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인천상륙작전을 남들이 다 해준 것으로 믿는 국민이 있다. 아니다. 1949년부터 바다에서 북한군이 준동했다. 우리 함정을 납치하더니 급기야 미국 군사고문단 함정까지 빼앗아 갔다. 이 배가 황해도 몽금포에 정박돼 있음을 확인한뒤 손원일 해군참모총장은 그 해 8월16일 함명수 소령 등 특공대를 보내 적을 응징, 피랍된 함정 예인에 성공했다.
이에 정부는 없는 예산을 쪼개 4만5000달러를 지원했고, 손 참모총장은 그해 10월1일 미국으로 건너가, 이 돈으로 백두산함 등 성능 좋은 전투함 4척을 구입했다.
백두산함은 1950년 6.25 발발 다음날, 부산까지 잠입한 북한 해군을 격퇴하는 대한해협 해전에서 승리함으로써 북한의 해상 선점 전략을 무력화시켰다.
그 해 8월17일, 해군과 신형 전투함은 국군 최초 단독 상륙작전인 통영작전에 성공해, 영남 남부지역 낙동강 전선 돌파의 일등공신이 됐다.
통영, 덕적도, 영흥도 상륙작전은 연쇄적으로 진행됐다. 우리 해군 단독으로 수행한 잇단 승전은 인천상륙작전의 핵심 교두보였다. 해군함정 8척의 승조원들로 편성된 육전중대는 그 달 18일 덕적도, 20일 영흥도 상륙에 성공, 북한군을 몰아냈다.
함 소령은 맥아더 연합군 총사령관의 요청을 받은 손 총장의 지시에 따라 8월 24일부터 인천상륙을 위한 첩보수집 즉 ‘엑스레이 작전’을 맡기도 했다. 수집된 첩보는 0.1%도 안되던 인천 거사의 성공률을 99.9%로 올렸다.
9월15일 0시3분 시작된 인천상륙작전에서 우리 해군은 미국 보다는 적지만 영국, 프랑스 보다 훨씬 많은, 연합군 내 2위의 해군력을 동원해 승전을 이끌었다.
인천상륙대첩. 우리 해군이 밑그림부터 주도적으로 이끌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자.
함영훈 선임기자/
abc@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