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인도의 새 희망 ‘케랄라’
구자라트~코치 36시간 기차여행 줄 서서 기다리는 오토릭샤 승차장 빼곡한 야자수·백워터 보트투어… 너무나 다른 모습에 신선한 충격
독립이후 60년 동안 공산당이 집권 대자본없이 주민 참여로 사회개발 가난하지만 ‘삶의 질’은 최고 ‘케랄라의 역설’ 자본주의 대안으로
[코치(인도)=이해준 기자] 세계여행에 나선 지 100일, 인도여행 한 달째를 맞으면서 다음 행선지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바라나시에서 콜카타ㆍ델리ㆍ아그라ㆍ조드푸르ㆍ자이푸르 등 인도의 주요 명소를 종횡무진 둘러보았고, 콜카타 등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인도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게 돼 여행의 신선함도 슬슬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만난 것이 축복과 같은 케랄라였다.
케랄라 주는 인도 최남단에 자리잡은 열대지역이다. 원시림과 바다ㆍ호수가 어우러진 자연에다 삶의 질이 인도에서 가장 높다는 점, 오랫동안 공산당이 집권해온 지역이라는 점이 뭔가 ‘다른 인도’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우리의 예상은 적중했다.
케랄라로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필자 일행은 간디의 첫 아슈람이 있는 구자라트의 아흐메다바드에서 케랄라의 중심도시인 코치까지 기차로 이동했다. 뭄바이ㆍ고아 등을 거쳐 장장 36시간이 걸렸다. 기차에서 다섯 끼를 먹으며, 시시각각 변하는 서부 해안의 아름다운 모습을 지겹도록 감상했다. 출발할 때는 겨울이었는데, 도착하니 야자수가 우거진 뜨거운 여름이었다.
케랄라의 신선한 충격은 도착할 때부터 시작됐다. 코치의 에르나쿨람역에 도착한 것은 저녁 10시30분으로, 우리는 1박2일에 걸친 기차여행에 모두 지쳐 있었다. 역에 내리자 한 오토릭샤 운전수가 다가왔다. 인도 어디서나 봐왔던 호객행위였으므로 우리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생각했다. 시간도 늦어 적당히 흥정을 마친 다음 릭샤를 타기 위해 배낭을 메고 운전수를 따라갔다.
그때였다. 저쪽에서 경찰이 다가오더니 그 운전수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 주변을 돌아보고는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승차장에 많은 사람이 줄을 서서 오토릭샤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고, 경찰은 그 질서를 깨뜨리는 사람을 단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도의 무질서에 혀를 내두르던 우리는, 스스로 질서를 깨려 했던 데 부끄러워하며 얼른 줄 끝으로 갔다.
인도에서 줄을 서다니…. 지금까지 한 달 동안 인도를 여행하면서 볼 수 없었던 놀라운 풍경이었다. 버스나 기차는 물론 각종 티켓 판매소에서도 새치기가 다반사였고, 소리를 지르고 몸을 밀치는 것도 예삿일이었다. 오토릭샤의 호객행위는 무질서의 극치로, 어디를 가나 운전수가 달려드는 바람에 편히 걷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코치는 그게 ‘아니었다’. 다른 인도였던 것이다.
코치에서 우리 부부는 11일, 아이들은 5일간 머물렀다. 인도를 45일 여행하면서 가장 오래 머문 곳이다. 유적지나 문화재가 많지 않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인도 서부의 아라비아해에서 해수욕을 즐기고, 원시의 야자수가 빼곡하게 들어찬 호수와 운하지역(백워터)을 배로 여행했다. 특히 백워터 보트투어는 환상적이었다. 코치의 상가와 골목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나는 재미도 쏠쏠했다.
케랄라는 거리 모습부터 달랐다. 인도의 다른 도시에서 수없이 본 걸인이나 방치된 ‘길거리의 아이들’은 찾을 수 없었다. 모든 아이들이 말끔한 교복을 입고 재잘거리며 학교로 갔다. 도로나 주택은 잘 정비돼 있었고, 페인트도 새로 칠해져 있었다. 사람들은 쓰레기를 길거리에 함부로 버리지 않았고, 도로를 어슬렁거리며 아무곳에나 똥을 싸는 ‘신성한 소’도 없었다.
그 ‘비결’이 궁금했다. 코치에 머물면서 하나하나 확인한 그 비결은 미스터리에 가까웠다. 케랄라는 인도의 다른 지역에 비해 경제가 특별히 더 성장한 지역이 아니었다. 오히려 1948년 인도의 독립 이후 성장률이 가장 낮은 지역이었다. 인도의 대기업이나 외국 다국적 기업의 대규모 투자가 거의 이뤄지지도 않았고, 전통적인 고무농장 외에 변변한 산업시설도 없다.
