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한 네덜란드 청년이 거리를 걷고 있다. 한 손에 우산을 든 그가 몸에 걸친 것은 양말과 신발 그리고 모자뿐, 그는 과연 노출증 환자였을까.

영국의 심리학자 필립 카곰의 ‘나체의 역사’(학고재)는 나체에 대한 편견의 역사를 조명한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나체에 대한 양면적 태도는 “몸이 신전도 되고 감옥도 될 수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나체는 수치와 욕망 혹은 순수와 결백의 의미를 모두 품고 있다.

이 같은 양가성은 정치 영역에서 두드러진다. 가진 자는 무엇인가를 입음으로써 위세를 떨치지만 없는 자는 벗음으로써 시위한다. 앞서 언급한 네덜란드 청년의 나체는 독일군의 의복 배급에 대한 항의의 표시였다. 2005년 미국의 ‘유방은 폭탄이 아니다(Breasts not bomb)’ 운동에서 시위대가 드러낸 가슴은 이라크전쟁 등에 대한 반대의 메시지였다. 진정으로 저속한 것은 인간의 나체가 아니라 비인도적 행위란 것이다. 이처럼 나체는 보호받을 길 없는 이들의 ‘유일한 무기’이자 ‘최후의 수단’이 되곤 했다.

한편 나체 자체가 수단이자 목표인 경우도 있다. 나체는 단순한 살덩어리가 아니라 인간 본성을 이해하는 핵심 요소이며 벌거벗을 자유 역시 인간의 소중한 권리란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모든 인권운동 중에서 대중 앞에서 옷 벗을 자유를 위한 운동이 가장 실패할 확률이 높다.” 그리고 금기 탓에 역설이 탄생한다. “나체는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강렬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노출이 허용되지 않고 충격적인 것으로 남아있는 한 정치적 무기로서 계속 힘을 지닐 것이다.”

비키니 시위와 어느 방송통신심위위원의 성기 사진 블로그 게재 등으로 떠들썩한 한국의 현실에도 단순한 흥미와 눈요깃거리 이상의 진지한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김기훈 기자/kihun@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