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재 세종대학교 법학과 교수
최승재 세종대학교 법학과 교수

2025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전 세계 철강업계의 운명을 뒤흔들고 있다. 그의 보호무역 정책이 단순한 메시지를 넘어 국가와 기업의 흥망성쇠를 결정짓는 시대가 된 것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유례없는 강도와 속도로 무역장벽을 높이고 있다. 철강·알루미늄 수입품에는 최대 50%에 달하는 고율 관세가 매겨지고, 생산 과정에 대한 감시도 한층 강화됐다. 그 여파로 글로벌 철강 무역질서는 송두리째 재편되고, 한국을 비롯한 수많은 국가의 철강 산업 현장은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중국의 끊임없는 생산 능력 확장과 각국의 반덤핑 공세가 맞물린 지금, 철강 생산국들은 생존을 건 방어전에 돌입했다.

한국 또한 예외가 아니다. 수출로 먹고 살아온 대한민국은 오랫동안 저가 수입재에 유연하게 대응해 왔지만, 이제는 국내 시장 방어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진 상황이다. 세계 각국이 앞다투어 무역장벽을 높이는 이 시대, 우리는 기존 무역규범을 근본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 그 중심에는 바로 ‘보세공장 제도’가 있다.

보세공장은 외국산 원료를 관세 유예 상태로 반입해 가공하는 특허보세구역이다. 기업들은 이 제도를 활용해 자금 부담을 줄이고, 가공 수출을 촉진해 왔다. 본래 보세공장은 ‘수출’을 전제로 만들어진 제도다. 하지만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이 제도가 국내 산업 보호라는 목적과 충돌하는 지점이 드러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관세법상 보세공장 수입자가 과세기준을 원료과세와 제품과세 중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즉, 보세공장에서 가공한 제품을 국내로 들여올 때, 수입산 원료에 부과되는 덤핑방지관세를 피할 수 있는 제품과세를 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산 열연강판이 보세공장에 반입되어 도금강판으로 가공된 후 국내에 통관되면, 원산지가 ‘한국’으로 변경되어 덤핑방지관세의 적용을 피해간다. 이로써 수입산 덤핑 열연에 대한 관세 부과는 무력화되고 만다.

수출 촉진이라는 취지에서 출발한 보세공장 제도가, 오히려 국내 시장의 공정 경쟁과 산업 보호라는 시대적 요구를 외면하는 ‘우회 루트’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자국 산업을 지키기 위해 세계 각국이 무역구제 조치를 강화하고 있는 지금, 한국만 1970년대에 만들어진 낡은 제도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주요 선진국들은 이미 보세제도의 허점을 차단하고 있다. 미국은 연방규정집에서 덤핑방지관세 부과 원료가 자유무역지역(FTZ)에 반입될 경우 반드시 ‘원료과세’가 적용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유럽연합 역시 신(新)관세법(Unions Customs Code)에서 역내가공 제품에는 원칙적으로 제품과세를 적용하지만, 반덤핑 관세 대상 원료에는 강제적으로 원료과세를 부과한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규범의 보완도 필요한 만큼 우리도 보세공장 제도의 관리 강화와 체계적인 정비에 나서야 한다. 산업의 명운이 걸린 이 뉴노멀 시대, 규칙의 판을 바꿀 때다.


bigroot@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