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현 국회의원·인천 동구·미추홀구을

수레는 두 바퀴로 굴러간다. 대한민국 제헌의원들이 헌법 제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새겨 넣은 것도, 이 수레의 두 바퀴를 염두에 둔 선택이었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한국 정치는 민주와 공화, 두 바퀴를 함께 굴리지 못했다. 민주화와 성장의 성과는 있었지만, 공화의 바퀴는 심하게 닳아 있다.

민주화 이후 우리는 ‘민주’를 외치며 다수결과 선거, 거리의 함성을 중시해 왔다. 반면 ‘공화’가 요구하는 숙의와 절차, 공공선과 책임의 정치는 뒷전으로 밀렸다. 그 결과 민주공화국의 간판은 지켜냈지만, 공정과 정의에 대한 체감 지수는 바닥이다. 청년들은 “이게 나라냐”에서 “어차피 아무것도 안 변한다”는 냉소로 이동했다.

선거 때마다 정당들은 개혁과 혁신을 외치지만, 실제 돌아가는 장면은 다르다. 전략 공천, 낙하산 인선, 진영 동원에 의존한 선거전이 반복된다. 개혁과 혁신의 언어는 요란한데, 공화의 언어는 들리지 않는다. 다수결에 기대는 민주주의의 독주가 어떤 폐해를 낳는지, 우리는 충분히 체험하고 있다.

지금 한국 보수가 처한 위기 역시 이 지점과 맞닿아 있다. 보수는 자유와 안보, 성장의 가치를 내세워 국정 운영을 책임져 왔지만, 동시에 권력 사유화와 동원 정치로 공화주의 원칙을 스스로 훼손해 왔다. 탄핵과 분열, 팬덤 정치의 확산은 그 결과다. 보수의 재건을 말하려면, ‘공화주의’라는 가치를 다시 꺼내야 한다.

공화주의는 시민이 주권자로서 공공의 이익을 중심에 두고 국가를 운영하며, 권력이 사유화되지 않도록 제도와 덕성을 통해 끊임없이 견제하는 정치 원리다. 특히 현대사회에서 신공화주의는 자유를 “간섭의 부재”가 아니라 “비지배”로 이해한다. 타인의 자의적인 지배를 받지 않는 상태, 언제든 목줄을 당길 수 있는 권력 앞에 예속되지 않는 상태가 진정한 자유라는 것이다.

한국적 현실에서 ‘비지배 자유’는 정치 권력의 지배를 넘어서야 한다. 재벌과 금융, 플랫폼과 알고리즘, 지역·학벌·노조·관료조직까지, 시민의 삶을 움켜쥔 다양한 지배 구조로부터의 자유로 확장되어야 한다. 직장에서의 해고 위협, 주거·대출에서의 불평등, 데이터와 기술을 독점한 플랫폼의 일방적 규칙, 특정 진영과 팬덤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면, 형식적 민주주의만으로는 공화국의 자유를 지킬 수 없고 사회발전도 없다.

세계 경제질서도 급변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 기술 패권 경쟁, 에너지·식량 위기가 중첩되며, 각국은 자국 산업과 시민의 삶을 지키기 위한 새로운 규칙을 모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시장 만능주의와 금융 자본의 지배를 견제하고, 국가와 시민이 함께 공공의 방향을 설정하는 공화주의적 리더십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런 세계적 흐름과 한국의 특수 상황을 함께 고려할 때, 내가 제안하는 것은 ‘K-자유공화주의’다. 자유와 민주, 공화를 보수의 핵심 가치로 다시 세우되, 자유를 “비지배 자유”로 재정의하고, 한국 사회 곳곳의 지배 구조로부터 시민을 해방하는 방향으로 공화주의를 재구성하자는 제안이다. 이것은 추상적 철학이 아니라, 노동·주거·교육·플랫폼·지역 불균형을 바로잡는 구체적 정치 프로그램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 기준 위에서 공화주의의 다섯 축을 다시 짚어볼 수 있다. 첫째, 법치주의다. 법은 권력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아니라 권력을 제한하는 장치다. 법치가 무너지면 권력은 곧바로 사유화되고, 민주공화국의 토대는 붕괴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사기관과 규제기관, 감사기관이 ‘우리 편의 칼’로 보인다면 법치는 이미 선택적 법치로 전락한 것이다. 정치가 법치를 말하려면, 먼저 권력이 법 앞에 서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둘째, 권력 분립과 견제다. 입법·행정·사법의 분립은 헌법 교과서에만 나오는 장식이 아니다. 어느 한 축이 비대해지면 공화국은 금세 균형을 잃는다. 대통령–당–검찰–감사원이 한 줄로 서는 구조는 단기 정권 운영에는 편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보수의 생존을 위협한다. 최악의 사람이 권력을 잡아도 나라가 버틸 수 있도록 만드는 제도, 그것이 정치가 지켜야 할 권력 분립이다.

셋째, 시민적 덕성이다. 공화주의는 제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시민이 공공의 이익을 고려하고, 공동체의 규칙을 존중하려는 태도 없이는 어떤 제도도 작동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주권자인 시민을 너무 쉽게 ‘지지층’과 ‘팬덤’으로 분해해 왔다. 혐오와 분노의 동원은 선거 한 번 이길 수는 있어도, 공화국의 미래를 앗아간다.

넷째, 공공성이다. 공공성은 국가가 모든 것을 통제하라는 말이 아니라, 정책과 제도가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기준으로 설계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예산, 복지, 규제, 지역 개발 모두 특정 진영과 집단을 위한 전리품이 아니라, 중도와 무당층까지 포함한 국민 다수의 삶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공공성이 무너지면 정치는 이익집단의 거래로 전락하고, 국가는 갈등 조정 능력을 잃는다.

다섯째, 책임 정치다. 공화주의에서 권리는 항상 책임과 함께 간다. 권력을 행사한 자는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고, 시민도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선거 참패와 국정 실패 앞에서도 책임지는 정치인을 찾기 어렵다. 책임 없는 권력, 책임 회피의 정치는 공화국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가장 큰 요인이다.

오늘 우리가 목도하는 정치 양극화, 제도 불신, 공공성 훼손의 근저에는 이 고장 난 공화의 바퀴가 자리하고 있다. 민주공화국은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제도와 법, 시민의식을 통해 유지·발전되는 생명체다.

보수 정치가 다시 국민 앞에 설 자격을 얻으려면, ‘K-자유공화주의’를 더 이상 학술 세미나의 구호로만 두어서는 안 된다. 공천과 인사, 수사와 감찰, 예산과 정책, 선거 전략의 가장 앞줄에 비지배 자유와 공화주의의 원칙을 세워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보수는 진영과 팬덤의 갈등을 넘어, 세계경제 질서의 격변 속에서 대한민국을 선진 민주공화국으로 이끄는 책임 세력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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