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s Choice]는 우리의 언어로 기록하고, 우리의 시선으로 해석하는 ‘진짜’ 20대 이야기를 다룹니다.
[헤럴드랩] 이제 막 출발선에서 벗어나 꿈을 향해 달려 나갈 때, 이미 정상에 오른 사람들도 한때 같은 선상에 있었음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이제 막 시작하는 사람의 눈에는, ‘걸어 다니는 기업’이 돼버린 미국 싱어송라이터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
그도 한때 무대를 지켜보는 수많은 관객 중 한 명이었다는 사실이 어느 신화 속 이야기처럼 보일지 모른다. 진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신화와는 달리 테일러 스위프트의 역사에는 명백한 사실이 하나 있다.
‘테일러 스위프트’란 이름이 전 세계에 알려지기 전까진 그녀도 성공하는 방법을 확신할 수 없었던, 한 명의 아이였다는 사실이다.
테일러 스위프트 하면 글로벌 슈퍼스타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데뷔한 해인 2006년 10월 24일을 기점으로,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는 기간 동안 스위프트는 차곡차곡 슈퍼스타의 이미지를 쌓아 올렸다.
그에게도 기타를 처음 배운 날, 무대를 처음 선 날, 음반 회사에 돌린 데모 테이프가 전부 거절당하는 날이 있었다.
아무도 그의 이름을 몰랐을 때가 있었고, 누군가 이름을 잘못 불렀을 때도 있었다.
스위프트는 시작점에 있던 시간에도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신의 꿈과 성공을 바라봤다.
“언젠가 사람들이 내가 쓴 곡을 소중하게 여겨준다면 얼마나 행운일까”라고 생각하던 소녀는 매일매일 기타를 쳤다. 노래를 불렀다. 다른 가수의 무대를 보며 같은 무대에 서있는 자기 모습을 떠올렸다.
데뷔 후 20년이 흘렀다. 이제는 스위프트가 걸어가는 모든 길에 성공이 따라다닌다.
2023년 3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진행해 총 누적 관객 수 1000만명을 모은 ‘에라스 투어’(The Eras Tour).
에라스 투어는 149회 공연에서 티켓 수익 약 22억달러(약 3조원)를 벌어들이며, 역사상 가장 성공한 투어로 기록됐다. 투어 이후 출시된 콘서트 사진집은 판매 첫 이틀 동안만 약 81만부가 팔려나갔다.
작년 10월에 발매한 12집 ‘더 라이프 오브 어 쇼걸’(The Life of a Showgirl)은 발매 첫 주 약 347만장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1991년 이후 빌보드가 전자 집계한 최고 수치를 뛰어넘었다.
지난 1월에는 ‘올 투 웰(10분 버전)’(All Too Well 10 Minute Version), ‘블랭크 스페이스’(Blank Space), ‘러브 스토리’(Love Story) 등을 작곡한 공로를 인정받아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만 36살이라는 아직도 인생의 많은 장을 써 내려갈 수 있는 나이에, 그토록 원하던 꿈을 이루고, 억만장자 대열에도 합류했다.
이제 성공하는 방법을, 꿈을 이루는 방법을 확신하는 듯하다. 마치 헨젤과 그레텔이 빵조각을 떨어뜨리듯, 자신이 걸어가는 길 위에 성공의 표식을 남기고 있다. 시작점에 있는 사람들이 꿈이라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도록 이끄는 중이다.
꿈을 꾸던 아이는 이제 그 누구보다 큰 존재가 돼, 전 세계에서 모인 관객들을 향해 꿈을 이루는 법을 부른다.
이번 노래는 ‘사랑 이야기’가 아닌 ‘성공 이야기’라는 노래다.
기회도 타이밍도 그리고 꿈까지도 직접 설계한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열네 살이 되던 해인 2003년, 부모님을 설득해 컨트리 음악의 도시로 알려진 테네시주 내슈빌로 이사한다. 컨트리 음악은 1920년대 미국으로 이주해 온 이민자들이 모여 탄생한 미국 전통 음악이다.
