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의 뺨에 땀이 맺혀 있다.[게티이미지뱅크]
한 아이의 뺨에 땀이 맺혀 있다.[게티이미지뱅크]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지난해도 너무 더웠는데”

관측 역사상 가장 더웠던 지난 한 해. 최근 태어난 아이들에게는 되레 ‘가장 시원했던 한 해’로 기억될 가능성이 크다. 돌이킬 수 없는 속도의 지구 온난화 때문.

실제 2020년에 태어난 어린이가 조부모 세대에 비해 평균 7배가량 많은 폭염을 경험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폭염 피해에 노출된 비중만 전체 83%로 추정된다.

이 또한 현재 기후변화 대응책이 유지됐을 때를 가정한 결과. 최악의 경우 2020년 출생자 중 92%가 ‘전례 없는 폭염’ 피해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기온 상승은 가뭄, 흉작 등 여타 재난을 일으켜 일부 계층의 생존을 위협한다. 아이들에 더 안전한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기후변화 대응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분수대에서 어린이들이 즐겁게 물놀이를 하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임세준 기자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분수대에서 어린이들이 즐겁게 물놀이를 하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임세준 기자

비영리 시민단체 세이브 더 칠드런이 독일 브뤼셀 자유대학교 연구팀과 공동 집필한 ‘기후 위기 속에 태어나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에 태어난 어린이는 1960년대에 태어난 조부모 세대에 비해 폭염, 가뭄, 산불 등 기후재난에 최소 2배 이상 더 많이 노출될 것으로 전망됐다.

가장 차이가 컸던 것은 ‘폭염’. 2020년생 어린이들은 이전 세대에 비해 평생 6.8배 많은 폭염에 노출될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지구 온난화가 지속되며 각종 피해를 낫는 재난 수준의 더위를 경험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의 한 상가 건물에 설치된 실외기가 이른 아침부터 가동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의 한 상가 건물에 설치된 실외기가 이른 아침부터 가동되고 있다. 임세준 기자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전 세계 정부가 설정한 탄소배출량 감축 목표를 모두 달성한다고 해도, 2100년까지 지구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 수준에 비해 2.7도가량 오를 것으로 보인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지난해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5도 상승하며 175년 관측 사상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를 고려하면, 2100년까지 남은 75년 동안에도 1도 이상의 상승세가 불가피하다.

홍수 지역 모습.[세이브 더 칠드런]
홍수 지역 모습.[세이브 더 칠드런]

이에 보고서는 2020년에 태어난 1억2000만명의 어린이 중 83%(약 1억명)가 평생 ‘전례 없는 수준’의 극심한 더위에 노출될 것으로 추정했다. ‘전례 없는 더위’는 산업화 이전 환경에서는 1만년에 1번 발생하는 수준의 극심한 폭염을 의미한다.

이 또한 긍정적인 축에 속한다. 또 다른 시나리오를 가정해 2100년까지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3.5도 상승하는 경우, 폭염에 노출되는 아동의 수는 1억1100만명(92%)로 증가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폭염으로 인한 피해를 피할 수 없다는 것.

아프리카 사막에 동물들이 말라 죽어 있다.[유럽연합(UN) 홈페이지 갈무리]
아프리카 사막에 동물들이 말라 죽어 있다.[유럽연합(UN) 홈페이지 갈무리]

심지어 폭염은 단순히 ‘더위’에만 그치지 않는다. 가뭄, 산불, 흉작으로 인한 식량 부족 등 이상 기후가 초래하는 부작용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실제 현재의 기후변화 대응 체계가 이어진다면, 2020년 출생자 중 3300만명(27.5%)이 작물 실패에 따른 식량 부족 문제를 겪고, 830만명(7%)이 가뭄 피해를 볼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1960년대생에 비해 각각 2.6배, 2.8배 높은 수치다.

아프리카 한 마을의 어린이 모습.[세이브 더 칠드런]
아프리카 한 마을의 어린이 모습.[세이브 더 칠드런]

저소득 및 중소득 국가의 어린이는 그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는다. 특히 가뭄의 경우 저소득국이 다수 분포한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위험이 크다. 예컨대 아프가니스탄의 신생아는 60세 성인보다 평생 5.3배 많은 가뭄을 겪게 될 것으로 예측됐다.

세이브 더 칠드런은 “토지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가구가 영양가 있는 식품을 살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치는 것”이라며 “기후위기의 영향으로부터 안전한 사람은 없지만, 상대적으로 서유럽 국가의 아동은 과거 세대와 비슷한 수준의 가뭄을 경험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뭄으로 갈라진 땅.[게티이미지뱅크]
가뭄으로 갈라진 땅.[게티이미지뱅크]

기후변화에 따른 흉작 위험도 일부 지역에 한정해도 높아지고 있다. 동아프리카와 남아프리카에는 이미 식량 불안정을 겪고 있는 인구가 3300만명으로 추정된다. 그중에서도 2020년 태어난 신생아는 1960년생보다 흉작을 2.6배 많이 겪게 될 것으로 분석됐다.

홍수 발생 빈도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강수량 패턴이 변화하고, 빙하가 녹는 현상이 가속화되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20년간 홍수는 전체 기상이변의 43%를 차지하면서, 가장 흔하게 발생한 재난으로 기록됐다.

가뭄으로 마른 논.[게티이미지뱅크]
가뭄으로 마른 논.[게티이미지뱅크]

이 또한 일부 저소득 국가에 피해가 집중될 것으로 예측된다. 2020년생이 평생 홍수를 경험할 가능성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조부모 세대에 비해 3.6배,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는 4.5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기후변화 대응을 강화해 2100년까지 산업화 이전 대비 기온 상승폭을 1.5도 이내로 제한할 경우, 이와 같은 피해는 다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에 따르면 1.5도 상승으로 제한될 경우 폭염에 노출되는 2020년생은 5800만명으로 현재 시나리오(1억명)와 비교해 절반가량 줄어들 것으로 추산됐다.

세이브 더 칠드런은 “되레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이 가장 적은 나라들이 극심한 기온 변화에 따른 가장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다”며 “2100년까지 지구 온난화를 1.5도 이내로 제한한다는 파리협정의 목표는 단순한 목표가 아니라, 어린이들의 생명줄과 같다”고 주장했다.


wo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