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기업 행위가 8000개가 넘는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충격적인 수치다. 한국경제인협회가 경제 관련 법률 346개의 형벌 조항을 전수 조사한 결과, 총 8403개 법 위반행위가 집계됐다고 한다. 기업이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하다가도 자칫 법을 어긴 범죄자로 내몰릴 수 있다는 뜻이다. 과잉형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처벌 조항이 많은 것도 놀랍지만 보다 심각한 문제는 이 중 91%가 양벌규정이라는 점이다. 실무자의 실수에도 회사 전체가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는 말이다. 게다가 2개 이상의 제재가 동시에 부과될 수 있는 행위가 2850개(33.9%)에 달하고, 3중 제재만도 759개나 된다. 부처마다 규제를 달리 적용해 4중·5중의 처벌이 가해지는 것이다. 기업이 상궤에서 벗어나 공정한 경쟁을 방해하고 피해를 끼치는 일이 있다면 처벌하되, 그 정도에 맞는 합리적 수준이어야 한다.

가령 화장품 판매자가 라벨이 훼손된 제품을 단순히 진열·보관하는 것만으로도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기업집단 지정을 위해 매년 제출하는 특수관계인 현황이나 주식 소유 현황에서 단순 착오로 자료가 누락돼도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고의성이 없는 경미한 행정 의무 위반까지 형사처벌로 이어지는 것은 상식적으로 지나치다. 이런 법적용은 구조적으로 취약한 중소기업들에게 더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경영 리스크를 키운다는 점에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기업 관련 형사처벌이 많아지고 수위가 높아진 건, 행정처벌보다 더 센 형사처벌을 관행적으로 적용해온 측면이 크다. 사회·정치적 압력으로 경미한 사안도 형사처벌로 이어진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최근엔 기업인의 책임을 강화하는 형사처벌들이 더 늘어나는 상황이다. 기업인을 이렇게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상황에서 혁신적 아이디어로 기업을 만들고 키워나가려는 열띤 분위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선진국은 기업의 경제활동과 관련된 범죄의 경우 처벌 기준이 명확하고 적용 범위가 제한적이어서 기업의 리스크 관리가 가능하다.

정부가 경제형벌을 줄이겠다고 밝힌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지난 9월 국회에서 “6000여개 경제형벌을 전반적으로 검토하겠다”며 “9월에 국회에 법안도 제출하고 1년 안에 30%정도는 개선하겠다”고 했다. 말로만 그칠 게 아니라 기업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가시적 성과를 내놔야 한다. 경미한 위반은 행정질서벌이나 과태료 중심으로 제재하고, 형벌은 고의적·반복적 위반이나 심각한 시장 교란행위에 한정해야 한다. 국회도 법률 개정으로 뒷받침해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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