태어나고 자란 펜실베이니아 크리스마스트리 농장을 떠나, 차로 10시간이 걸리는 테네시로 향하기까지, 그의 마음속에는 절대로 지어버릴 수 없는, 가수가 되겠다는 꿈이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오는지 셀 수조차 없는 미국 음악 산업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
스위프트는 그런 환경 속에서도 당당히 성공한, 페이스 힐(Faith Hill)이나 “인디음악과 크로스오버의 매력”을 지닌 샤니아 트웨인(Shania Twain) 같은 컨트리 가수들을 가슴 깊이 동경했다.
2009년, 영국 토크쇼였던 ‘폴 오그레이디 쇼’에서 스위프트는 자신이 내슈빌로 이사한 이유가 “고전적으로 화려한 매력”을 가진 페이스 힐의 영향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스위프트는 TV 프로그램을 통해 페이스 힐이 열아홉 살 때 내슈빌로 이사하고 컨트리음악에 입문했다는 걸 본 이후, 자신도 내슈빌로 가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힐이나 트웨인 같은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은 스위프트의 마음에 무한한 열정을 피어오르게 했다.
공연장이라고는 할 수 없는 데서도 연주했어요. 보이스카우트 회합에서, 가든 클럽 모임에서, 커피숍에서, 할 수 있으면 어디서는 연주했어요.
작년 디즈니 플러스에서 공개된 에라스 투어의 비하인드 다큐멘터리 ‘디 엔드 오브 에라’(The End of an Era)에서 스위프트의 어머니 안드레아 스위프트(Andrea Swift)는 그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축제와 놀이공원에 전화를 돌려서 무대를 내줄 수 있는지 묻곤 했어요 … 저는 테일러가 ‘명성’이니 ‘돈’이니 하는 건 들어 본 적이 없어요. 그저 항상 기회를 얻고 싶어 했죠.”
스위프트는 스스로 기회를 만드는 동시에 자신이 정확히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알았다. 더 칙스(전 딕시칙스, The Chicks)와 같은 컨트리 밴드의 노래를 커버한 데모 테이프를 음반사에 제출하고 전부 거절당하자, 남들과 구분될 수 있는 자신만의 특별함, 강점을 모색했다.
스위프트는 그에게 주어진 재능이었지만 그때까진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이기도 했던 작사, 작곡에 본격적으로 힘을 들이기 시작했다.
2005년, 페이스 힐이 발굴된 내슈빌 블루버드 카페에서 신인 아티스트 발굴을 위한 쇼케이스가 열렸다. 그 쇼케이스에 스위프트는 자작곡으로 참가했다.
바로 그날, 그곳에서 마침 독립 레이블 설립을 앞두고 있던 스콧 보체타(Scott Borchetta)는 아직 생기기도 전인 회사의 첫 번째 아티스트로 스위프트를 선택했다.
보체타의 새 회사 ‘빅 머신 레코드’(Big Machine Record)와 계약한 스위프트는 2006년 10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첫 정규 앨범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를 세상에 내놨다.
내슈빌로의 이사, 그간의 무대 경험, 직접 쓴 곡들. 그렇게 스위프트는 본인 스스로가 만든 기회들을 통해 바라고 바라던 꿈을 이뤄냈다. 정말로 가수가 됐다.
2007년 12월 3일 ‘컨트리 위클리’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열 살 때는 밤에 말똥말똥 눈을 뜨고 누워서 우레처럼 환호하는 군중을, 무대로 걸어 나가는 저를, 조명 불빛이 처음으로 비추는 저를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할 때 전 늘 계산했어요. 그러면 어떤 기분일지가 아니라 정확히 어떻게 해야 그 자리에 설 수 있을지를요.”
가장 바쁠 때도 기꺼이 더 바빠진다
I cry a lot but I am so productive, it‘s an art (나는 자주 울지만 또 너무 부지런해, 이건 예술이야)
자신의 이름을 딴 첫 앨범부터 작년 10월에 발표한 ‘더 라이프 오브 어 쇼걸’까지 스위프트는 20년 동안 총 12개의 정규 앨범을 냈다. 평균적으로 약 1년 8개월마다 앨범 1장을 낸 꼴이다.
단순히 앨범을 많이 낸다고 해서 모든 앨범의 음악적 가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스위프트는 마치 앨범 수와 성공이 비례한다는 착시를 보여준다. 새로 내는 앨범마다 깨지지 않을 것 같던 기존 기록을 갈아치우기 때문이다.
