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의 한 도시에서 12일(현지시간) 러시아의 공습으로 자동차가 불타고 있다. [로이터]](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3/12/news-p.v1.20250312.f1cb401b843145b3940b024d581bbfec_P1.jpg)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1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전쟁의 ‘30일 휴전’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미국이 러시아와 실무자 협의, 정상 전화 등을 통해 이번 휴전안을 설득하고 러시아가 수용하면 2022년 2월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마침내 휴전에 접어들게된다.
러시아는 2022년 2월 24일 ‘특별군사작전’이라는 명목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 러-우 전쟁이 발발했다.
러시아는 명목상으로 우크라이나를 비무장화하고 탈나치화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반러 노선의 우크라이나 정권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추진함에 따라 흑해함대의 근거지 상실이 우려되는 등 러시아측 안보 위기감이 고조된 것이 실질적인 침공 이유였던 것으로 회자된다.
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침공 수개월 전부터 우크라이나가 반러 감정을 조장하는 등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며 우크라이나를 비난했다.
또 우크라이나 사회를 신나치주의자(네오나치즘)들이 지배하고 있다며 대 우크라이나 전쟁을 나치 독일에 희생당한 러시아인과 나치의 대결로 몰아갔다.
우크라이나가 나치즘의 영역에 편입됐다는 인식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우크라이나를 점령한 나치독일이 우크라이나인들에게 탈러시아를 도와주겠다며 부역을 요구한 것에서 기인한다.

실제로 일부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얻고자 나치독일에 부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크라이나군 특수부대로 알려진 아조프(아조우) 연대가 나치즘에 부역한 일종의 우크라이나 민족자결주의자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군사 조직이다.
2014년 창설 당시 네오나치즘, 극우 및 백인우월주의 성향을 표방했지만, 같은 해 11월 우크라이나 정규군으로 편입된 이후 현재는 나치즘과의 연결성을 부인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기원도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궁 집무실에서 문건을 보고 있다. [타스]](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3/12/news-p.v1.20250312.781a616465bf4d738828f683ffe721e9_P1.jpg)
우크라이나 전쟁, 어떻게 시작됐나
러시아는 소치 동계올림픽(2014년 2월 7~23일) 기간 중인 2014년 2월 20일 우크라이나 영토인 크름반도를 합병했다.
이어서 2014년 4월 6일부터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국경 인접지역인 돈바스 지방과 전쟁이 벌어졌다.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군과 돈바스 분리주의 반정부군의 전쟁이었으며, 이를 통해 아조우 연대의 활약이 부각되는 한편, 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 등이 우크라이나로부터 분리 독립을 추진하며 확전 양상을 띠게 된다.
결국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친러 반정부군 사이의 치열한 공방을 빌미로 러시아군이 개입하게 된다.
이 전쟁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확전되기 1년 전인 2021년 2월,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대통령을 위시한 국제사회는 러시아의 2014년 크름반도 병합을 인정하지 않았고, 우크라이나는 크름반도 반환의 명분을 차츰 쌓아가면서 나토 가입을 추진했다.
러시아 역시 2021년 3~4월 우크라이나 국경지대에서 군사력을 증강하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고, 그해 10월부터 2022년 2월까지 2차 군사력 증강에 나섰다.
그러면서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계획이 없다며 연막 작전을 폈으나, 미국은 2021년 12월부터 러시아군 병력과 장비 이동에 대한 위성 영상을 바탕으로 러시아군의 침공을 예고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전쟁 개전 사흘 전인 2022년 2월 21일 연설에서 “우크라이나는 진정한 국가의 지위를 가진 적이 없다”면서 우크라이나의 국가적 지위를 공격했다.
또 1954년 당시 최고 권력자인 니키타 흐루쇼프 공산당 서기장이 크름반도를 모종의 이유로 “러시아에서 떼내 우크라이나에 줬다”며 크름반도를 러시아가 되찾아야 할 땅인듯 묘사했다.
또 푸틴은 우크라이나 사회를 신나치주의자가 지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당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자신의 할아버지가 나치에 맞서 싸운 소련군으로 복무했고, 자신의 가족 중 3명이 나치에 의한 홀로코스트로 사망했다고 반박했다.
