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경 서울 은평구청장 인터뷰
위로·공감 철학 구정 곳곳 배어 있어
전국 첫 자립준비청년청·자립준비주택
아동시설 출신 청년들 ‘어머니’라 불러
“아파트에 치매 어르신 시설 들어가야”
구청장을 어머니라고 부르는 아동시설 출신 청년들과 그들의 혼주로 결혼식장에 서고 싶다는 구청장. 요양보호사 실습에 직접 나서 목도한 치매 환자와 그 가족의 아픔, 이를 온전히 보듬기 위해 10년 넘게 내고 있는 목소리.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영유아와 부모, 더 나아가 보육교직원의 마음까지 헤아리는 마음. ‘위로와 공감’은 은평구 구정 곳곳에 묻어 있다. 은평구가 ‘온기’ 있는 도시로 자리매김한 데에는 지난 7년간 ‘사람 중심 도시’에 힘써온 김미경 서울 은평구청장의 역할이 컸다.
최근 은평구청 내 집무실에서 본지와 만난 김 구청장은 보여줄 게 있다며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지난달 8일 어버이날 촬영됐다는 영상을 보여줬다. 외부 일정을 마친 김 구청장이 6층 접견실로 들어서자 노래 ‘어머님 은혜’가 현악 선율로 울려퍼지는 내용이었다.
김 구청장에 따르면 그 음악은 아동시설에서 자란 아이들, 이른바 자립준비청년들이 준비한 선물이었다. 아이들이 직접 구청에 연락해 준비한 것으로 구청장 모르게 마련됐다.
김 구청장도 울고 그 자리에 있던 직원도 울었다. 청년들은 연주가 끝난 뒤 김 구청장에게 “어머니 사랑합니다”는 말을 건넸다. 김 구청장은 스마트폰을 덮으며 “이들이 ‘어머님 은혜’를 한번이라도 연주해 봤겠나. 그걸 연주하면서 느꼈을 복잡한 감정들, 어머니라고 불렀을 때 그들의 감정에 이입이 되더라. 이 아이들에게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 구청장과 이들이 인연을 맺은 것은 2022년 은평구가 전국 지자체 처음으로 ‘자립준비청년청’을 만들고부터다. 김 구청장은 설, 크리스마스 등의 행사를 통해 아이들과 친해졌다고 했다. 아이들이 그토록 원했던 가족사진도 찍었다. 지난 3월에는 아이들과 함게 부산으로 가족여행도 다녀왔다. 김 구청장은 어느새 이 아이들의 ‘어머니’가 돼 있었다. 김 구청장은 “아들딸이 너무 많이 생겼다”며 “나는 결혼도 안했지만 이 아이들이 자리를 잡고 결혼을 한다면 내가 혼주석에 앉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자립준비청년청은 자립준비청년을 지원하기 위한 조직이다. 자립준비청년은 아동복지시설 등을 나온 청년들이다. 구는 자립준비청년청을 통해 현재 215명의 청년을 지원하고 있다. 2023년에는 이들을 위한 주택이 만들어졌다. 이들이 사회에 나갈 디딤돌이 될 공간이 바로 자립준비주택이다. 최소 3개월 동안, 혼자서 살아보는 연습을 하는 공간이다. 이외에도 구는 오는 10월에는 자립준비청년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자립준비청년 카페’를 조성할 계획이다.
은평구는 전체 예산중 65.6%(2025년 2월 기준)가 사회복지 부문에 쓰이는 지자체다. 다른 지자체의 사회복지 부문 평균(유형 평균)인 57.4%에 비해 높은 수치다. 자립준비청년뿐 아니라 어르신, 아이 돌봄, 취약계층에 구 예산이 집중 편성돼 있다. ‘사람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김 구청장의 구정 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그는 “복지예산의 높은 비율로 다양한 다른 사업 추진에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우리는 누군가의 보살핌으로 이 세상에 나왔고, 또 누군가를 돌보며 살아가는 것처럼, 우리 삶의 시작과 끝 그 모든 순간에 돌봄 복지가 함께한다. 따라서 복지는 우리 곁에 늘 있어야만 하는 존재”라고 말했다.
