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시내 아파트 단지의 모습. [연합]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시내 아파트 단지의 모습. [연합]

[헤럴드경제=박로명·서영상 기자] “이미 정부에서 3기 신도시 등 수도권 택지 후보들을 발표해 수도권 공공택지의 시급성은 낮아졌으나, 모두가 바라는 도심 내 신규 주택공급은 향후 3년간 급격히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도심 내 부족한 신축을 대량 공급해 집값 안정화를 도모하려면 정비사업 규제 완화가 가장 시급하다” (한 대형 건설사 대표이사)

국내 건설업계 최고경영자(CEO)가 새 정부에 가장 많이 호소한 내용이다. 헤럴드경제가 건설업계 대표 CEO 16명을 대상으로 새 정부가 추진해야 할 주택 공급 정책 중 가장 우선순위가 높은 항목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62.5%가 ‘재건축·재개발 등 민간 정비사업 규제 완화’라고 답했다.

건설업계 “주택 공급 절벽 온다…추가 수요 진작책 절실”

이들은 정부가 공급 절벽을 해소하기 위해 정비사업 규제를 완화해 전방위적인 공급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오는 6월3일 치러지는 대선이 2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각 정당의 대선 주자들 모두 재개발·재건축을 통한 수도권 공급 확대를 강조하고 있지만, 향후 세부적인 시행 방법에 따라 정책의 방향성이 갈릴 것으로 관측된다.

정비사업 규제 완화 뒤로는 ‘도심 고밀도 개발 및 용도지역 상향’(12.5%), ‘수도권 중심의 대규모 공공택지 개발’(12.5%), ‘청년·1인 가구 맞춤형 소형 주택 공급 확대’(12.5%) 등도 정부가 고려해야 할 공급 정책으로 언급됐다.

건설업계 CEO들은 주택 공급 부족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부동산 정보 업체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전국에서 14만6130가구의 아파트가 분양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작년 분양 물량(22만2173가구)보다 34% 줄어든 수치로, 글로벌 금융 위기로 분양 불량이 급감했던 2010년(17만2670가구)보다도 2만6000가구 줄어든 수준이다. 정부가 1기 신도시 재건축 선도지구 지정과 3기 신도시 조성 등 장기 주택 공급안을 발표했지만, 업계는 추가 수요 진작책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또 다른 대형 건설사 CEO도 “현재 서울 기반 시설 노후화가 심각한 상황으로, 한정된 예산으로 수십조에 이르는 기반 시설 교체 작업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서울시와 국토교통부가 양호한 입지의 노후화 주거시설 재개발 인허가 속도를 단축한다면 재개발 구역 일대의 기반 시설도 개선하면서 서울 시내 양질의 주거도 공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업 인허가 절차 단축·재초환 폐지 등 정책 필요”

건설업계는 정비사업 활성화 필요성에는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시각이 엇갈렸다. ‘재개발·재건축 활성화를 위한 정책 중 가장 시급히 추진되어야 할 사항’을 묻는 질문엔 ‘사업 인허가 절차 간소화 및 기간 단축’라고 응답한 CEO가 전체의 31.3%로 가장 많았다. 이어 ‘용적률 및 건폐율 상향 조정’(25%),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완화 또는 폐지’(25%)가 비슷한 응답률을 보였다. ‘민간 정비사업에 대한 금융 및 세제 인센티브 확대’를 꼽은 CEO도 18.8%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등 유력 대선 후보들도 모두 공급 확대를 주요 정책으로 들고나왔다. 이 후보는 ‘미래형 스마트도시 구축’을 주제로 1기 신도시의 노후 인프라를 전면 재정비하고, 수원·용인·안산·인천 등의 노후계획도시 정비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서울 노후 도심은 용적률을 높이고 분담금을 낮춰 재개발·재건축을 활성화하겠다는 입장이다.

김 후보 역시 부동산 규제 완화를 통한 공급 확대를 강조하면서도 ‘청년’에 방점을 찍었다. 그는 대학 인근의 노후한 빌라촌의 용적률·건폐율을 완화해 재개발에 따른 건설사 이익을 확대하고, 차익금은 청년을 위한 ‘반값 월세존’에 활용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이외에도 재개발·재건축 규제혁신,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폐지 등 부동산 제도 개편 공약도 포함됐다.

서울 시내 한 부동산. [연합]
서울 시내 한 부동산. [연합]

정비사업 규제 완화 요구에도…법안 처리 안갯속

건설업계 CEO들이 요구한 정비사업 규제 완화 방안은 상당 부분은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 정책이 담겨있다. 정비사업 인허가 기간 3년 단축, 역세권 용적률 완화(법적 상한의 1.3배) 등을 골자로 하는 ‘재건축·재개발사업 촉진에 관한 특례법’이 대표적이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추진한 주택 공급 확대 정책이었지만, 정치권에서 조기 대선 정국이 펼쳐지면서 정비사업 규제 완화 법안 처리는 기약 없이 밀리게 됐다.

여야의 입장 차가 큰 쟁점 법안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시각도 있다.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이하 재초환) 폐지가 대표적이다. 재초환은 조합원이 재건축사업을 통해 얻는 이익의 일부를 국가가 환수하는 제도다. 건설 경기 침체로 재건축 사업성이 악화해 재초환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재초환 폐지 법안을 발의했지만 장기간 계류 중이다. 민주당은 재초환 폐지에 반대 입장을 고수해 온 만큼, 법안 처리는 불투명하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여야 모두 주택 공급 부족을 개선하려고 노력해야 하며, 사안의 시급성을 고려해 입법이 필요하다면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며 “장기적으로 주택 공급은 ‘정비사업 규제 완화’, ‘3기 신도시 용적률 상향, 녹지 축소 등을 통한 공급 물량 확대’, ‘민간이 추진하는 도시개발사업 활성화’ 등 삼박자가 맞아야 해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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