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5>붉은 길, 푸르른 마음 (13)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유민 회장은 일순 벼락을 맞은 상황이었다. 벼락도 대충 맞거나 빗맞은 것이 아니라 정수리 위에 정통으로 맞았다고나 할까?
“그럼 베트남 내해에서 벌어졌던 사건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다시 세상에 거론되고 시끄러워 지는 겁니까?”
가장 먼저 떠오르던 걱정은 역시 베트남 사건이었다. 살인미수로 기소될 수 있다는 강박관념은 눈앞이 아찔해지는 죽음의 계곡과도 같이 늘 입을 벌리고 상존 해 있었다.
“유 회장도 그동안 나름대로 수고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에 대한 보답은 받으셔야지요. 앞으로 베트남 내해에서 벌어진 사건은 없었던 일로 여기면 될 것입니다.”
“그건 고맙습니다. 하지만 여태까지 해 온 노력을 봐서라도 랠리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면 안 될까요?”
“저는 의논하는 것이 아니라 통고하는 겁니다.”
“안 된다는 말씀이군요?”
“전화 끊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귀국하셔서 5개국 관통 랠리사업차 벌렸던 일들을 정리하시기 바랍니다. 다음 달 초부터는 공식적으로 거성 자동차그룹이 그 일을 이어받게 될 것입니다.”
“네? 거성이라고요? 하필이면… 거성?”
일방적으로 걸려온 전화는 그 말을 끝으로 역시 일방적으로 끊어졌다. 돌이켜보면… 찰나의 순간이었다. 티파니의 보석을 구경하던 중에 느닷없이 걸려온 전화에서는 단조로운 목소리 몇 마디가 흘러나왔을 뿐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거성이 뭐냔 말이다. 모르긴 해도 자기가 추진하던 랠리사업을 거성이 이어받았다는 것은 모종의 암투가 시작되었음이 분명했다. 아니, 거성그룹에서는 애초부터 랠리사업을 노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날 가지고 논단 말이야?”
양은혜와 젊고 어여쁜 여점원 앞에서… 유민 회장은 급기야 이렇게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화난 곰이 따로 있을까? 창백했던 얼굴은 어느새 붉으락푸르락 해지기 시작했고,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뱃구레가 들먹여지기도 했다.
사업 초기 거성 측에 제안한 협찬 의뢰를 당차게 거절당했을 때에 이미 알아차렸어야 했다. 최소한 몬테카를로 랠리에 거성 자체 팀을 내보냈을 때에라도 거성이 랠리사업을 꿰어 차려는 꿍꿍이가 있었다는 걸 눈치 채야 했다. 유민 회장은 그 점을 미리 알아내지 못한 것에 분통을 터뜨리는 중이었다.
“뭐라고요? 내가 언제 회장님을 가지고 놀았어요? 회장님이 먼저 보석을 사주겠다고 했지 내가 먼저 사달라고 했어요? 그리고… 마음이 변해서 사주기 싫어졌으면 그만이지, 왜 나에게 짜증을 내고 그러세요?”
양은혜는 울컥 눈물을 쏟으며 이렇게 항변했다. 하지만 5개국 랠리 사업을 졸지에 박탈당한 충격이 어찌나 컸던지 유민 회장의 귀에 그녀의 항변이 제대로 들리 리 만무했다.
“내 돈… 여태껏 날린 내 돈이 얼마인 줄 알기나 하고 그따위 짓을 해?”
유민 회장은 주먹을 부르쥐며 보석상을 뛰쳐나갔다. 다이아 반지고 나발이고… 당장 비행기 타고 귀국해서 5개국 관통 랠리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쏟아 부은 거금을 환원시키고 보상받는 일이 급선무였다.
“어머나 세상에… 겨우 술 몇 번 사주고, 호텔 비 낸 것을 그토록 아까와 하는 사람이었군요. 그런 인간인 줄도 모르고 다이아 반지, 목걸이를 사달라고 했으니… 내가 얼빠진 년이지. 내가 얼빠진 년이야.”
양은혜는 물론, 미모의 젊은 여점원마저도 황당함에 입을 딱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