더 놀라운 점은 그가 앨범에 수록하는 거의 모든 곡을 직접 작사, 작곡한다는 점이다. 앨범마다 수록된 열 곡이 넘는 노래들을, 11집 ‘더 토처드 포이츠 디파트먼트’(The Tortured Poets Department)의 경우, 총 서른한 개에 달하는 곡들을 직접 썼다는 것은 음악적 재능을 넘어 부지런함과 꾸준함 없이는 이뤄낼 수 없는 경이로운 성과다.
또한 스위프트는 지난해 8월, 약혼자인 미식축구 선수 트래비스 켈시(Travis Kelce)와 그의 형 제이슨 켈시(Jason Kelce)가 함께 진행하는 팟캐스트 ‘뉴 하이츠’(New Heights)에 출연해, 당시 발매를 앞두고 있던 12집을 에라스 투어가 유럽에서 진행되는 동안 동시에 작업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스위프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공연을 연속으로 세 차례 치른 뒤 사흘 정도의 공백이 생기면 스웨덴으로 가 앨범 작업을 했어요. 투어 후반부에는 육체적으로 정말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오히려 강한 자극을 받았고, 창작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설렜어요.”
일과 창작에 대한 스위프트의 놀라운 꾸준함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세계를 강타했을 때 멈추지 않았다. 스위프트는 팬데믹을 겪으며 ‘보장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외부 활동이 멈춘 시간을 회상하며 스위프트는 오히려 오래된 영화를 고전을 실컷 접해 색다른 영감이 차올랐고, 창작에 더 몰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탄생한 결과물들을 주저 없이 세상에 공개했다. 7집 앨범 ‘러버’(Lover)를 발표한 지 불과 1년 만이었다.
그렇게 2020년 7월에는 8집 ‘포크로어’(folklore)가, 약 5개월 뒤인 12월에는 9집 ‘에버모어’(evermore)가 발매됐다. 팝 중심이던 이전 앨범과 스위프트는 두 앨범으로 인디 포크, 얼터너티브 록 장르의 새로운 시도를 선보였다.
스위프트는 ‘포크로어’로 제63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2집 ‘피어리스’(Fearless)와 5집 ‘1989’에 이어 세 번째 ‘올해의 앨범’을 수상했다.
2022년에 10번째 정규 앨범 ‘미드나이츠’(Midnights)로 네 번째 ‘올해의 앨범’을 받으며, 역사상 최초로 ‘올해의 앨범’을 네 번 수상한 아티스트가 됐다.
가장 바쁠 때도 기꺼이 더 바빠지고, 어떤 틈에서도 나아가길 멈추지 않았던 스위프트는 결국 자신의 이름을 음악사에 영원히 각인시켰다.
악의·왜곡·조롱…모든 공격이 성공의 재료다
한 시대에 상징이 되는 글로벌 슈퍼스타라는 자리에 오르는 과정에서 스위프트는 전 세계의 목소리가 모여 만들어낸 가장 날카로운 화살들을 피해 살아남아야 했다.
긴 활동 기간만큼, 스위프트의 생활 방식, 성격, 외모, 패션, 연애사, 가족사 등 인생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평가대 위에 올랐다. 더불어 음악이나 무대에 대한 비판을 제외하고도, 악의와 왜곡이 뒤섞인 잔인한 비난과 평가, 스토킹, 무단 침입과 같은 사생활 침해, 음모론과 가짜 뉴스, 최근 대두된 딥페이크 사칭 피해까지, 아무리 피해도 성공의 길에는 언제나 더 크고, 더 날카로운 화살이 날아왔다.
꿈을 이루기 위해 늘 용기를 냈던 스위프트에게도 감당하기 힘든 시간이었다. 특히 그가 10대, 20대였을 땐 더 그랬다.
스위프트가 26세이던 2016년, 패션 매거진 보그(Vogue)와의 ‘73가지 질문’(73 Questions) 인터뷰에서 “19살 때 꼭 알았으면 좋았을 한 가지”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만약 19살의 나에게 말을 걸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할 것 같아요.”
“다른 평범한 20대들이 그러는 것처럼 너도 연애하게 될 거야. 다만 너는 정숙하지 않다는 국가적 비난을 듣게 될 거야.”
