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패션 브랜드 망고의 ‘선셋 드림’ 캠페인은 AI(인공지능)가 제작한 이미지 비주얼과 룩북을 전면에 내세웠다. 생성형 AI가 제안한 콘셉트를 기반으로 스타일 톤앤매너를 구성하고 비주얼 디렉팅까지 활용했다는 점에서, AI 기술을 상업적 목적에 접목한 대표 사례다. 또 자라는 AI 기반 수요 예측 시스템을 활용해 지역, 기후, 소비 패턴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생산 및 유통 전략을 세우고 있다.

패션 산업 내에서 AI는 디자인 영역까지 확장되고 있다. 프라다는 최근 일부 캡슐 컬렉션의 콘셉트 기획에 AI 분석 결과를 반영했으며, 구찌와 펜디는 텍스타일 디자인에 AI 도구를 실험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기존 디자인 방식에 AI를 통합하려는 시도는 점점 구체화되고 있으며 실질적인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지난 2월 파리에서 열린 AI 패션 위크는 AI가 만든 디자인이 실제 컬렉션과 유통 단계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AI 기반 브랜드 Maison Meta는 생성형 AI로 제작한 룩북을 통해 실물 제작된 의상들을 선보였고, 일부는 바이어와 상담 및 판매로 이어졌다. AI가 디자인 참고 자료를 만드는 것을 넘어, 실제 브랜드 활동의 한 축으로 기능하고 있는 셈이다.

시장 반응이 빠르게 바뀌는 지금 같은 시대에, AI는 민첩한 대응이 필요한 브랜드에게 유용한 파트너다. 가장 큰 장점인 속도와 확장성으로, 한 명의 디자이너가 고심 끝에 몇 개의 콘셉트를 도출하던 것을 AI는 수십, 수백 개의 스타일을 빠르게 생성해 다양한 가능성을 던진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과연 AI가 패션의 크리에이티브 영역까지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까?

같은 블랙 드레스라도 2019년과 2024년이 담고 있는 시대적 맥락은 다르다. 그 차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할지는 여전히 사람의 감각과 직관의 영역일 수 있다. 브랜드의 철학과 정체성에 맞는 방향을 선택하고 다듬는 작업에서, 사람의 역할이 완전히 대체될 수 있을지에 대해선 확신할 수 없다.

또한 AI는 입는 경험을 갖지 못한다. 옷의 촉감, 무게, 움직임에 따른 실루엣 변화 등은 실제 착용에 기반한 감각적 판단이 필요한 영역이다. 패션은 이미지로만 완성되는 산업이 아니다. 소재 선택, 봉제 방식, 실루엣 설계까지 포함한 총체적 ‘감각의 조합’이 필요한 분야다.

지금의 AI는 패션 산업에서 대체자라기보다는 확장자에 더 가까운 모습이다. 더 효율적으로 실험하고, 반복하고, 정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AI는 확실한 강점을 가진다. 반면 브랜드의 고유한 미감이나 시대성과 문화적 메시지를 담아내는 작업에서는 인간의 개입과 판단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시선도 존재한다. 결국 두 역할은 어디에서 만나고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지를 모색하는 중이다.

기술만으로는 감동을 만들기 어렵고, 감성만으로는 시장의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 디자인은 이제 한 사람이나 한 기술이 만드는 결과물이 아니라 다양한 도구와 감각이 협업하는 구조로 진화하고 있다. 데이터 위에 직관을 얹고, 알고리즘 속에서 스토리를 찾는 감각을 가진 브랜드와 크리에이터가 앞으로 열어 갈 패션산업의 앞자리에 서 있지 않을까.

지승렬 패션칼럼니스트


mp1256@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