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재기’에 1분기 호실적 기록했지만
반짝 효과에 중장기 수요 침체 우려
극단의 미중갈등, 삼성·SK 노심초사
![미국이 스마트폰과 반도체 등에 대한 관세를 놓고 오락가락 하면서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사진은 반도체 생산공정 현장 모습 [헤럴드 DB]](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14/news-p.v1.20250309.851a64ed1ae34bb28fd5682f7e65bf6b_P1.jpg)
“그런데요 기자님. 진짜 저도 모르겠어요.(허탈한 웃음)”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오락가락’ 관세정책에 글로벌 경제가 뿌연 안갯속과 같습니다. 무엇 하나 뚜렷하게 예측할 수 없는 가운데, 반도체 업계 전문가 대다수도 당장 2분기 시장 상황에 대해 “모르겠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만큼 혼돈의 시기라는 의미입니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는 일단 아무런 리액션을 취하지 않고 상황을 관망하는 모양새입니다. 모든 시나리오를 대비해놓고 준비 태세를 취하고 있는 거죠. 현재까지 벌어진 일련의 상황을 정리해보고 그나마 확실한 시나리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오락가락’ 트럼프 관세, 반도체는?=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트럼프 정부의 관세 여파는 3개월 넘게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문제는 트럼프의 ‘말’이 일관성 없이 극단을 달리고 있다는 겁니다. 그는 70여개국에 상호관세를 부과한다고 했다가 조치 시행 13시간여만에 이를 90일간 유예하고 10%의 기본관세만 적용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관세전쟁의 카운터파트인 중국은 예외입니다.
상호관세에 반도체와 스마트폰 등이 포함되는 것을 두고도 혼선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11일(현지시간) 밤 미국 세관국경보호국(CBP)가 상호관세에서 제외되는 수입품을 공지했는데, 여기에 스마트폰, 노트북 컴퓨터, 반도체 제조 장비, 집적회로(8542), 평면 디스플레이 모듈,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다이오드와 트랜지스터를 비롯한 반도체 장치 등 여러 전자 제품이 포함된 겁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반도체와 스마트폰에 대해 트럼프 정부가 한 발 물러선 것이라는 희망 섞인 분석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예외를 발표한 적이 없다”며 반도체에 대해서 품목별 관세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상호관세와 중첩되지 않도록 했을 뿐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즉, 스마트폰과 반도체 등에 대한 관세 부과를 강행하겠다는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반도체 품목별 관세에 대해 “월요일(14일)에 그에 대한 답을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반도체 관세의 구체적인 내용은 한두 달 뒤쯤 발표될 예정입니다.
전문가는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한 변덕에 대한 깊은 우려를 보이고 있습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하루가 멀다하고 정책이 바뀌니 언제 또 다시 관세폭탄이 시행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라며 공급망이나 시장 상황의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우니 최악의 경우까지 여러가지 케이스를 가정해놓고 예의주시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혹여나 별도의 품목별 관세가 부과되지 않는다고 해도 반도체는 미국발 관세 강화 흐름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반도체는 ‘산업의 쌀’로 불릴 만큼 가전·스마트폰뿐 아니라 자동차까지 각종 완제품에 필수적으로 탑재됩니다.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 여러 산업에선 “반도체부터 확보하고 보자”며 사재기 움직임이 나타나게 됩니다.
▶“일단 사놓고 보자” 사재기가 불러올 재앙?=관세전쟁의 여파는 반도체 원자재 시장에서 제일 먼저 나타나고 있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반도체 칩과 기판을 연결하는 솔더볼의 소재인 주석 가격이 이달 들어 톤당 3만7000달러를 넘어섰습니다. 반도체 칩 내부 회로를 연결할 때 쓰이는 구리는 지난달 말 기준 파운드당 5.183달러로 올랐습니다. 올 들어서만 28% 급등했습니다. 반도체 기판에 쓰이는 희소금속인 ‘인듐’ 가격도 지난달 기준 ㎏ 당 400달러로, 지난해 초(260달러)에 비해 50% 넘게 상승했습니다.
주석의 주요 생산국인 미얀마에서 진도 7.7의 강진이 발생한데 더해, 미국의 관세 부과 움직임에 기업들이 미리 원재료를 비축하면서 가격이 더 오르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특히, 인듐의 경우 중국 의존도가 높은데, 중국이 미국의 고관세 정책에 대한 보복으로 희소금속 수출을 규제하면서 공급이 줄어들어 가격이 크게 올랐습니다.
원재료 값의 상승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 기업들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원가 상승분을 고객사에 전가하기도 부담스럽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관세 전쟁은 삼성과 SK의 실적을 단기적으로 높이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거의 모든 산업에서 반도체가 쓰이니 사재기 움직임이 나타났고, 매출 상승을 불러일으킨 겁니다.
삼성전자는 최근 1분기 잠정 실적을 발표했는데요. 매출 79조원, 영업이익 6조6000억원으로 시장의 기대치를 상회했습니다. 특히, 메모리에서만 3조원 안팎의 영업이익을 낸 것으로 추정됩니다. 중국의 ‘이구환신(낡은 제품을 새것으로 교체 지원)’ 정책에 따른 수요 증가에 더해 지난해 말부터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전쟁 양상이 나타나자, 기업들이 이를 대비해 반도체 물량 비축에 나선 영향이 컸습니다.
하지만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닙니다. 사재기는 ‘반짝 급등’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글로벌 경제 회복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장기 수요 둔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이미 코로나19 때 메모리 업계는 비슷한 상황을 겪었습니다. 외출을 하지 못하니 가정 내 첨단 가전기기 수요가 갑자기 늘어났고, 당시 메모리 업계는 전례없는 호황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팬데믹이 끝나자 가전 및 IT기기 수요는 뚝 끊겼습니다. 이미 좋은 가전제품들을 대거 사놨으니 당분간은 교체할 일이 없어진 겁니다.
따라서 반도체 업계는 1분기 호실적에 대해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경제 불확실성 증폭에 기업들은 투자를 늘리지 않고,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으면서 실적이 악화할 가능성도 나옵니다.
▶삼성·SK도 가격 올릴까?=트럼프 정부의 관세폭탄에 메모리3사 중 가장 먼저 반응한 건 미국 마이크론입니다. 로이터에 따르면, 마이크론은 고객사에 일부 제품에 대해 트럼프 관세에 따른 추가 요금을 부과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발송했다고 합니다. 상호관세 부과 대상에서 반도체 품목이 제외되긴 했지만, D램 모듈과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는 세금이 부과될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셈법도 복잡해지게 됐습니다. 현재 두 회사의 D램 모듈과 SSD는 한국과 중국에서 생산돼 미국으로 수출됩니다. 삼성전자는 한국 천안과 온양, 중국 쑤저우에 공장을 두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는 한국 이천과 중국 충칭에서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공장을 운영 중입니다.
한국은 상호관세율이 25%로 책정됐지만, 현재로서는 90일 유예가 된 상황입니다. 일단은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고 대응한다는 방침입니다. 2분기 트럼프 정부의 관세전쟁 흐름과 시장 수요를 보고 실행에 옮길 것으로 예측됩니다. 김민지 기자
jakmee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