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귀스트 르누아르는 <목욕하는 여인들>이라는 제목으로 두 점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하나는 1887년 작이고, 다른 하나는 1919년 작입니다. 같은 화가가 그렸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큰 차이를 보이는 작품이지요. 물론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르누아르 특유의 부드러운 붓 터치를 확인할 수 있지만요. 제가 보기에는 두 작품 모두 제각기 매력적으로 느껴지는데요. 당시 사람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두 작품을 비판했습니다.

첫 번째 그림에서 르누아르는 인물을 마치 그리스 조각상처럼 건조하고 견고한 모습으로 표현했지요? 우리가 알고 있는 르누아르의 화풍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당시 르누아르는 전통적인 회화와 인상주의를 결합한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고자 했고, 그 첫 시도가 바로 1887년 작 <목욕하는 여인들>이었어요. 하지만 이 작품으로 극렬한 비판을 받은 르누아르는 다시는 이런 화풍으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고 하지요. 두 번째 작품이 비판을 받은 이유는 다소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여성들의 팔다리가 너무 우람하다는 것이었지요. 오늘날에 이 작품은 르누아르 예술의 정수를 담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풍만하고 건강한 여성은 르누아르에게 평생의 예술적 영감이었습니다. 작품 속에서 여인과 풍경은 하나가 된 듯이 유연하게 어우러집니다. 그리고 편안하게 누워 있는 여인들의 모습에서 말할 수 없는 평온과 행복이 엿보이는군요.

1919년 작 <목욕하는 여인들>은 르누아르의 마지막 작품이었습니다. 이 그림을 그릴 무렵에 르누아르는 통풍과 류머티즘에 걸려 제대로 걷지도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게다가 오른팔에 골절상까지 입어서 그림을 왼손으로 그려야 했습니다. 류머티즘에 걸리면, 손가락 마디가 붓고 뻣뻣하게 굳기 시작하지요. 르누아르는 붓을 제대로 잡을 수조차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르누아르는 그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끈으로 붓을 손에 묶어서 끝내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말년의 르누아르가 그린 두 번째 작품에서 여인들은 젊은 르누아르가 그린 첫 번째 작품에서보다 살이 쪘습니다. 복부지방으로 인해 생긴 복부 주름이 눈에 보입니다. 르누아르는 류머티즘의 고통으로 인해 젊은 날만큼 아름다움을 극대화하여 표현하지 못한 걸까요? 르누아르가 남긴 말이 있습니다. 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남는다. 제가 보기에 두 번째 <목욕하는 여인들>은 르누아르가 노쇠했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르누아르의 내면에서 아름다움의 기준이 달라졌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시대에 따라 아름다움의 기준이 달라지듯, 한 사람의 생애 속에서도 아름다움의 기준은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무엇이 더 아름답고 무엇이 덜 아름다운 걸까요? 르누아르는 이렇게 대답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아름다웠고, 지금은 이것이 아름답다”라고요. 그리고 저는 또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시간이 지나더라도 호르몬은 우리의 실제적인 지배자이다”라고요.

안철우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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