푸틴 대통령이 돈바스 전쟁이 격화되던 무렵인 2022년 2월 21일 우크라이나에서 분리 선언한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 인민공화국을 정식 국가로 승인한다고 연설하고, 다음날 러시아 연방평의회가 만장일치로 푸틴이 러시아 외부에 군사력을 쓰는 것을 허용하자 젤렌스키는 예비군 징병 명령을 내렸다.
2월 23일 밤 젤렌스키는 러시아 시민들에게 자신은 신나치주의자가 아니라며 전쟁을 막아달라고 호소했지만, 다음날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된다.
![마이크 왈츠 미국 국가안보보좌관과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이 안드리 예르마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실장, 안드리 시비하 우크라이나 외무장관, , 루스템 우메로우 우크라이나 국방장관과 11일(현지시간) 사우디아리비아 제다에서 만나 사우디 정부 중재 하에 회담에 참여하고 있다. [AP]](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3/12/news-p.v1.20250312.23710adbdceb47b1ad05ea0608aa54c1_P1.jpg)
우크라이나 전쟁 3년의 경과
개전 직후 세계 각국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단기간 내 항복할 것으로 예측했다. 푸틴의 대 우크라이나 전쟁 전략 역시 단시간 내 수도 키이우를 점령해 항복을 얻어낸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저항이 장기간 이어지자 국제사회 분위기도 점차 우크라이나 안보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러시아군의 공격은 북부, 북동부, 남부, 동부 구역에서 전면적으로 이뤄졌다.
북부 전선에서는 수도 키이우를 중심으로 우크라이나군이 강하게 저항해 러시아군이 큰 손실을 입었다.
러시아군은 병력을 재배치해 돈바스 지역 일대에 500km 길이의 전선을 형성한 뒤 새로운 공세를 시작했고 9월 30일 도네츠크주, 헤르손주, 루한스크주, 자포리자주 등 4개주를 합병하는 등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침공은 국제적으로 큰 비난을 샀다.
유엔 총회에서는 러시아군의 전면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이 통과됐다.
국제사법재판소는 러시아의 군사작전 중단을 명령했고, 유럽평의회는 러시아의 회원국 자격을 정지시켰다.
![[연합]](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3/12/news-p.v1.20250312.e05036cf605c413c96e63c9b56b2cc21_P1.jpg)
국제사회는 침략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에는 다양한 방식의 경제 제재를 가했고, 우크라이나에는 인도적·군사적 지원을 제공했다.
미국, 영국 등 전쟁 전부터 우크라이나의 안보를 지원했던 나라들에 더해 폴란드, 체코, 루마니아 등 여러 국가가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유럽의 방어를 명목으로 무기와 물자를 지원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다시 한 번 무기대여법을 제정, 우크라이나를 군사적으로 적극 지원했다.
아울러 주요 서방국가들은 러시아의 국제 결제망 퇴출, 유럽과 러시아를 연결하는 천연가스관 사업 취소, 푸틴 체제 주요 인사들의 국외 자산 동결, 첨단 부품 공급 차단, 러시아 국적 항공기 및 선박에 대한 영공 및 영해 출입 금지 등 다양한 제재 조치를 취했다.
이렇게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러시아는 소련 해체 당시에 버금가는 국가 부도 위기에 놓였지만, 한국을 포함한 49개 국가를 비우호 국가로 지정해 역제재를 부과하며 맞대응하기도 했다.
러시아군은 전쟁 장기화에 따라 바그너 그룹 등 용병 집단을 동원하고 중국과 북한 등에 군사 원조를 요청했다.
죄수나 은퇴한 예비역을 규합해 조직한 민간군사기업(PMC)인 바그너 그룹은 전쟁 중 숱한 전과를 올리면서 한때 국민적 찬사를 받았으나, 러시아군 수뇌부와 갈등을 빚으면서 반란 세력으로 의심을 산다. 결국 바그너 그룹 대표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탄 전용기가 추락해 희생당하며 일단락된다.
우크라이나는 2024년 8월 6일 러시아의 침공 와중에 러시아 본토를 급습해 쿠르스크 주 일부를 점령하는 성과를 올렸다.
당시 우크라이나 군 총사령관은 쿠르스크 지역 1000㎢ 지역을 점령하고 있다고 밝혔다.
허를 찔린 러시아는 2024년 10월 북한군의 파병 원조를 받아 쿠르스크 지역 탈환을 도모한다. 현재까지 수천명의 북한군 희생자를 낸 쿠르스크 탈환 작전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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