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박수진 기자] 서울 용산구에 사는 주부 이모(36) 씨는 2주 전 딸(5)이 다니는 유치원에서 가정통신문을 받았다. 오는 31일 핼러윈(halloween) 행사가 있으니 “특별한 의상을 입혀 보내라”는 내용이었다.
이 씨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백설공주 드레스(5만원)와 마법사 망토(2만4000원), 그리고 공주 왕관(3만8000원) 등 11만원 상당의 핼러윈 용품을 구매했다. 지난 해 구입한 의상 세트가 남아있지만 “새 옷을 사달라”는 딸의 성화를 이기지 못했다. 그는 “솔직히 다른 나라의 문화 행사를 우리나라 유치원에서 이렇게까지 해야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고대 켈트인의 제사인 ‘삼하인(Samhain) 제’에서 시작돼 서양의 대표적인 문화 행사로 자리잡은 핼러윈을 하루 앞두고 국내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떠들썩하다. 핼러윈 주간을 정해 귀신, 호박 등으로 유치원 내부를 장식하고 파티 등 행사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엄마들의 부담은 커진다. 자녀의 핼러윈 행사 준비를 위해 적게는 2~3만원, 많게는 10만원 이상의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30일 롯데마트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아동용 핼러윈 관련 상품 매출은 매년 30% 이상 꾸준히 증가했다. 올 해 10월의 경우 지난 해 같은 기간 보다 매출이 48.3% 이상 증가했다. 인터넷 쇼핑몰도 마찬가지다. 인터넷 쇼핑사이트 11번가에 따르면 지난 17일부터 25일까지 9일 동안 아동용 할로윈 상품 매출은 지난 주(8~16일)에 비해 142% 넘게 증가했다. 수입 할로윈 용품을 판매하는 해외구매대행사이트의 경우 일부 인기 품목이 품절되는 상황까지 발생하고 있다.
과거에는 서울 강남 소재 일부 영어유치원 등을 중심으로 열리던 핼러윈 행사가 최근에는 일반 유치원 및 영유아를 대상으로하는 어린이집까지 확산되고 있다. 일부 유치원은 핼러윈의 기원을 설명하고 이와 유사한 우리나라 전통놀이를 찾아보는 교육을 진행하기도 하지만 대다수가 ‘초콜릿과 사탕을 주고 받는 파티’에 그치는 현실이다.
네살배기 아들을 영어유치원에 보내고 있는 주부 권모(31ㆍ서울 양천구) 씨는 “요즘 애들은 대보름이나 한식은 몰라도 핼러윈은 다 안다”며 “우리 애만 초라해보일까봐 이왕이면 예쁘고 좋은 옷을 골라 입혀 보내지만 탐탁치는 않다. 유치원이 엄마들의 이런 마음을 부추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A 사립유치원 원장은 “문화 체험의 일환으로 핼러윈 행사를 진행한다. 요즘에는 해외 체류 경험이 있는 아이들도 많아서 핼러윈이 더 이상 낯선 문화가 아니다”라며 “아이들이 좀 더 재미있게 참여하기 위해 부모님들께 준비를 권유하는 것일 뿐 의무사항은 아니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 유아교육담당 관계자는 “유치원이 연중 교육 계획에 따라 핼러윈 행사를 진행하는 것 자체는 아이들에게 큰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면 제재할 사항은 아니”라면서도 “일부 유치원이 학부모에게 의상 준비 등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