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과속 스캔들’은 배우 박보영을 단숨에 스타의 자리에 올려놨다. 앳된 외모에 노래실력, 퉁명스럽지만 미워할 수 없는 말투. 스크린에 비춰지는 그의 모습이다.
그랬던 그가 4년의 공백을 깨고 다시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시간을 이겨내고 팬들 앞에 설 수 있었던 건 그가 다시 모습을 보이길 원했던 팬들과 시간의 탓이리라.
최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본지와의 만남을 가진 박보영의 모습은 앳되기만 한 예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예전에는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급급하고 치중했는데, 많은 일을 겪다 보니까 여유도 생기고 멀리 볼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 것 같아요.”
마냥 순진하고 어리게만 보이던 그가 이번엔 ‘보호받는’ 쪽이 아니라 ‘보호하는’ 쪽에 섰다.
# 언니로 보여야 할텐데.. 영화 ‘미확인 동영상:절대 클릭금지’(이하 미확인 동영상)은 최근 스마트 폰을 기반으로 한 SNS, 메신저 등을 통해 다양한 영상이 손쉽게 공개되고 있는 상황에, 동영상 괴담이라는 소재를 가져와 공포 스토리로 빚어낸 작품이다.
박보영은 죽음의 저주에 휩싸인 자매 중 언니 세희로 출연해, 학업도 포기한 채 가장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모습을 그렸다.
“처음에 ‘언니로 보여야 할텐데’라는 걱정을 많이 했어요. 실제로도 별이가 키도 크고 그래서 감독님께 많이 물어봤죠. 나이는 동갑인데 말이죠.”
극중 캐릭터를 완벽하게 표현하고 싶은 마음은 어떤 배우나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이에 연출을 맡은 김태경 감독은 “분위기로 느낄 수 있도록 행동하라”는 짧은 조언을 남겼다.
“감독님 말씀을 듣고 촬영하는 기간에는 별이와 진짜 언니 동생처럼 지내자고 했어요. 감독님께서 시키신 일이었는데 막상 밥 먹는 시간에도 별이가 ‘언니 언니’ 하면서 잘 따르길래 어느 순간 자연스러워 졌어요.”
나이에 비해 어려보이고 동안의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 말하는 나름의 고충이다. 그는 이번 영화에서 공포를 체험하는 동생을 받쳐주는 역할이었다. 그는 감정을 조절하는데 힘을 쏟았고 작품 후반부에서 억눌렀던 모든 감정들을 풀어냈다.
# 거울에 비친 얼굴..내 얼굴이 아니야 박보영이 이번 작품에서 직접 자신의 시선에서 폐가를 촬영했다. 그의 손에는 스마트폰 한 대가 들려 있었고 촬영장에는 혼자 들어가야만 했다.
“원래 무서움을 많이 타는데, 혼자 들어가서 촬영해야 하니까 더욱 무서웠어요. 더군다나 촬영할 때 무전기가 잘 안됐었어요. 스마트폰을 통해 영상 자체가 바로 나오기 때문에 그 공포감이 바로 느껴져요. 또 컷도 없이 쭈욱 가는 촬영이라서 더욱 긴장되기도 했어요.”
대낮에 들어가도 무서운 곳을 그것도 혼자서 스마트폰 하나만을 손에 쥐고 들어갔다. 이러한 고생들 덕분일까? 이번 작품에서 이러한 요소들이 더해져 관객들에게 공포와 긴장감을 고스란히 전할 수 있게 됐다.
공포 영화 촬영장에는 항상 ‘귀신을 봤다’는 괴담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박보영도 이러한 괴담을 겪은 사람들 중 하나다.
“촬영 중후반부에 세트장 숙소에서 샤워를 하고 있었는데, 수증기 때문에 뿌옇게 된 거울에 제 얼굴이 아닌 다른 사람의 얼굴이 있었어요. 분명히 얼굴 위치가 제 얼굴이 있어야 할 위치가 아니었어요. 얼굴은 자세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데 눈 있는 부분이 까맣게 된 그런 얼굴이었어요. 그 다음부터는 문을 열어놓고 샤워를 했어요. 제가 피곤해서 잘못 봤기를 바래야죠.”
유난히도 더운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기를 느낄 수 있는 이야기였다. 실제 그 일을 겪었던 당사자는 오죽했을까.
# 밑바닥이 보이니까 올라올 수 있더라.. 박보영은 한동안 이전 소속사와의 문제로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힘들었던 시간만큼 그에게 있어서는 배우로서, 한 사람으로서 성숙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처음에는 너무나 힘들어서 정말 다 놓고 싶었어요. 그만두고 싶고, 도망쳐 버리고 싶은 생각밖에 안들었어요. 그런데 팬들이 저희 집 주소를 어떻게 알았는지 편지로 응원해주셨어요. 주소를 모르시는 분들은 학교로 보내셨어요. 덕분에 힘을 얻어 딛고 일어날 수 있었어요. 절 기다려 주는 사람들이 있고, 그분들에게 보답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가면 딛고 일어날 수 있잖아요. ‘과속 스캔들’ 이후에 모든 상황이 잘 풀리기만 했던 저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고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 됐기도 했어요.”
예전의 모습과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는 분위기는 바로 이것이었으리라. 한층 더 성숙해진 그의 앞으로가 궁금해진다.
“이번에 언니 역을 해보면서 부모님의 도움 없이 근근이 일을 해 먹고 사는 사람들의 고충도 겪어봤잖아요. 영화를 찍으면서 ‘내가 배우가 안됐으면 뭐를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해봤어요. 진짜 극중의 세희처럼 그렇게 지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죠. 다들 어렸을 때 꿈이 많잖아요. 학생 때는 아르바이트도 많이 해보고 싶고요. 전 배우라는 직업을 통해서 다양한 일들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최고로 좋은 직업을 선택한 것 같아요. 제가 언제 아이큐 180을 가져보며, 모범생이 될 수 있겠어요.(웃음)”
“지금은 제 나이에 맞는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사실 지금 제 나이 때 맞는 시나리오들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대부분 학생 역할 아니면 20대 중후반 선배님들이 할 수 있는 역할들이거든요. 이번에는 밝은 캐릭터로 대학생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현재 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더 그런가봐요.”
박보영의 말에 “대학생이면 시트콤에 도전해 보는 것이 어떻냐”는 질문을 하자 이내 눈빛을 빛내며 의욕을 불태웠다.
“아직 시트콤 제의는 못 받아봤어요. 생각해보니 시트콤 연기도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요. 여러 장르를 통해 다양한 연기를 해보고 싶거든요.”
착하게만 보이던 그에게서 ‘욕심’이라는 두 글자가 보인다. 욕심쟁이 그는 ‘미확인 동영상’과 더불어 송중기와 ‘늑대소년’을 찍었다. ‘늑대소년’ 역시 밝은 캐릭터는 아니지만,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넌지시 일러준다.
“예전에는 다들 어리게만 보니까 빨리 성인이 돼서 성인 연기를 해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시간이 흐르니까 억지로 설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 같아요. 연기적인 부분이 갑자기 성숙할 수 없는 것처럼요. 지금은 제 나이에서 소화해낼 수 있는 모습들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아직도 매니저나 스태프 몰래 단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하는 여동생 같은 그가 쌓아나갈 필모그래피와 앞으로 선보이게 될 다양한 모습들에 기대를 가져본다.
조정원 이슈팀기자 chojw00@ 사진 송재원 기자 sunn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