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속 깊이 내재된 회한·상처 배우 배역·몰입 통해 자가치유 관객은 대리인 통해 상처 극복

5·18 희생자 담은 영화 ‘26년’ 죽음 다룬 칸 수상작 ‘아무르’ 끝이 곧 새로운 시작 일깨워

영화가 주는 축복 중 하나는 ‘힐링’이다. 영화를 보는 사람도, 영화를 찍는 사람도 일종의 ‘치유’를 경험한다. 배우들에게 “연기를 하면서 치유되는 느낌을 받느냐”고 물어보면 한결같이 “그렇다”고 한다. 영화 속 인물들은 대개가 씻을 수 없는 상처나 콤플렉스,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거나 시련과 고난을 겪으며 고통과 아픔을 통해 성장하기 때문이다. 배우들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인생 속으로 들어간다. 영화 속 인물들의 삶은 ‘가짜’이며 ‘상상된 것’에 불과하지만, 인생의 진실을 담고 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인물의 희로애락에 몰입하고, 그것을 표현하면서 배우들은 자신의 마음과 인생 속에 깊이 도사리고 있던 상처를 발견하기도 하고, 분노와 증오, 사랑의 감정을 꺼내기도 한다. 그것을 통해서 실제 현실에서는 풀어낼 수 없었던 회한과 상처를 드러낸다. 연극이나 역할놀이가 심리치료의 한 방법인 이유와 다르지 않다.

영화를 보는 관객 또한 마찬가지다. 배우가 ‘몰입’과 ‘이입’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한다면 관객은 ‘발견’과 ‘공감’을 통해 상처를 극복한다. 스크린에서 인물들이 갈등하고 충돌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보면서 자신에게 있었던 문제를 객관화하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단초를 얻는다. 극중 인물이 부딪친 시련과 고난을 함께 경험하고 공감하면서 자신도 몰랐던 가슴속 응어리를 풀어낸다. 내가 앓고 있는 마음의 병, 내가 겪고 있는 삶의 고난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치유의 시작이다.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거나 메가폰을 잡고 연출하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이때는 ‘고백’과 ‘표현’으로 스스로를 치유하는 경험을 얻게 된다. 영화를 이용한 심리치료에는 작품 관람과 토론뿐 아니라 카메라를 들고 직접 찍고 영화를 만드는 일까지 포함된다.

최근 흥행한 영화 ‘26년’은 5ㆍ18 희생자 유족을 주인공으로 했다. 그들이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을 폭력 진압한 책임자 처단에 나선다는 이야기다. 이 영화의 주연배우이자 ‘힐링캠프’의 출연자인 한혜진은 “우리 사회가 희생자들과 그들의 아픔을 기억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이 영화는 ‘힐링’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증오’와 ‘복수’ 그 자체가 아니라 ‘공감’과 ‘기억’이 이 영화의 주제일 것이다.

최근 개봉한 로맨스 영화 ‘반창꼬’는 소방관과 여의사 간의 알콩달콩 사랑 이야기이지만, 이 작품에서도 치유의 순간들을 만날 수 있다.

소방관(고수 분)은 아내를 잃은 아픔 때문에 쉽사리 새로운 사랑을 하지 못하는 남자다. 의사(한혜주 분)는 자신의 이기심 때문에 진정한 사랑을 모르는 여자다. 하지만 둘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직업을 가졌다. 두 사람의 관계가 발전하고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면서 그들은 각각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의미에 새로운 눈을 뜬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으로 19일 개봉한 영화 ‘아무르’(감독 미카엘 하네케)는 죽음과 절망에 대한 ‘치유’의 영화다. 평생을 서로에 대한 사랑과 존경, 신뢰로 살아온 80대 노부부. 갑자기 아내가 쓰러지고 서서히 몸이 마비된다. 죽음은 아내의 육신뿐 아니라 두 부부의 관계를 잠식해간다. 남편은 무너져가는 아내의 몸을 온전히 감당해가며 마지막까지 삶의 존엄을 지켜간다. 프랑스어로 ‘사랑’을 뜻하는 제목이지만, ‘삶’ 또는 ‘죽음’이라고 바꾸어도 아무 상관없는 작품이다. 그만큼 삶과 사랑, 죽음의 본질에 대한 통절한 성찰을 보여준다.

‘죽음’이라는 예정된 시간표를 받아든 노부부의 마지막 사랑을, 삶의 최후 순간들을 아름답고 비극적이며 통렬하게 그려내면서 인생과 존재의 본질에 접근해간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남긴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말,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로 꼽히는 정신의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전한 “죽음의 문턱에 선 사람들은 그 순간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진정한 삶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라는 잠언이 떠오르는 영화다. 죽음은 공포스러운 삶의 대단원이 아니라,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임을 이 영화를 보며 관객은 깨닫는다.

최근 대선이 끝났다. 우리 사회에 승자와 패자,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고 있다. 한 편의 환희 이면에는 깊게 드리워진 분열과 갈등의 상처 또한 크다. 역사에서 개인의 삶, 사랑, 죽음에 이르기까지 영화 속에서 만났던 ‘힐링’의 순간들을 우리 사회로 끌어올 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