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의대생의 고백 ‘카나리아의 날갯짓’

경쟁 속 공허함·불안…자신·행복 대해 고민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나는 성적이라는 기준에서 벗어나서 나 자체로 사랑받을 수는 없는 건가? 내가 1등을 하고 1등급을 받아오는 딸이 아니라면 내 존재의 의미가 정말 없는 거야?’.

‘4세 고시’, ‘7세 고시’가 외신에 나올 정도로 한국은 지금 ‘의대 광풍’에 빠져 있다. 아직 학교도 가지 않은 유아 시기부터 의대를 목표로 설정하고, 꿈과 관계없이 성적 최상위권에 들어 의대에 진학하는 것을 ‘성공’으로 여긴다.

그런데 의대에 들어가면 끝일까? 행복이 보장되는 걸까? 입시 경쟁을 뚫고 의대생이 된 조영서·이지호·유다인은 신간 ‘카나리아의 날갯짓’에서 이러한 질문에 ‘아니다’고 말한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전교 1등과 의대 합격을 한 뒤에도 저자들은 공허감과 불안에 직면한다.

대다수의 학생이 그렇듯, 이들도 생명을 구하는 의사가 되겠다는 자신의 꿈보단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의 기대, 사회적인 인식에 떠밀리듯 의대를 목표로 하게 됐다. 전교 1등을 하고, 1등급을 받아 의대에 가기 위해 자신을 채찍질했다.

공부를 하면서도 회의가 드는 순간이 있었지만 멈춰서 자신을 돌아볼 여유는 없었다. 영서는 고등학교 첫 시험에서 전교 1등을 한 뒤, 2등으로 밀리면 안 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점수가 조금만 떨어져도 “넌 이제 의대 못 간다”는 말이 따라왔고,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심장통’까지 얻게 됐다. 그는 “전교 1등은 심장에 칼이 꽂힌 기분이었다”며 “조금만 틀려도 사랑받지 못할 것 같은 공포로 다가왔다”고 고백한다.

지호는 고등학교 진학 후 중학교 때보다 성적이 떨어지면서 부모님과 갈등을 겪게 됐다. 성적보다도 자신에 대한 부모님의 믿음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이 더 큰 충격이었다. 달라진 부모님을 보면서 ‘성적이 왜 그렇게 중요한 건데? 좋은 대학에 못 가면 인생이 망하는 거야’라는 의문이 생겼다.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성적, 등수 같은 숫자들이 중요한 것은 알겠지만 ‘엄마 아빠까지 나를 숫자로 판단하면 어떡해’라는 원망도 했다.

다인은 시험을 망친 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오열하고, 자율형 사립고 입시에 떨어져 일반고에 진학한 뒤 우울감에 빠졌다. 메신저에는 “죽고 싶다”는 상태 메시지를 올렸다. 공부의 원동력은 ‘남들의 시선’이었고, 매 시험의 등수는 내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 아닌, 나보다 더 잘 본 친구들을 보며 열등감을 느끼는 계기가 됐다.

세 친구는 재수 끝에 의대에 합격한 뒤에도 행복에 대한 확신이 아닌 의구심을 마주한다. 자신에 대해 되돌아보며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그리고 얻은 각자의 결론을 가지고 비슷한 처지에 놓인 학생들에게 넌지시 말한다.

영서는 “중요한 건 어디에 도착하느냐가 아니라, 누구로서 그 길을 걷느냐”라고 생각하게 됐고, 지호는 “꿈은 꼭 어떤 직업이어야만 하는 걸까? 어떤 일은 할 것인지 보다는 어떤 삶을 살 것인지가 내겐 더 중요한 문제였다”고 말한다. 다인은 “그동안 외부의 인정과 성공이라는 굴레에 나 자신을 가두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굴레에서 벗어나는 순간, 비로소 행복을 느끼고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책 제목에 나오는 ‘카나리아’는 19세기 초 광부들이 탄광에서 유독가스를 감지하기 위해 데려간 새다. 유독가스에 민감한 카나리아는 일산화탄소가 새어 나오면 하던 노래를 멈추고 쓰러진다. 새가 노래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곳이 곧 위험해진다는 신호였다. 저자들은 입시 경쟁에 내몰린 학생들이야말로 사회의 위험을 제일 먼저 감지하고 상처받는 ‘카나리아’라고 지적한다. 아이들이 ‘자기다움’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사회 전체가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다.

카나리아의 날갯짓/조영서·이지호·유다인 지음/에테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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