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인생과도 같아 갈래는 각각 다르고 풍경도 제각각이지만 그 걸음엔 눈물과 웃음이…

뜻밖의 여정서 얻은 가치 피터잭슨 ‘호빗’서 일깨워

“우리와 함께 길을 가지 않겠는가?”

‘반지의 제왕’ 3부작에 이은 피터 잭슨 감독의 새로운 판타지 영화 시리즈의 첫편 ‘호빗: 뜻밖의 여정’에서 회색 마법사 간달프는 주인공인 호빗족의 청년 빌보 배긴스에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 뜬금없는 제안을 한다. 난쟁이들의 잃어버린 왕국과 보물을 되찾는 원정대의 마지막 멤버가 돼 달라는 것이었다. 빌보 배긴스는 처음에는 납득하지 못하고, 두 번째는 고민에 빠지며, 세 번째는 거절한다.

영화 속에서 호빗은 평화롭고 안락한 삶을 즐기는 종족이다. 그중에서도 빌보는 더 유별나다. 문을 나서면 산과 들이 아름다운 마을이 있고, 따뜻하고 친절하며 유쾌한 이웃들이 있다. 맛있는 치즈와 와인이 잔뜩 저장돼 있고 편안히 누워 잠을 청할 수 있으며, 친구가 문득 찾아와도 반갑게 내줄 방과 음식이 있는 집이 있어 더 바랄 게 없는 행복한 생활. 자기 종족도 아닌 난쟁이들을 위한 여정에 나서 고생을 사서 할 이유가 없다.

무시무시한 용 스마우그에게 빼앗긴 영토를 되찾기 위해 모인 13명의 난쟁이들이 빌보의 집에서 한판 떠들썩한 출정전야 파티를 벌이고 떠난 고요한 아침, 밤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안도하던 빌보는 갑자기 짐을 챙겨 원정대를 따라나선다. 아마도 그의 마음속엔 간달프가 거듭 건넨 말 한마디가 맴돌고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내 장담하네. 길을 떠나 우리와 함께 모험을 겪고 돌아오면 예전의 자네가 아닐걸세.”

빌보는 난쟁이 원정대와 함께 목숨을 건 대장정을 떠난다. 그 길 앞에는 잔혹한 오크족과 끔찍한 괴물 고블린, 불을 내뿜는 무시무시한 용 스마우그가 깊이를 알 수 없는 암흑의 아가리를 벌리고 기다리는 험난한 여정이 있었다. 그리고 골룸과 절대반지, 중간계의 무서운 운명의 소용돌이도.

옥스퍼드대의 영문학자이자 판타지 작가인 J.R.R 톨킨이 ‘반지의 제왕’ 전에 창작한 원작소설 ‘호빗’은 다양하고 복잡한 인물관계와 고대 북유럽 신화에 바탕한 웅장한 서사를 가진 작품이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간단하다. 청년 빌보의 성장담을 담은 환상동화다. 전원에서의 풍족하고 안락한 일상에 묻혀 살던 빌보는 모험을 통해 사명, 영예, 우의, 충성, 헌신, 용기 같은 미덕들을 깨닫게 된다. 길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결코 볼 수 없고 얻을 수 없었던 가치들을 말이다. 부제가 ‘뜻밖의 여정’인 까닭이다.

이처럼 길은 인생이다. 누구나 그러하듯 영화 속에서도 사람들은 길을 떠나고 길에서 돌아온다. 사랑과 이별, 상처와 치유, 발견과 각성의 시간 모두 길 위에 있다. 길 위에서 청년은 예기치 못한 사람과 사랑, 운명을 통해 세상을 발견하고, 인생 황혼기의 사람들은 잃어버린 꿈과 잊혀버린 자아로 귀환한다.

혁명가 체 게바라가 아닌, 천식을 앓던 청년 의학도 에르네스토 게바라가 세상을 만나고 사람을 가슴에 품게 된 것도 길 위에서였다. 23살 체 게바라의 남미여행기를 담은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인생에서 청년기야말로 순수한 휴머니즘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시간이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영화였다.

‘버킷 리스트’에서 노년의 두 남자는 세상 마지막 여행에서야 잊고 살았던 자신의 소망을 마주한다. 늘 내 곁에 있지만 존재를 깨닫지 못한 공기 같은 사람들, 인생의 길벗으로서 가족과 형제, 자매, 친구의 소중함을 비로소 느끼게 되는 것도 삶의 여정에서다. 콩가루 가족의 좌충우돌 여행기 ‘리틀 미스 선샤인’은 가족이란 요구하고 강요하는 관계가 아니라 그저 지켜보면서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여성들이 남성 중심 사회의 편견과 억압을 벗어나 자아를 발견하고 욕망을 펼쳐내며 아름다운 연대를 꿈꾼 여정도 있었다.

‘델마와 루이스’ ‘바운드’ ‘밴디트’는 여성의 길을 다룬 작품이다. 그리고, 세상과 대결하는 청춘들이 막다른 길을 향해 마구 내달리는, 비극적이지만 매혹적인 길도 있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이지 라이더’가 그랬다. 길의 갈래는 다 다르고, 길의 풍경도 제각각이지만, 그 위를 지나는 누구의 걸음에도 눈물과 웃음이 묻어 있다는 사실만은 한가지다. 길 위에서야 소년은 어른이 되고, 길의 끝에서 또 다른 길이 시작된다는 진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