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7회> 붉은 길, 푸르른 마음 15
신희영은 진검을 강유리의 코끝에 들이 민 셈이었다. 나무를 깎아 만든 목검이나 대나무를 겹쳐 만든 죽도가 아니라 날이 시퍼렇게 선 진짜 칼로 승부를 벌이자고 대들었으니 강유리도 진검으로 대응할 수밖에.
“아드님을 생각하셔야지요, 회장님.”
그녀의 말에 신희영은 찔끔했다. 여자란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자식이라면 껌뻑 죽게 마련이다. 물론 신희영도 마찬가지였다. 신희영에게 아들 유호성을 언급한 것이야말로 먼저 일격을 가한 셈이나 다름없었다.
“우리 호성이가 뭘 어쨌기에?”
“아드님도 유명한 골프선수로 만들어야 할 거 아니냐고요.”
신희영은 강유리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얘가 무슨 대책을 지니고 있구나 하는 본능적인 직감 때문이었다. 강유리는 신희영에게 한 발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어깨를 조용히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스킨십으로 다가서기….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자 신희영의 약점을 미리 알고 찌르는 진검의 날은 예리했다.
“물론 우리 호성이도 골프선수로 성공해야지. 어떻게 해야 성공할지 아직은 막연한 상태지만 말이야.”
“아드님을 성공시키려면 우선 저부터 팍팍 밀어주세요. 이왕 제가 싱글메이드로 가게 된 이상 저는 곧 세계적인 무대로 나서게 될 거예요. 일단 제가 먼저 뜨고, 그 이후에 똑같은 방식으로 아드님을 띄우세요.”
“똑같은 방식?”
“타이거 우즈가 제게 시도한 방식 그대로!”
“타이거 우즈가 유리 양을 후계자로 삼았듯이, 유리 양이 내 아들 호성이를 직속 후계자로 삼겠다고?”
“그래요. 1년 안에 그 꿈이 이루어질 거예요.”
신희영은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에 빠져들었다. 무조건 뜬금없는 소리라고 몰아붙일 수만은 없었다. 아니, 어쩌면 가장 합리적이고 타당성 있는 방법인지도 몰랐다. 어차피 강유리는 세계적 스타로 뜨게 될 것이고, 텔레비전 카메라가 늘 그녀의 뒤를 쫓아다니게 될 터인데, 그녀의 직속 후계자가 되어 언론플레이를 벌인다면 아들 유호성의 앞날에도 서광이 비치게 될 수 있을 터였다.
“그렇게 될 수 있을까?”
“그럼요. 가능해요. 그러니까 회장님께서는 저를 싱글메이드 사로 순순히 보내주셔야만 해요.”
이미 진검승부에서 결판이 났으니 몽니부리지 말고 싱글메이드 사로 순순히 보내달라는 명령이나 다름없었다.
“그럼 유리 양이 세계적인 스타가 된 후에 곧바로 우리 호성이를 후계자로 받아들인다는 계약서라도 쓸까?”
“계약서는 써서 뭐하게요? 믿음과 관행이란 게 있잖아요? 계약서보다도 훨씬 더 무서운 족쇄라면서요?”
신희영은 연거푸 두 번째 진검의 칼날을 맞은 셈이었다. 그녀는 코밑에 얼굴을 들이대고 속삭이는 강유리를 힘껏 끌어안았다. 그래, 정이란 게 이런 것이지. 애초에는 갑과 을의 신분으로 시작된 대화가 끝날 무렵, 신희영은 강유리의 표정 하나에도 일희일비하는 심적인 노예로 전락해 있었다.
하지만 그와는 대조적으로 유호성은 불현듯 어머니 신희영의 ‘눈물쇼’에 속아 넘어가서 랠리를 포기한 것이나 아닐까 하는 원초적 의문에 사로잡히던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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