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진 고문 속에도 의를 지킨 충신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책으로 만들어져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읽힌 인물이 있었다. 역사 이면에 묻혀 우리에게 낯선 이름이 되어버린 ‘박태보(朴泰輔)’라는 조선 숙종 대의 인물이다. <박태보전>(문학동네.2012)에 의하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숙종과 인현왕후 그리고 장희빈의 사건에 그가 있었다.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는 이렇다. 숙종은 장희빈에게 반해 인현왕후를 폐출하는 희극을 연출한다. 사건의 전모는 남인과 서인 간의 세력 다툼이 한창이던 때, 희빈 장씨(장희빈)와 인현왕후는 각각 양대 세력의 정점을 대표했다. 그들은 궁 안에서 힘겨루기를 했고 희빈 장씨가 낳은 아들(훗날 경종)에 대한 원자 책봉 문제를 놓고 두 세력이 전면전을 펼쳤다.

이때 숙종은 희빈 장씨의 편에서 원자 책봉 문제를 반대했던 서인 세력을 내쳤다. 게다가 투기를 이유로 인현왕후를 폐비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우리가 ‘기사환국(己巳換局)’이라고 알고 있는 인현왕후 폐출 당시 상황이다.

이런 전대미문한 사건을 두고 80명의 신하가 모였고 한 사람이 대표로 상소를 써 올렸다. 그가 바로 박태보였다. 책에 실린 그의 상소문은 왕을 질타하는 직설적인 말로 가득했다. 그의 생사여탈권을 쥔 왕에게 거침없는 직언(直言)을 한 것이다. 내용을 간략히 전하자면 다음과 같다.

“갑자기 어제 빈청에 내리신 비망기는 신하로서 차마 들을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어찌 성명의 세상에 은혜를 상하고 도리에 해로운 명령이 있을 줄 생각이나 하였겠습니까.(중략) 이 일이 있음으로부터 전하의 신하 대신재상과 삼사백관에 이르기까지 누구는 힘써 간하고 누구는 정청(庭請)하여 서로 다투어 간하였으나 죄를 주고 벌하심을 계속 이어 그치지 않으십니다.(중략) 사람의 마음이 있는 곳에서 하늘의 뜻을 알 수 있으니, 전하께서는 마음대로 행하시나 하늘의 뜻을 거스르지 못할 줄을 왜 생각하지 못하십니까.”-65쪽, 70쪽~71쪽

책에 따르면 박태보는 이 사건으로 숙종에게 직접 친국을 당했고 그가 당했던 모진 고문은 전례가 없었다. 그에게 가해진 고문은 형추(刑推)와 낙형(烙刑), 압슬(壓膝) 등으로 정강이를 매질하고 불에 달군 인두로 발바닥을 지지는 고문이다. 압슬은 사금파리 등을 깔아 놓은 곳 위에 무릎을 꿇게 하고 널판을 놓아 사람이 올라가 뛰거나 누르는 끔찍한 고문이다.

이런 고문을 받으면서도 박태보가 의연한 태도로 일관했다는 대목은 박태보의 의지와 절개가 얼마나 대단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책은 박태보의 상소 사건을 중심으로 그에게 가해진 고문 장면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었다. 특히 모진 고문 속에도 숙종의 분노어린 고문에도 의연하게 자신의 의(義)를 지키고 왕에게 옳은 말을 전하는 모습은 가슴이 찡할 정도다.

이처럼 책은 역사의 격량 중심에 섰던 한 인물을 집중 조명하며 당시 상황을 긴박감 있게 전달한다. 그동안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숨은 인물을 수면 위로 끌어 올려 독자들에게 소개한다는 의미 외에도 책에 그려진 박태보의 모습은 시대를 넘어선 감동 아이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데일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