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푸어’서 ‘메디푸어’ 까지 자고나면 新빈곤층 양산…직장인 10명 중 7명 “나도 푸어족”
영어로 ‘가난한’이라는 뜻의 형용사인 ‘poor’에 무리를 뜻하는 한자 ‘족(族)’을 붙인 합성어 ‘푸어족’. 자고 깨면 새로운 ‘푸어족(poor族)’이 등장하고 있다. ‘하우스푸어(house poor)’부터 ‘메디푸어(medi poor)’까지 어느새 대한민국이 푸어 공화국이 된 듯하다.
사실 각종 푸어족은 우리나라가 현재 처한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이들은 700만명 베이비붐(1955~1963년생) 세대의 은퇴와 이들 자녀의 취업ㆍ결혼, 30ㆍ40대의 자녀교육 문제 등 바로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푸어족의 전방위 확산=대표적인 푸어로 ‘하우스푸어’가 꼽힌다. 무리한 대출로 집을 마련했지만 원리금 상환으로 가처분소득이 줄어 빈곤하게 사는 가구를 뜻한다.
하우스푸어처럼 무리하게 투자를 했다가 가난해진 푸어족들이 많다. ‘스톡푸어(stock poor)’는 은행 대출을 받아 주식에 투자를 했다가 원금을 날리고 은행 대출이자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랜드푸어(land poor)’는 토지보상을 기대하고 무리하게 대출받아 땅을 샀다가 보상이 지연돼 원리금 상환 압박을 받는 가구다.
소득에 맞지 않는 소비로 푸어족이 되기도 한다. 열악한 주거지에 살면서도 소득에 비해 무리하게 고급차를 사는 ‘카푸어(car poor)’, 해외여행이나 쇼핑 등에 과도한 소비를 해 궁핍해진 ‘쇼핑푸어(shopping poor)’가 있다. 이들은 저축이나 결혼 등 알 수 없는 미래보다는 ‘현재를 즐기자’는 인식이 강하다.
일을 열심히 해도 푸어족인 경우도 있다. ‘워킹푸어(working poor)’는 직업은 있지만 비정규직이거나 임금이 낮아 장시간 아무리 일을 해도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다.
교육ㆍ결혼ㆍ출산 관련 푸어도 급증하고 있다. ‘에듀푸어(education poor)’는 교육비 지출이 높아 저축할 돈이 없고, ‘베이비푸어(baby poor)’는 자녀 출산과 분유값 등 비싼 양육비 때문에 빈곤하다. 신혼집 장만 등 비싼 결혼 비용 때문에 가난해진 신혼부부는 ‘웨딩푸어(wedding poor)’다.
이 밖에 노후 생활비가 넉넉하지 못한 ‘실버푸어(silver poor)’, 생계형 자영업에 내몰린 ‘소호푸어(soho poor)’, 경기 침체로 가계 의료비 부담이 증가하면서 의료비 지출을 감당하지 못하는 ‘메디푸어’도 있다.
▶푸어족 얼마나 되길래=직장인 10명 중 7명꼴로 스스로를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푸어족’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4월 직장인 496명을 대상으로 한 취업포털 잡코리아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8.1%가 자신을 푸어족이라고 봤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해 5월 발표한 하우스푸어의 구조적 특성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하우스푸어는 108만4000가구, 374만4000명으로 전체가구 수의 10.1%에 달한다.
연령대를 살펴보면 40대가 21.5%, 30대가 20.1%로 2005~2006년 수도권 집값 2차 폭등기에 대출을 안고 내 집 마련을 한 세대들이다. 하우스푸어 가구의 평균 총자산은 3억1105만원이다. 이 중 거주주택 가격은 2억2910만원으로 자산 중 주택 비중이 70%를 넘는다.
에듀푸어도 300만명이 넘는다. 현대경제연구원의 ‘국내가구 교육비 지출 구조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에듀푸어가 82만4000가구, 가구원으로 치면 305만명으로 추정된다. 자녀가 유치원 이상 재학 중인 가구 9곳 중 1곳꼴이다. 에듀푸어는 월평균 수입이 313만원으로 교육비에 86만8000원을 들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체소득의 28% 수준이다.
워킹푸어는 시간강사, 영화 스태프 등 주로 비정규직이 많다. 4년제 대학 시간강사 연봉은 2008년 평균 487만5000원으로 정규직 교수의 평균 연봉과 10~20배 정도 차이가 난다.
대학을 졸업한 워킹푸어 역시 매년 증가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대졸 워킹푸어’는 2000년 16만6000명에서 지난해 67만5000명으로 매년 10% 가량 증가하고 있다.
실버푸어도 심각하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지난해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 1인 가구의 빈곤율은 76.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치인 30.7%보다 훨씬 높다.
▶허황된 기대 심리가 푸어족을 만든다=새로운 푸어족들이 계속 생겨나는 것은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이 저하되는 것을 국민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투자ㆍ소비하기 때문이다.
박진 한국조세연구원 공공기관연구센터 소장은 “자신의 역량과 미래소득을 예측해서 합리적인 소비생활을 해야하는데, 그렇지 못해 푸어 시리즈가 양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2008년까지는 우리 사회가 경제성장률 6%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현재는 3.4% 정도로 하락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직도 6%의 성장을 할 것으로 생각해 투자하고 소비한다”면서 “또 사회가 점점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정부 역시 이에 대해 충분히 대비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푸어족들을 정말로 가난하다고 보기는 어려워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쉽지 않다. 대부분의 지원대책이 무주택자나 저소득층에 집중, 이들 푸어족의 경우 상대적 박탈감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조호정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소득은 높지만 사회구조적으로 지출이 과도하게 많은 사람들이 각종 푸어족”라면서 “이들은 항상 가계소득이 적자라서 실질적으로 빈곤감을 느끼고 있다”고 설명했다.
푸어족에서 벗어나려면 인식을 바꿔야 한다. 우리 사회가 저성장 시대에 돌입한 것을 인정하고 투자 및 의사결정을 해야한다는 것. 박 소장은 “경제가 지속적인 성장한다는 근거 없는 믿음을 버리고 저성장 시대에 맞는 투자ㆍ소비 행태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민상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