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 없고, 조만간 정하지도 않을 것”
與 지도부, ‘NCND’로 사실상 용인
“중도층 공략할 생각이 없는 것”
극우 세력화 현상 우려도

[헤럴드경제=김해솔 기자] 국민의힘이 극우 진영에서 제기되는 부정선거론에 선을 긋지 못하고 있다. 사실상 전략적 방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24일 오후 YTN 인터뷰에서 ‘윤석열 대통령 측이 계속 주장하는 부정선거론에 대해서는 당 차원에서 공식적인 입장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나’라는 질문에 “아직까지 우리 당에서 공식적으로 입장을 정한 것은 없고, 조만간 입장을 정할 것으로도 예상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권 위원장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하는 부분에 있어서 선거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는지에 대해서 검토해 보는 것도 생각해 볼 만하다”며 선거제 개편으로 화두를 넘겼다. 그러면서도 “아직은, 지금은 준비하거나 시작할 단계는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정치권 주류가 ‘음모론’으로 치부하는 부정선거론은 윤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 사태를 일으킨 주요 명분으로 내세우는 주장이다. 윤 대통령 측이 최근 탄핵심판 변론 과정에서까지 부정선거론을 펼치면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반박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국민의힘 지도부는 ‘NCND’(Neither Confirm Nor Deny·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음)로 일관 중이다. 지도부 관계자에 따르면 “입장을 정하지 않는 것이 입장”이라는 것이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24일 부정선거론에 대한 입장을 묻는 기자들의 관련 물음에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를 그렇게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지만, 당 차원의 대응은 나오지 않고 있다. 한 비대위원도 통화에서 “비공개 회의 등에서 부정선거론에 대해 논의한 적이 없다”고 했다.
손을 놓은 사이 유튜브와 SNS, 집회 시위 현장 등에 머물러 있던 부정선거론은 국회의사당 담장을 넘어왔다. 초선의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모인 단체 대화방에서 계속해서 부정선거론을 제기하다 다른 의원들에게 저지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동욱 수석대변인도 지난 21일 S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저희 당의 입장은 부정선거는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라면서도 “제가 생각하기에 부정선거가 있었다고 믿는 분들이 이렇게 많은 것을 보면 뭔가 의심할 수 있는 정황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의원 중에서도 부정선거가 분명히 있다고 믿는 분들이 있고, 저 역시도 선거를 치러 보면 ‘이거 이상한데’라고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며 “정부가 좀 더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입장으로 부정선거가 없었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 줄 의무가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부정선거론을 사실상 용인하는 배경에는 윤 대통령 탄핵 반대와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는 이들을 중심으로 보수 지지층이 결집하고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갤럽이 지난 21~23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0명에게 현재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지를 물은 결과(응답률 16.4%) 국민의힘이 38%, 더불어민주당 40%로 나타났다. 이를 두고 한국갤럽은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후인 지난달 중순 민주당 지지도가 현 정부 출범 이래 최고치를 경신하며 국민의힘과 격차를 벌렸는데, 이번 달 들어서는 양대 정당이 작년 총선 직전만큼 과열 양상을 띤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여론조사에서는 보수 지지층이 부정선거론에 공감한다는 경향이 나타났다. 조선일보·케이스탯리서치의 지난 21~22일 전국 18세 이상 남녀 1005명 대상 조사(응답률 16.6%)에서 ‘부정선거 의혹’에 대해 전체 응답자의 43%가 ‘공감한다’고 답했는데, 본인의 이념적 성향이 ‘보수’라고 밝힌 응답자 중에서는 70%가 부정선거 의혹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지지자라고 밝힌 경우에는 이 수치가 78%까지 올랐다.
한 여권 관계자는 “부정선거론을 용인하는 것은 중도층을 공략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라며 “당이 당장의 지지율에 고취돼 큰 그림을 못 그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극우 지지층의 세력화 현상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한 중진 의원은 “과거 같으면 ‘느슨한 연대’를 통해 우리(국민의힘)를 찍어줬을텐데 지금은 달라진 것 같다”라며 “(부정선거론자인) 황교안 전 대표 같은 대권주자가 나오면, 국민의힘 후보 대신 그 쪽을 찍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들은 전화 면접 방식으로 실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p)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