그런데도 삶의 질을 측정하는 지표는 인도에서 최고다. 문자해독률은 90%를 넘어 국제기준에 따른 문맹률이 사실상 제로(0)로 인도에서 가장 낮다. 모든 주민이 읽고 쓸 수 있으며, 교육의 혜택을 받고 있다는 얘기다. 기대수명은 인도 평균에 비해 10년 이상 길고, 유아 사망률은 최저다. 출산 시 전문의의 진료를 받거나 전문기관에서 아이를 낳는 비율은 2~3배나 높다.
코치에서 만난 주민은 전반적인 교육수준이 높고 문맹률이 낮다는 데 강한 자부심을 보였다. 특히 문맹률이 낮아지면서 여성의 교육과 출산ㆍ육아ㆍ피임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가정과 사회가 변화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여성의 자각에 힘입어 가족계획과 자녀교육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생기면서 이것이 빈곤의 사슬을 끊고 사회를 개발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했다.
외부의 지원이나 투자 없이 경제가 느리게 성장하는 가운데 이 모든 것을 성취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선 경제성장이 필수적이며, 성장을 위해선 투자확대와 자본유치, 경쟁촉진이 필요하다는 기존인식을 통렬하게 뒤집는 것이었다.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건강한 공동체의 유지와 민주주의의 힘이었다. 케랄라는 인도의 독립 이후 지금까지 60년간 공산당이 주로 집권해온 지역이었다. 공산당에 실망한 주민이 투표를 통해 정권을 바꾸기도 했지만, 최대 정치세력은 공산당이었다. 이 과정에서 공산당은 기초적인 토지개혁을 성공시키고 주민을 사회개발의 주체로 끌어들이며 새로운 ‘개발’의 모델을 만들었다.
케랄라 공산당은 혁명으로 정권을 장악했던 구소련이나 동구의 사회주의 세력과 달랐다. 속도는 느렸지만 주민과 소통하고, 카스트 제도를 비롯한 유무형의 굴레에 오랫동안 묶여 있었던 주민을 사회의 주체세력으로 ‘해방’시킴으로써 민주주의를 고양시켰고, 공동체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대자본에 의지하지 않고 주민 참여의 소규모 사회개발을 펼친 것이었다.
이러한 ‘제3의 길’을 채택한 결과 지금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부작용에서도 비켜나갈 수 있었다. 환경과 사회공동체의 파괴, 빈부격차의 확대 등 성장의 부작용을 거의 겪지 않으면서 삶의 질을 높여나가고 있는 것이다.
기존 학설과 정반대의 현상으로, 최근 학계에서는 이를 ‘케랄라의 역설(Paradox of Kerala)’이라며 관심을 집중하고 있었다.
여행지로서도 각광받기 시작해 코치엔 서양 여행자가 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고급 휴양 및 숙박시설도 들어서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덜 개발됐지만 백워터와 정글투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개발돼 있는데다 인도의 다른 지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전하고, 날씨는 항상 온화하고, 영어가 통하고, 주민은 친절하고, 물가도 저렴해 여행의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코치에 체류하는 동안 우리는 이런 환경을 마음껏 즐겼다. 특히 아이들은 깨끗한 바닷물에 뛰어들어 해수욕을 할 수 있다는 데 흥분해 바다에서 나올 줄을 몰랐다. 필자와 역사를 연구하는 아내는 새로운 발견에 대한 지적 흥분과 희열에 들떠 있었다.
물론 케랄라가 모든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또 케랄라 모델을 다른 나라, 특히 사회ㆍ경제적 여건이 다른 한국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케랄라 내부적으로도 문제를 안고 있다. 높은 교육수준에도 불구하고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유능한 인재가 외국이나 인도의 다른 대도시로 빠져나가면서 케랄라의 미래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그럼에도 ‘세계의 희망을 찾아보자’며 세계일주에 나선 우리에게 케랄라는 한 줄기 강한 햇살이었다. 그것은 인도의 새 희망이기도 했고, 약육강식의 무한경쟁을 요구하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공습에서 벗어날 새로운 길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다. 이곳에서의 행복한 시간을 뒤로하고 떠나는 우리에게, 케랄라는 대안에 대한 희망과 열정을 포기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 같았다.
선임기자/hjlee@herald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