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희 KAIST 교수 연구팀
공포기억 조절 뇌회로 규명
![KAIST 생명과학과 한진희(왼쪽부터) 교수, 한준호 박사, 서보인 박사과정생 [KAIST 제공]](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5/15/news-p.v1.20250515.71f0895bc2e34b32a8802abf668f6196_P1.jpg)
“날마다 잠도 못자게 만드는 전 남친의 무서웠던 데이트 폭력 기억 지울 수 있을까?”
국내 연구진이 그동안 마땅한 치료제가 없었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약물의 작용기전을 밝혀내 새로운 치료제 개발에 청신호를 밝혔다.
KAIST는는 한진희 생명과학과 교수 연구팀이 생쥐 모델을 이용한 실험을 통해, 감각적 고통 없이 심리적 위협만으로 유도되는 공포 기억의 형성을 조절하는 핵심 뇌 회로인 pIC-PBN회로를 규명했다고 15일 밝혔다.
기존에는 뇌의 외측 팔곁핵(PBN)이 척수에서 통각 정보를 전달받는 통각 상행 경로의 일부로만 알려져 있었으나, 연구팀은 비통각적 위협 자극에 의해서도 PBN이 공포학습에 필수적으로 기능한다는 새로운 사실을 밝혔다.
이번 연구는 ‘정서적 고통’과 ‘신체적 고통’이 서로 다른 뇌 신경회로에 의해 처리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실험적으로 입증한 사례로 평가된다. 특히 정서적 고통을 전달하는 데 특화된 신경 회로(pIC-PBN)를 명확히 제시함으로써, 신경과학 분야에서 큰 학술적 의의를 지닌다.
연구팀은 심리적 위협을 처리하는 뇌 회로를 알아보기 위하여 전기 자극이 아닌 시각적 위협 자극을 사용하는 새로운 공포 조건화 실험 모델을 개발했다. 생쥐는 포식자가 위에서 빠르게 접근하는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공포 반응을 보이는데, 연구팀은 이를 활용해 천장 화면에 빠르게 커지는 그림자를 제시함으로써 생쥐가 포식자에게 공격당하는 듯한 위협을 경험하게 하였다. 이 실험을 통해, 통각 없이도 심리적 위협만으로 공포 기억이 형성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이 새로운 행동 실험 모델과 함께 연구팀은 신경세포의 활성을 정밀하게 조절하는 화학유전학·광유전학 기법을 활용, 외측 팔곁핵(PBN)이 시각적 위협만으로도 공포 기억이 형성된다는 사실을 규명했고 PBN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상위 뇌 영역을 분석했다. 이에 따라 부정적 정서와 고통 처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후측 대뇌섬엽(pIC)이 PBN과 직접 연결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연구 결과 pIC–PBN 회로를 인위적으로 억제하면 시각적 위협에 따른 공포 기억 형성이 현저히 감소하지만, 선천적인 공포 반응이나 통각 기반의 공포 학습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도 규명했다. 반대로 이 회로를 인위적으로 활성화하는 것만으로도 공포 기억이 유도돼 pIC–PBN 회로가 심리적 위협 정보를 처리하고 학습을 유도하는 핵심 경로임이 드러났다.
한 교수는 “이번 연구는 PTSD, 공황장애, 불안장애 등 정서적 고통을 주 증상으로 하는 정신질환의 발병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맞춤형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중요한 토대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온라인판에 지난 9일 게재됐다. 구본혁 기자
nbgko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