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월 13~14일 예술의전당

수식어는 러시아 피아니즘 계승자

“러시아 음악 연주 때 자유로움 느껴”

드미트리 마슬레예프 [마스트미디어 제공]
드미트리 마슬레예프 [마스트미디어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새롭게 발견된 천재.”

2015년 27세의 피아니스트 드미트리 마슬레예프가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우승하자 세계 음악계의 시선은 일제히 그에게 향했다. 기교를 뛰어넘는 깊은 감수성과 음악성으로 매 라운드 차원이 다른 음악을 들려줬기 때문이다. 1990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보리스 베레조프스키는 그를 두고 이렇게 극찬했다.

그 후 10년이 흘렀다. 드미프리 마슬라예프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가장 달라진 것은 경험이고, 변치 않는 것은 연주에서 오는 기쁨”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10년 전보다 훨씬 더 많은 경험을 쌓았어요. 이젠 무대에서 더 자유롭고, 어떤 곡을 연주할지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됐죠. 매 시즌 많은 연주회를 하고, 새로운 레퍼토리를 배우고, 새로운 장소에 가고, 무대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관객을 만나는 걸 정말 좋아해요. 전 10년, 20년, 30년 동안 이 일을 계속 좋아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완벽한 테크닉, 흔들림 없는 정교함, 탁월한 해석과 섬세한 터치의 주인공. ‘초월적인 비르투오시티를 전달하는 피아니스트’(디아파종)라는 수사를 달고 다니는 피아니스트 드미트리 마슬레예프가 3년 만에 한국을 찾는다.

내한을 앞두고 가진 헤럴드경제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그는 “한국에 올 때마다 매우 설렌다”고 했다. 그에게 한국이 조금 더 특별한 의미를 갖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마슬레예프는 당시를 떠올리며 “3년 전 공연이 어제 일처럼 정말 생생하다”며 “한국 공연 때가 생일(5월 4일)이었는데, 그날 아내에게서 ‘곧 아빠가 될 거야’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정말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했다.

이번엔 초여름의 한국 투어다. 이틀의 공연(6월 12~13일)은 완전히 다른 두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첫날엔 모차르트와 베토벤, 차이콥스키를 엮었고, 둘째 날은 ‘올(All) 라흐마니노프’로 구성했다. 이 중엔 라흐마니노프가 편곡한 무소륵스키의 ‘소로친스크의 시장’ 중 ‘고파크(Gopak)’와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 중 ‘스케르초’도 포함돼 있다.

드미트리 마슬레예프 [마스트미디어 제공]
드미트리 마슬레예프 [마스트미디어 제공]

마슬레예프는 “연주하는 곡을 고를 땐 좋아하는 것을 넘어 사랑에 빠질 법한 곡을 고른다”고 했다. 무대 위에서 진심으로 연주할 수 없다면, 관객의 공감을 불러올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프로그램 선정 기준은 언제나 “진심을 다해 연주할 수 있는 곡”이다.

그는 고전 시대를 대표하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그 시대에서 가장 방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베토벤과 차이콥스키의 소품은 “대조적인 곡들이나 굉장히 듣기 좋은 구성”이라고 했다. 특히 “차이콥스키의 소품은 각각의 곡이 스타일이 모두 다르고 큰 대비를 이루고 있어 만화경 같은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한 그는 “감정과 멜로디, 화성이 만화경처럼 다채로운 색채를 지닌 작품”이라고 했다.

마슬레예프는 시베리아의 소도시 울란우데에서 나고 자라 일곱 살에 피아노를 처음 시작했다. 그는 “피아노는 끝없는 가능성을 지닌 악기”라며 “이제 피아노는 내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자 존재의 일부”라고 했다.

콩쿠르 이후 지난 10년간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그려온 그에겐 언제나 ‘러시아 피아니즘의 계승자’라는 수사가 따라다닌다. 정작 그는 “‘러시아 피아니즘’에 대해 자세히 생각해 본 적은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저 자신이 그 전통의 일부라고는 확실히 느낀다”고 했다.

“오랜 시간 러시아에서 공부했고, 제 스승님, 그분의 스승님, 그리고 그 윗세대까지 이어지는 전통이 있어요. 실제로 저는 러시아 음악을 정말 사랑하고, 어떻게 연주해야 하는지를 직관적으로 잘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러시아 작곡가의 새로운 레퍼토리를 준비하는 데도 전혀 어려움이 없고요. 그 음악은 제 영혼의 일부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러시아 곡을 연주할 땐 훨씬 더 자유로움을 느낍니다.”

찬란한 음악 유산과 정신을 계승하고 있지만, 몇 년째 이어지고 있는 러시아발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에 대해선 비판의 목소리도 숨기지 않는다. 3년 전 한국 공연 당시에도 그는 “러시아 연주자이자 현 시국에 활동하는 음악가로서 무대의 의미가 어느 때보다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며 “무대는 음악을 통해 인류애, 인간의 존엄과 삶, 동정의 감정을 관객과 소통하는 곳”이라고 했다. 지금도 무대에서 느끼는 감정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한다.

“클래식 음악은 인간성의 밝은 면을 표현하는 예술이기에 무대에 대해선 인간을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요. 전 무대에 오를 때, 작곡가와 단둘이 있는 동시에 음악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고 있다고 느껴요. 작곡가 없이 혼자 무대에 서야 한다면, 상상만으로도 무섭기도 해요. 작곡가는 제게 무대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알려주기에, 전 무대 위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어요. 그건 우리는 음악을 통해 인간성의 가장 밝은 면을 다른 사람들과 나눠야 한다는 거예요.”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