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은 물리적 수명의 한계를 가진 사람과 달리 영속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그 소유권과 경영권이 한 세대로부터 다음 세대로 이전되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 큰 기업일수록 기업승계는 주주를 비롯한 여러 이해관계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뉴욕증권거래소(NYSE)는 상장기업들이 CEO 승계 정책과 원칙 수립을 의무화했으며, 우리나라 역시 금융회사에 대해서는 일찍이 지배구조 선진화 방안의 하나로 경영권 승계 계획을 포함시켰다.
우리나라의 대부분 민간 기업그룹처럼 지배주주가 있는 소유경영(혹은 오너경영) 체제 기업의 경우, 막대한 재산과 강력한 통제력이 동시에 한 집안에서 세습되고 이를 위해 무리한 수단이 동원될 수 있다는 시각 때문에 기업승계는 더욱 큰 관심사가 된다. 하지만 경영전략의 관점에서 보면 승계전략도 기업이 조직체로서 지속 성장, 발전하기 위한 핵심 의사결정의 대상이다. 따라서 시장과 제도는 경영권 승계라는 필수불가피한 과정이 우리 경제의 취약한 아킬레스건이 되기보다는 기업들이 중장기적인 밸류(기업가치) 관점에서 바람직하면서도 책임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최근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보유 중인 ㈜한화 보통주식 지분 50%를 3:2:2의 비율로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 김동선 한화호텔앤드리조트 부사장에게 오는 4월 30일자로 분할 증여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번 ㈜한화 주식 증여는, 우리 자본시장법에 새롭게 도입된 내부자거래 사전공시(거래계획 보고) 제도에 기반한 것으로 주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주주의 증여 및 그에 따른 지분 변동의 구체적인 내용 등을 실제 지분 변동 전에 다른 주주와 자본시장에 선제적으로 공개한 것이다. 이후 실제로 증여가 실행되면 이를 반영하여 증여세 등 조세가 부과되므로 예측 가능성과 증여세 등 거래비용 산정의 합리성을 최대한 확보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서 중차대한 역할을 하는 대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고 견실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지배주주가 지분을 제3자나 시장에 매각하여 완전히 다른 소유구조로 이행하지 않는 한 내부적으로 충분한 경영 수업을 통해 조직의 정체성과 핵심 가치를 이해한 차세대 오너를 중심으로 전열을 정비하여 불의의 공백을 최소화하는 면밀한 승계 전략이 반드시 필요하다.
한화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그룹은 오너경영과 전문경영이 조화를 이루며 경영의 안정성과 전문성을 공히 강화하기 위한 시스템과 문화를 축적해왔다. 갈수록 가중되고 있는 대내외 경영 환경의 어려움으로 기업들은 단기 대응 전략은 물론이고 큰 중장기 전략 수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따라서 대규모의 선제적 투자든 냉정한 사업구조 개편이든, 선도적 트랜스포메이션을 위한 위험 감수와 과감한 혁신을 뒷받침할 수 있는 기업가정신과 책임경영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핵심역량의 기반이 되고 있다. 한화그룹의 이번 발표는 “3세의 경영수업·지분 사전 증여·책임경영 강화 및 실제 성과 입증”의 단계로 나누어지는 기업승계 모델을 선택한 것이라 할 수 있는바, 향후 그룹사들의 경제·사회적 가치로 대변될 그 결과에 앞으로도 큰 관심이 쏠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지환 KAIST 경영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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