한 개인을 향한 이 정도 규모의 공격 속에서, 스위프트가 더 이상 성공의 길을 걷지 않고 포기하겠다 결심한다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어쩌면 정말 다행히도, 스위프트는 결국 몇 번이고 다시 그 모든 공격을 그녀가 확신하는 방식으로 돌파해 갔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자신을 향한 모든 공격과 그로 인해 드는 두려움, 불안, 슬픔, 분노, 외로움을 성공의 재료로 삼는 것이었다.
초기 앨범 중 하나인 3집 ‘스피크 나우’(Speak Now)에서부터 스위프트는 ‘민’(Mean)이라는 노래를 통해 건설적 비판과 악의적 비판의 차이를 꼬집었다.
4집 ‘레드’(Red) 속 ‘더 러키 원’(The Lucky One)이란 노래로 미디어의 과한 관심이 불러일으키는 두려움을 공유하기도 했다. 더 러키 원에서 ‘다들 네가 운이 좋다고 말할 거야’라는 가사는 ‘근데 너는 지금 네가 운이 좋다고 말할 수 있어?’라는 가사로 이어진다.
5집 ‘1989’에서는 그녀의 연애사를 둘러싼 왜곡된 시선, 수년간 미디어가 만들어낸 ‘남자를 밥 먹듯 갈아치우며 연애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미친 여자’라는 이미지를 2번 트랙, ‘블랭크 스페이스’에 담아내고, 뮤직비디오에서 스스로 그 캐릭터를 연기함으로써 맞받아쳤다.
같은 앨범의 6번 트랙인 ‘셰이크 잇 오프’(Shake It Off)에서는 ‘머리가 비어 보인다’ 같은 조롱들을, 당시 또 다른 조롱거리였던 ‘이상한 춤 실력’을 되려 당당히 선보이며 ‘털어내’라는 노래 제목처럼 전부 털어내는 모습을 보여줬다.
공격이 커지고 많아진다는 건 그만큼 성공의 재료도 많아진다는 의미였다. 인터넷상에서 집단적 마녀사냥을 당한 스위프트는 공백기 끝에 2017년 11월, 6번째 정규 앨범 ‘레퓨테이션’(Reputation)을 발표하고, 자신이 겪은 일들과 당시 느꼈던 분노와 답답함을 전부 앨범에 녹여 내렸다.
스위프트는 3번 트랙 ‘아이 디드 썸띵 배드’(I Did Something Bad)에 다음과 같은 가사를 적었다.
“누군가 계속 헛소리를 지껄인다면, 나는 아무것도 해줄 의무가 없어”
“나는 전혀 후회하지 않아, 그건 그 사람이 자초한 일이니까”
“사람들은 내가 나쁜 짓을 했다고들 하는데”
“그럼 왜 이렇게나 기분이 좋지?”
성공으로 가는 길에 역경은 필연적이고, 그 과정에서 느끼는 위태롭고, 연약하고, 억울하고, 혼란스럽고, 두려운 감정들을 결국 어떻게 할지는 본인의 선택이다.
자신을 잠식하게 둘 수도, 그 감정들을 피해 다시 시작점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 누구보다 오래 성공의 길을 걷고 있는 스위프트는 그 모든 감정을 사용하라고 말한다.
포기하지도 말고, 피하지도 말고, 자기 성공의 재료로 삼으라고 말한다.
노래에 담아 몇만 명이 보는 무대 위에서 다 같이 부르며 털어내든, 글로 적어 풀어내든, 연습의 동력이나 새로운 창작의 기회로 삼든, 중요한 건 공격과 역경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돌려세우고, 어떻게든 성공에 도움이 되도록 재창조하는 것이다.
결국 끝까지 지키고 이뤄야만 하는 목표는 피하는 것도, 돌아가는 것도 아닌, 계속 걸어 나가야 하는 길 끝에 있기 때문이다.
By 양수빈 콘텐츠 오퍼레이터
Editing 민상식 기자
<참고 자료>
캐롤린 맥휴, 테일러 스위프트: 앨범별로 돌아본 우리 시대 아티스트의 삶과 노래, 소우주 출판사
테일러 스위프트, 헬레나 헌트 엮음, 테일러 스위프트: 나의 이야기로 우리를 노래하다, 마음산책 출판사
mss@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