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 ‘엔비디아 젠슨 황, 생각하는 기계’
‘스타트업에서 AI 선도 기업으로’ 여정 담아
33년 최장기 CEO…비전·결단이 성공 열쇠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3월 열린 미국 캘리포니아 ‘GTC(GPU 테크놀로지 콘퍼런스) 2025’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로이터]](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5/16/news-p.v1.20250513.f0644180b5fd48e6a4a90906c29b6993_P1.png)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우리 회사는 앞으로 30일 후면 파산합니다.”
당장 회사가 문을 닫을 것 같은 이 절박한 외침은 놀랍게도 전 세계가 아는 초대형 기업의 이야기다. 바로 글로벌 AI(인공지능) 대표기업 엔비디아다.
젠슨 황 엔비디아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항상 직원들에게 회사 설립 초기의 위기감을 잊지 말고, 회사가 파산 직전에 있다고 생각하며 일하라고 독려한다. 회사가 막대한 이윤을 내게 된 후에도 이 같은 기조는 유지됐고, 현재까지도 엔비디아의 모토로 자리 잡고 있다.
젠슨 황의 세계 최초 공식 자서전인 신간 ‘엔비디아 젠슨 황, 생각하는 기계’는 그가 어떻게 AI 칩 제국을 건설했는지, 그는 어떤 사람인지를 담은 책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요커 기자인 스티븐 위트가 젠슨 황의 요청으로 3년간 그를 밀착 취재하고, 핵심 관계자 300여 명을 인터뷰한 뒤 집필했다. 본인이 직접 쓰지 않고 제삼자의 시선이 반영돼 젠슨 황의 리더십은 물론 개인적인 특징까지 보다 객관적이고 입체적으로 보여 준다.
1963년 대만에서 태어나 열 살에 부모님과 떨어져 미국으로 이주한 젠슨 황은 떡잎부터 남다른 아이였다. 소년 교화 학교였던 오네이다 침례교 인스티튜트(OBI)에 다니며 이민자로서 인종 차별과 학교 폭력에 시달렸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체력을 길러 싸움에 맞서고, 자신이 잘하는 수학을 친구들에게 가르쳐주면서 1년 만에 사실상 학교를 정복했다. 2020년 OBI 졸업 연설에서 그는 “OBI에서 보낸 시간은 내 인생에서 있었던 최고의 일 중 하나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젠슨 황은 오리건주립대학교에서 전기공학 학사를,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전기공학 석사를 취득한 뒤 AMD, LSI로직에서 마이크로칩 설계 일을 하던 중 만난 커티스 프리엠, 크리스 말라초스키를 만났다. 이들은 젠슨 황과 함께 지난 1993년 그래픽카드 제조 회사 엔비디아를 설립한 창립 멤버들이다. 엔비디아는 ‘질투’를 의미하는 라틴어 ‘인비디아’에서 유래했는데, 훗날 이름 그대로 모두가 질투하는 기업이 됐다.

커티스의 집에서 출발한 작은 스타트업이 전 세계 AI 혁신을 좌지우지하는 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젠슨 황의 ‘뚝심’이 있어 가능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지 말라는 부모의 만류와 이미 경쟁자가 많은 그래픽카드 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승산이 낮다는 동료들의 조언에도 그는 창업을 결심했다. 그래픽카드에 비전이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엔비디아의 첫 번째 칩 ‘NV1’은 오류가 발생하며 실패했고, 회사는 파산 위기에 처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새로운 투자자를 찾아 나서 구사일생했고, 기존 방식은 과감하게 생략하며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나갔다. 공동창업자인 커티스와 크리스가 서로 갈등하기도 했지만, 젠슨 황이 중심을 잡으며 회사의 경영을 도맡았다.
젠슨 황은 실리콘밸리의 많은 기업이 실패했던 병렬 컴퓨팅에 눈을 돌렸고, 세계 최초의 그래픽처리장치(GPU) ‘지포스’를 선보였다. 엔비디아는 6개월 주기로 신제품 그래픽카드를 출시했는데, 이는 다른 제조업체보다 2배나 빠른 속도다.
월가의 열광 속에 1999년 초 엔비디아는 설립된 지 6년도 채 되지 않아 기업가치를 6억달러로 평가 받으며 뉴욕증시에 상장했다. 당시 젠슨 황은 억만장자에 가까운 거부(巨富)가 됐지만, 경쟁자를 모두 밀어내고 궁극적으로 엔비디아만 살아남는다는 목표는 여전했다.
이를 위해 그는 기술과 인재에 집착했다. 경쟁 기업들의 핵심 인재를 데려와 엔비디아의 연구·개발(R&D)을 강화했다. ‘황의 분노’라는 말이 회자할 정도로 사람들에게 화를 내기도 하지만 누구나 미담을 하나씩 얘기할 정도로 직원을 살뜰히 챙긴다. 여기에 높은 보상까지 제공하니 자발적으로 퇴사하는 직원이 거의 없다.
엔비디아가 ‘쿠다’ 플랫폼 기반 AI 회사로 전환할 때도 그의 통찰력이 작용했다. AI의 가능성을 가장 먼저 내다봤고, ‘일생일대의 기회’라는 확신이 들자 바로 실행에 나섰다. 숙제처럼 열심히 공부하고,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은 그래픽카드 시장의 36번째 주자로 출발한 회사를 AI 공룡으로 성장시켰다.
젠슨 황은 실리콘밸리에서 보기 드물게 33년 동안이나 회사를 이끌며 모든 결정을 스스로 내려왔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기업’ 대열에 든 지금도 55명에게 직접 보고를 받으며 사내에서 대체 불가능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가 운이 좋았다는 일각의 평가에 젠슨 황은 “행운이었다. 단, 비전이 만든 운이다”고 응수한다.
AI는 결코 인류에게 위협이 아니며 ‘생각하는 기계’일 뿐이라는 그의 낙관론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선구안과 노력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듯하다.
엔비디아 젠슨 황, 생각하는 기계/스티븐 위트 지음·백우진 옮김/알에이치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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