‘아이맘택시’와 ‘아이맘상담소’도 이같은 구정 철학이 반영된 사업이다. 아이맘택시는 임산부와 영유아 가정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택시다. 2020년 8월 첫 운행을 시작했다. 서울시가 아이맘택시를 벤치 마킹해 ‘엄마아빠 택시’ 서비스를 내놓기도 했다. 특히 구는 2023년에는 두번째 아이맘 정책인 아이맘 상담소 운영을 시작했다. 해체 직전에 있던 자폐아 양육 가정이 아이맘상담소를 통해 위기를 극복했다. 산후우울증에 빠진 산모는 일상을 되찾았다. 아이맘상담소는 아이를 돌보면서 상처를 입은 어린이집 선생님도 지원하고 있다.
위로와 공감의 구정 철학은 재건축·재개발에도 어김없이 배어 있다. 김 구청장은 “재개발은 많은 이권이 연관된 복잡한 사업으로 공익과 사익의 중간 지점에서 소통과 협의를 통한 과정이 필요하다”며 “은평이 도시정비사업을 추진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시 하는 개념은 ‘사람 중심의 개발’”이라고 강조했다.
김 구청장이 도시정비사업을 하면서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어르신 복지, 특히 치매 환자 돌봄 서비스다. 지난해 12월 수색 13구역 재개발 지역에 개소한 ‘은평실버케어센터’에도 치매노인돌봄 시설이 들어가 있다. 은평실버케어센터는 전국 최초 민간개발사업 공공기여 방식으로 기부채납 받은 곳이다. 당초 녹지로 계획했던 공간을 어르신 요양시설로 변경했다.
김 구청장은 공동체가 치매 노인을 보살펴야 한다고 본다. 그는 “2040년이 되면 치매 어르신이 200만명이 넘어간다”고 했다. 이어 “그 어르신을 어디에 모시냐. 지금은 시설로 보낼수 밖에 없다. 부모 입장에서는 버려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 아파트 내에 어린이집과 노인정 뿐 아니라 치매 어르신 시설도 반드시 들어가야 된다”며 “그리고 치매 어르신은 멀리 떨어진 요양시설이 아닌 가족이 곁에 있는 시설에서 도움을 받아야 된다”고 강조했다.
치매 노인에 대한 깊은 관심은 김 구청장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김 구청장은 시의원 시절인 2012년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는 과정에서 치매 노인을 가까이 보살핀 적이 있다. 그는 “어떤 어르신들은 하루종일 욕하고, 어떤 어르신은 화장실 휴지를 켜켜이 쌓고 어떤 어르신은 지퍼를 열었다 닫았다”며 “치매라는 것은 자기를 인식하지 못하는 병이었다. 그 삶이 너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이어 “가족들이 함께 돌보면 치매가 악화되는 것을 지연시킬 수 있다. 아파트 내에 치매 시설이 있어서 치매를 미리 예방하고, 치매 노인이 위험에 빠지는 것도 미리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2040년 200만명이 됐을 때는 국가적으로 감당이 안된다”며 “지금부터 개발 계획을 세울때 치매시설을 넣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김 구청장의 이 같은 구상은 법률적 한계로 아직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다. 아파트에 사는 거주민에 대한 입주 우선권을 줘야만 가족과 마을이 치매 환자를 돌보는 게 가능하지만, 현행법에서는 이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인장기요양보호법은 거주지와 관게 없이 누구나 치료 받을 수 있다고 규정한다. 그는 “치매를 앓는 주민이 은평실버케어센터 같은 시설에 우선 입소할 수 있도록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을 바꿔달라고 정부에 시의원 시절인 10년전부터 요청하고 있지만 (보건복지부로부터) ‘ 된다’는 답이 돌아오고 있다”며 “치매 환자가 은평실버케어센터 같은 시설에 우선 입소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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