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배우 반전있다. 순수한 이미지 속 어딘가에 퇴폐미가 숨어 있을 것 같다. 악도, 선도 모두 어울린다. 얼마 전 종영한 KBS2 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이하 ‘착한남자’)에서 흑과 백의 상반된 역을 훌륭하게 소화해 낸 문채원(26)을 지난 3일 서울 논현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예쁜 용모 뒤에 남성적 취향, 털털한 성격, 깊은 연기관 등 의외의 면면이 엿보였다.
“스릴러나 범죄물 같은 ‘센 거’를 좋아해요. 이번에도 은기가 차를 막 운전한다든가,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데, 실제로도 운전을 험하게 하는 편이에요. 오토바이 타는 건 꿈만 꿔보던 건데, 이번 배역에 여러모로 끌렸죠.”
은기의 성격은 초반 차가움과 기억상실증이 걸린 뒤 후반 따뜻함으로 나뉜다. 초반 은기는 문채원이 데뷔 전부터 탐내던 캐릭터였다. “안하무인이고, 계산적이고, 욱하는 성격의 코드를 갖고 있는 인물이 하는 사랑을 공감하게끔 그리고 싶었던 거죠. 제일 해보고 싶었던 거는 ‘발리에서 생긴일’의 정재민(조인성)이었어요. 동적이고, 밝아도 고집이 세다던가.”
그래서 시놉시스를 보고 단박에 마음에 들었다. 전후반 연기를 180도 다르게 하기 위해 스타일리스트와 의상부터 점검했다. 초반 은기는 절대 치마를 입지 말것, 검정ㆍ회색ㆍ군청색으로 입을 것, 악세서리를 하지 말것, 심장수술을 했기 때문에 립스틱도 붉은 색이 아닌 보라색으로 칠할 것 등이다. 그런가하면 후반 은기는 무조건 파스텔색깔 옷, 긴 치마, 웨이브 머리 등으로 설정했다.
“아버지(김영철)와 얘기하는데,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든지, 군대식으로 ‘열중쉬엇’ 자세로 듣는다거나, 말로 상대를 공격할 때 외에는 시선을 딴데로 삐딱하게 돌리는 걸로 잡았어요. 반면 후반 은기는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서 얘기할 때 습관적으로 사람 눈을 쳐다보죠. 연습을 많이 했어요. 표정, 대사, 문어체 말투도 입에 붙이려고 많이 연습했고. 드라마 선택하고 시험대에 오른 기분이었는데, 분명 책임져야하는데, 연습하면, 반도 못보여드려요. 독기를 낼 수 밖에 없었어요.”
처음엔 차가운 성격 연기에 빠져있어 동료배우 송중기와 말트는 시간도 오래 걸렸다. “오랜만에 비슷한 나잇대와의 멜로였어요. 그런 나잇대와의 멜로는 근영씨(문채원은 ‘바람의 화원’에서 여장 남자 문근영을 짝사랑하는 역이었다) 밖에 없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송중기와) 어떤 작업이 될까 궁금했는데, 서로 상의를 많이 할 수 있었고 같이 만들어가는 즐거움이 있던 작업이었어요.”
이경희 작가 특유의 새드엔딩이 아닌, 7년 뒤 마루와 은기가 다시 사랑을 시작하는 해피엔딩에 대해서 흡족스러워했다. “개인적으로 해피엔드를 바랬어요. 드라마는 희망을 주는 게 목적이에요. 우리 드라마는 치정과 복수가 나오고 처절해서 뒤에는 희망적으로 가야한다고 봤어요. 은기가 29살에 나와서 1년뒤, 또 7년 뒤면 37살인데, 그때서야 사랑을 하겠다는데…. 저희 드라마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라는 걸 입증한 거에요. 그 남자는 늘 어떤 사람을 책임지면서 살았잖아요. 은기도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여자죠.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에게 늘 믿음을 주고, 그런 남녀가 사랑을 꿈꾸는 이야기였죠.”
지금 스크린에는 송중기, 박시후, 류승룡 등 문채원과 함께 작업했던 ‘문채원의 남자들’이 출연하는 영화가 모두 걸려있다. 그는 드라마가 끝난 직후 ‘늑대소년’, ‘내가살인범이다’ ‘광해’를 사흘 연속으로 차례로 관람했다. “송중기씨는 어떻게 그걸 선택했을까를 봤죠. 배우로서 도전이고 용기잖아요. 그 선택 자체가 놀랍고 높이 샀었어요.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니 선택한 이유가 곳곳에 보이더라구요. 동화같은 이야기가 좋고, 우리나라가 이런 장르를 다뤄본 게 없는 거 같은데, 예쁘고 감동깊은 장면이 기억에 남았어요. 류승룡씨와는 미용실에서 만나서 ‘저, 광해 봤어요’하니까 ‘야, 너 일찍 봤다’하셨어요. (한)효주는 ‘활’ 시사회때 와줬는데, 저는 ‘광해’ 때 못가서 이번 ‘반창꼬’ 시사회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가려고, 날짜를 빼놨어요.”
그는 지난해 ‘공주의 남자’로 KBS 연기대상 여자 최우수연기상을, 영화 ‘최종병기 활’로 청룡영화상 신인연우상을 받았다. 올해 2연패 기대감은 전혀 비치지 않을 만큼 데뷔 5년차 배우는 내적으로 성숙해 있었다. “상을 생각해본 적도, 탐낸 적도 없고, 욕심을 가져본 적도 없어요. 이번에도 그런 마음이고요. 상은 발전하고, 용기있게 계속하라는 의미에서 주시는 거더라구요. 또 받고 나서가 중요한 거 같아요. 보답하고 감사 드려야하는 거. 이번 작품도 그런 과정에서 모험이고 도전이지만 선택한 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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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해묵 기자/m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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