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4회> 붉은 태양을 따라서 (3)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혼이니 염원이니 하는 재벌2세의 말은 변명에 불과할 것이라고 여겨졌다. 그렇다면 재벌2세가 끝끝내 1974년 산 낡은 치타를 고집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일까? 유호성은 그 점이 더욱 궁금했다.

“그런 얼토당구장 같은 말씀을 곧이 들으라는 겁니까? 회장님! 저에게 치타를 기필코 태우고 싶으시다면 합당한 이유를 말씀해 주세요. 혹시 저에게 원한이라도 품고 계시는 건가요? 저를 불귀의 객으로 만들고 싶으십니까?”

재벌2세와 유호성의 실랑이를 듣고 있던 권도일은 이제야말로 자기가 나설 때라는 걸 직감했다. 모 아니면 도! 랠리고 뭐고 당장에 때려치울 것만 같은 유호성을 더 이상 수수방관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1974년 산 치타에는 유호성 선수 혼자 타는 게 아닙니다. 잘 아시잖습니까? 그 머신에는 저도 함께 탑니다. 무려 5,600킬로미터를 달리는 동안 당신과 내가 서로 교대해서 드라이버와 코-드라이버 역할을 맡게 될 겁니다.”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당신이 불귀의 객이 된다면… 저도 함께 불귀의 객이 되겠지요. 우리 회장님께서 저마저 죽일 이유가 있겠습니까?”

권도일이 정색을 하며 말하자 유호성은 그제야 조금 누그러진 듯한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그 말이 어째서 1974년 산 치타를 기필코 타야만 하는 지에 대한 합당한 변명은 되지 못했다. 그저 재벌2세가 자길 죽이려 들 까닭이 없다는 정도의 대답일 뿐.

이왕 뽑아 든 칼, 무라도 베어야 속이 시원하겠지. 권도일은 유호성의 두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물었다.

“오늘처럼 경사스러운 날에 어째서 원한을 품었냐는 둥, 죽이려 하냐는 둥… 그런 끔찍한 말씀을 꺼내셨습니까?”

“아! 그거요… 사실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가야만 할 것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이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원래 5개국 관통 랠리경기를 추진한 사람이 유민그룹의 회장님이란 사실을.”

“……”

“그런데… 도중에 거성그룹에서 가로챘잖습니까. 두 회사는 어쩌면 앙숙이 되어버렸을 수도 있지요. 생각해봅시다. 저는 유민그룹 회장님의 외아들입니다. 그런 저를 거성의 회장님께서는 망설임 없이 랠리 팀원으로 받아주셨습니다. 왜 그러셨지요?”

듣고 보니 일리 있는 말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멍청하다고 소문 난 유호성도 그리 어벙한 바보는 아닌 것 같았다.

“우린 유호성 선수의 뛰어난 드라이브 실력만 염두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진심이십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유호성 선수의 오해를 풀어드리겠습니다. 우리 거성그룹에서 유민그룹의 사업을 가로챈 것은 절대 아닙니다. 유민그룹은 지금 막대한 부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 5개국 관통 랠리경기마저 감당하다가는 부도에 몰릴 확률이 큽니다. 대책 없이 포기할 경우엔 정부에 엄청난 손해배상마저 해야 할 처지에… 우리 거성에서 백기사 역할을 자청한 것입니다.”

“우리 아버님이 막대한 빚에 시달린다고요? 사실입니까?”

“엄연한 사실입니다.”

잠시 유호성의 얼굴빛이 창백하게 굳어지더니 이내 결심한 듯 이렇게 제안했다.

“회장님과 권도일 선수의 말씀을 믿겠습니다. 술이나 한 잔 사주십시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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