 가격이라는 강점은 온라인으로 완전히 넘어갔다.
오프라인은 한 가지에 집중했다. 고객이 얼마나 머무는가. 사러 오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머물다 사게 만드는 전략이었다. 더현대 서울이 이를 먼저 증명했다. 현대백화점은 개장 당시 전체 면적의 절반 가까이를 조경과 휴식 공간에 할애했다. 그 결과 백화점 사상 최단기간 연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이 공식은 업계 전체로 퍼졌다. 성과도 이어지고 있다. 중동발 리스크와 고물가, 소비 침체에도 백화점과 대형마트는 올해 1분기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방식은 달랐지만, 방향은 같았다. 공간을 바꿨더니 고객이 돌아왔다.
대형마트 진영에서 가장 과감하게 움직인 건 이마트였다. 킨텍스점에선 마트를 통째로 들어냈다. 식품 매장이 있던 자리에 식당과 카페를 채웠다. 처음엔 실패처럼 보였다. 빈 공간이 더 많았다. 의미 없는 할인 행사와 어색하게 놓인 의자가 그 자리를 채웠다. 2년이 지난 지금은 상전벽해다. 테넌트가 꽉 들어찼다. 지하 트레이더스 매출까지 덩달아 올랐다. 같은 방식으로 리뉴얼한 스타필드마켓 죽전점은 이마트 전 점포 중 매출 1위에 올랐다.
파주 운정신도시 아파트 단지 안에 문을 연 스타필드 빌리지도 마찬가지다. 개장 한 달 만에 방문객은 100만명을 넘겼다. 대형 스타필드의 10분의 1 규모지만 집객력은 그에 못지않다. 핵심은 규모가 아니라 밀도다. 사는(buy) 공간이 아니라 사는(live) 공간. 인근 주민이 슬리퍼를 끌고 내려와 하루를 보내는 곳이 됐다.
체류형 복합몰 생태계에서 앵커(집객점) 역할을 하는 브랜드도 바뀌었다. 과거 대형마트의 앵커는 식품 판매대였다. 지금은 다이소와 올리브영이다. 다이소는 가성비와 재방문율로 대형마트를 압도하는 수익성을 만들었다. 올리브영은 오프라인 매장을 체험 거점으로 삼아 온라인과 연결하는 옴니채널 전략으로 독보적인 지위를 구축했다. 해당 브랜드가 입점하면 인파가 모인다. 주변 매장의 매출로 이어지는 선순환도 생긴다.
다만 체류형 모델이 만능은 아니다. 공간을 비우고 테넌트로 채우는 구조는 결국 임대 수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입점 브랜드의 수익성이 떨어지면 공실이 된다. 공실은 집객력을 깎는다. 모든 오프라인이 같은 전략을 쓰면 차별화도 사라진다. 전략보다 깊이가 중요하다.
온라인의 강점이 가격과 속도라면, 오프라인의 깊이는 시간과 재미에서 나온다. 가격표가 아닌 경험이 지갑을 연다. 도파민은 촉매로 작용한다. 팔지 않는 공간이 더 많이 파는 역설. 오프라인 유통의 생존법은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정찬수 소비자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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