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유럽 공조회사 인수에 2조 쏟아부어

LG는 미국에 새 공조기기 생산시설 착공

가전보다 가파른 냉난방공조 사업 성장세

전통 가전사업 한계 넘을 新동력으로 주목

스위스에 위치한 마이크로소프트(MS)의 데이터센터 내부 전경. [마이크로소프트 홈페이지]
스위스에 위치한 마이크로소프트(MS)의 데이터센터 내부 전경. [마이크로소프트 홈페이지]

[헤럴드경제=김현일 기자]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가전·TV 사업을 넘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를 겨냥한 냉난방공조(HVAC) 시장에서 또 한번 격돌했다.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리는 데이터센터의 급증으로 공조 시장이 성장 조짐을 보이자 양사는 저마다의 전략으로 시장 선점을 노리고 있다.

LG전자가 선제적으로 미국에 공조기기 생산시설 구축을 결정하며 북미 시장 공략에 나선 가운데 삼성전자는 100년 전통의 유럽 최대 공조기기 회사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추격에 나섰다.

빅테크 기업들이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 계획을 밝힌 만큼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공조 사업의 성장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막대한 전력을 소모하며 뜨거운 열을 내뿜는 데이터센터에 대규모 냉각설비를 공급해 실적 성장은 물론 전통 가전 기업으로서의 한계를 극복한다는 전략이다.

세계 최대 공조 시장인 북미와 유럽은 물론 신흥 시장인 중동과 동남아에서도 데이터센터 건설 붐이 일고 있어 양사의 수주전은 전 세계를 무대로 치열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냉난방공조 사업 무서운 성장세…가전도 앞질러

삼성전자가 올 1월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열린 북미 최대 공조 전시회 ‘AHR 엑스포’에서 선보인 고효율 하이브리드 인버터 실외기 ‘하이렉스 R454B’.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가 올 1월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열린 북미 최대 공조 전시회 ‘AHR 엑스포’에서 선보인 고효율 하이브리드 인버터 실외기 ‘하이렉스 R454B’.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가 14일 총 15억유로(약 2조4000억원)를 들여 인수하기로 한 독일 플랙트그룹(이하 플랙트)은 데이터센터를 비롯해 65개국의 가정·사무실·학교·병원 등에 중앙 공조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중앙 공조 시장은 2024년 610억달러(약 86조원)에서 2030년 990억달러(약 140조원)로 연평균 8%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그동안 삼성전자의 공조 사업은 주로 가정용·상업용 시스템에어컨 중심의 개별 공조에 치우쳤다. 지난해 미국 공조업체 레녹스와 합작법인을 설립하며 북미 시장 공략에 나섰지만 이것 역시 주택과 중소형 빌딩을 겨냥한 개별 공조 시장에 해당했다.

그러나 이번 플랙트 인수로 공항·쇼핑몰·공장 등 대형시설에 들어가는 중앙 공조 사업까지 품게 돼 종합 HVAC 회사로 거듭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플랙트의 연간 매출은 7억유로(약 1조1000억원) 수준이다. 연내 인수 작업이 마무리되면 이르면 올해 4분기나 내년 1분기부터 삼성전자 실적에 반영될 전망이다.

LG전자의 경우 경기도 평택과 중국 청도에서 초대형 냉방기 칠러를 생산하고 있다. 작년 6월에는 미국 앨라배마주 헌츠빌에 신규 생산시설을 착공했다.

세계 최대 공조 시장 중 한 곳인 북미에서 상업용 HVAC 수요 증가에 대응하고, 시스템에어컨과 히트펌프 등 고효율 제품 공급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LG전자의 공조 사업을 총괄하는 ES사업본부는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3조544억원, 4067억원으로모두 분기 최대치를 기록했다. 매출과 영업이익은 작년 1분기 대비 각각 18.0%, 21.2% 늘어 두 자릿수의 성장률을 과시했다.

가전사업을 담당하는 HS사업본부의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9.3%, 9.9% 증가했다. 공조 사업의 성장률이 가전 사업을 크게 앞지를 만큼 고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북미·유럽 넘어 중동·동남아서 치열한 수주전 예고

LG전자가 올 1월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열린 북미 최대 공조 전시회 ‘AHR 엑스포’에서 선보인 터보 칠러. [LG전자 제공]
LG전자가 올 1월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열린 북미 최대 공조 전시회 ‘AHR 엑스포’에서 선보인 터보 칠러. [LG전자 제공]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데이터센터를 겨냥한 공조 사업 경쟁은 북미와 유럽을 넘어 신흥 시장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유럽연합(EU)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친환경 에너지 규제를 강화하면서 냉난방효율 관리의 중요성이 높아진 가운데 삼성전자는 독일에 기반을 둔 플랙트 인수가 유럽에서 사업 확대의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플랙트는 영국 데이터센터와 대학교, 네덜란드 대학병원, 이탈리아 공항 등 유럽 지역을 대상으로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다.

향후 아시아 시장은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공조 사업 수주전이 치열하게 펼쳐질 것으로 예상되는 후보 지역이다.

오픈AI와 소프트뱅크가 일본에 대규모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기로 했고, 아마존과 구글이 태국에 데이터센터 투자를 결정했다.

인도에서 3곳(푸네, 뭄바이, 첸나이)에 데이터센터를 운영 중인 마이크로소프트는 추가로 네 번째 데이터센터도 구축하기로 했다.

조주완 LG전자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3월 한국을 찾은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를 만나 MS 데이터센터에 LG전자의 냉각 솔루션을 공급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최근 싱가포르에 있는 축구장 9개 규모의 초대형 물류센터에도 고효율 상업용 시스템 에어컨을 공급하는 실적을 올렸다.

이밖에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아시아 국가들이 도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어 공조 사업 기회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올 3월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조주완 LG전자 CEO는 “현재 10조원 규모의 공조 사업을 2030년까지 20조원 규모의 사업으로 성장시키는 비전을 가지고 있다”며 공조 사업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joz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