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권도경 기자]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붕괴론이 파다한 가운데, 유럽의 ‘돈줄’ 독일이 유로존 위기에 대한 ‘응급조치’를 여전히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이 유로존 사태의 심각성 때문에 ‘은행동맹’ 등에 대한 반대를 누그러뜨렸다는 관측이 일각에서 나왔지만, 베를린의 기본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유럽 내 정치력 부재로 컨센서스가 무너지고, 각국 정부가 빚더미에 올라 쓸 수 있는 카드가 거의 없는 와중에 유로존은 시계제로다.

▶獨 ‘은행동맹’ 각국 재정주권 양도 전제=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4일(이하 현지시간) 조제 마누엘 바호주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의 회동에 앞서 기자들을 만나 “은행동맹은 중기적 목표일 뿐”이라면서 “재정위기는 시급히 봉합될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은행동맹’은 은행 예금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도록 유럽 각국이 참여하는 연합체로 스페인이 제안했다. 이는 재정위기국을 지원하는 유로본드(유로존 공동채권)와 더불어 유로존 위기 해결방안으로 논의되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이날 ’은행동맹’에 대한 검토 가능성을 언급해 한발 물러선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이같은 입장은 유럽 각국이 재정주권의 일부분을 EU 등에 양도한다는 전제 하에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독일 정부관계자는 “회원국들이 해당국의 권한을 유럽 공동체 등에 양보한다면 독일도 은행동맹을 만드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로본드에 대해서도 독일 측은 유럽 통합 절차가 완료된 후 고려할 수 있다는 기존 입장을 견지했다. 독일이 주장하는 방안들이 수용된다면 유로존은 정치적, 재정적으로 더욱 긴밀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메르켈 총리는 이날 “유로존 17개국이 ‘덜(less)이 아닌 더 많은(more) 유럽’을 원한다”면서 유럽통합을 강조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재정동맹’ 내년초 결정= 로이터통신은 4일 독일 정부 보고서를 인용해 EU를 기존 경제동맹에서 ‘재정 동맹’으로 격상시키는 결정이 내년봄에나 이뤄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보고서는 “EU 집행위와 헤르만 반 롬푀이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12월의 EU 정상회담 때나 재정 동맹에 관한 확정된 방안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를 고려하면 2013년 봄 EU정상회담 때 서명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메르켈 총리는 유로존 위기를 잠재울 수 있는 최상책으로 EU를 재정과 정치동맹으로 격상시키는 로드맵을 만드는 것뿐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는 이를 위해 각 회원국이 EU와 유럽의회에 재정 관련 주권을 일부 넘기고 회원국 재정에 대한 중앙 통제권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유로존 위기가 돌이키기 힘들 정도로 악화된 와중에 해결의 열쇠를 거머쥔 독일이 원칙적인 입장을 고수하자, 로이터통신은 이같은 태도가 시장을 실망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도경 기자/kong@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