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 ‘꽃 피는 아몬드나무’ (1890)
빈센트 반 고흐 ‘꽃 피는 아몬드나무’ (1890)

이번엔 빈센트 반 고흐의 또 다른 아픔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산뜻한 정물화로 알려진 ‘꽃 피는 아몬드나무’입니다. 겨울 추위 속에서 꽃을 피운 아몬드나무를 표현한 작품입니다.

고흐에겐 화가의 공동체를 만드는 꿈이 있었습니다. 1888년 파리 생활에 지친 고흐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남프랑스의 아를로 갑니다. 고갱과 함께 노란 집에서 작업을 시작했지만 사이가 멀어집니다. 급기야 고흐는 자신의 왼쪽 귀를 자릅니다. 그는 부족한 자신을 늘 지지하는 동생 테오와 그의 아들에게 ‘꽃 피는 아몬드나무’를 선물합니다. 푸른 하늘 배경으로 사방으로 뻗은 나뭇가지에 핀 꽃잎은 동생과 조카에 대한 사랑의 표현일 겁니다.

이 작품 그리고 5개월 뒤 고흐는 자살합니다. 이 비극과 달리 그림에선 생명력이 물씬 느껴집니다. 저에겐 처연함을 느끼게 하는 이미지로도 기억됩니다. 한창 바쁘던 시절, 병원에 박혀 밤낮을 보내다 보면 시간 감각도 무뎌졌습니다. 어쩌다 어두운 창밖을 보고서야 밤이라는 걸 알아차리곤 했죠. 어느날 문득, 그토록 많은 밤을 지새웠던 연구실 한쪽 벽에 고흐의 이 그림이 걸려있단 사실을 알았습니다. 일상의 분주함이 삶을 메마르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그 순간 유난히 쓸쓸했습니다.

유충이 인고의 시간을 거쳐 나비가 되듯 우리도 볕 들 날을 기다리며 삶의 한 시절을 견딥니다. 인내는 분명 값지지만 ‘꽃 피는 아몬드나무’를 보며 인내의 시간을 꼭 고통 속에서 보내야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행복한 인내, 즐거운 인내는 불가능한 걸까요.

인내는 의지력의 문제라고 흔히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내 호르몬인 ‘가바’에 대해 알면 달라질 겁니다. 가바는 억제성 신경전달물질로, 뇌와 신경을 달래 다른 혈압을 낮춰주는 작용을 합니다. 고혈압을 예방하고 혈중 중성지방 수준을 낮추며 변비 개선, 간과 신장 기능 강화 등 효과가 있습니다.

신경을 이완·진정시켜서 평안한 밤을 약속하고, 우울증 완화에도 도움이 됩니다. 한 연구에 의하면 우울증 환자 대부분은 가바 수치가 평균 이하를 보인다고 합니다. 자연식품, 보충제를 챙겨먹고 명상이나 운동을 통해 가바 수치를 높이면 도움이 됩니다.

가바의 유익함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질병이 주의력결핍 과잉 행동 장애(ADHD)입니다. 요즘엔 성인에게도 많이 발견됩니다. ADHD 환자도 가바 수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면 증상을 완화할 수 있습니다. ADHD를 앓는 아동의 가바 수치는 평균치보다 크게 낮고, 수치가 낮을수록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가바를 ‘인내 호르몬’이라 이름 붙인 이유입니다. 충동적으로 반응하는 건 그만큼 제어력과 인내심이 부족하다는 의미죠. 인내심이 많고 적은 것도 호르몬 때문이라니 신기하죠? 요즘 같은 ‘욱하는 사회’, ‘분노 사회’도 가바의 결핍에서 비롯된 건 아닐까요.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