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6회> 바람 부는 길 4
요르단과 이스라엘을 가로막은 휴전선에서 거성그룹의 누군가가 죽거나 다치고, 행방불명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심각하게 여겨질 따름이었다. 큰 이익에 얽힌 의도적 사고였을까? 혹은 예사롭지 않은 사고?
“물론이지요. 이익도 크지만 국익과도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재벌 2세는 피우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더니 벽면에 붙어 있는 유화액자를 천천히 옆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액자로 가려져 있던 벽면에 아담한 금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눈에 보아도 도난방지는 물론 방수기능, 화재발생 시 자동 냉각기능까지 갖추고 있는 첨단 금고임을 알 수 있었다. 재벌 2세가 그 금고 속에서 꺼낸 것은 대학노트만이나 한 아이패드와 손가락만 한 다섯 개의 USB였다.
“이걸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동차회사 ‘어번’의 요청에 의해서 우리 거성그룹이 개발하던 컨셉트 카 ‘에어 뮬’입니다.”
재벌 2세가 띄운 아이패드의 화면에는 날렵하게 생긴 새로운 형태의 자동차 Air Mule의 사진이 담겨 있었다. 동체 옆구리에 장착된 리프트로더가 방향을 위 아래로 바꾸면서 간이비행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된 신개념 오프-오프로드 카였다.
“에어 뮬? 오프-오프로드 카라고 하셨나요? 길이어도 가고 길이 아니어도 갈 수 있는… 간이비행이 가능한 자동차란 말씀이시지요?”
“그렇지요. 레저는 물론 군사 목적, 의료 목적으로 추진하던 의욕적인 프로젝트였습니다. 우리와 이스라엘의 어번 사는 이 프로젝트를 철저히 비밀에 부쳤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추진하기 위해서 세계 언론의 관심을 몬테카를로 랠리로 몰아갔던 것이지요. 그런데 예정보다 비밀 프로젝트가 늦어졌어요.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억지춘향으로 다른 이벤트를 벌일 수밖에요.”
“아, 그래서 랠리 카로 스키장을 활강하는 이벤트를 선포하신 것이로군요.”
“그래요. 거기까진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날벼락인지… 비밀리에 에이발 산 계곡에서 성능 테스트를 하던 에어 뮬이 사고를 당했지 뭡니까. 계곡에 처박히고 말았는데… 우리 회사 최고의 전략형 공기역학기술 보유자인 공평호 박사가 그만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랬군요. 이스라엘 신문의 이 기사는 결국 의도적인 거짓 기사였던 셈이군요.”
“마침 그 지역 사마리아에서 가자지구를 종단하는 동계 랠리경기가 벌어지고 있었으니 그런 식으로 얼버무린 것입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도 비밀리에 추진했던 프로젝트였으니까요. 굳이 세상에 까발릴 필요가 없었던 것이지요.”
재벌 2세는 아이패드에 담긴 컨셉트 카 에어 뮬의 사진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뿐만 아니라 저탄소 녹색기술을 통칭하는 블루드라이브 기술 수석연구원 제임스 리 박사가 실종되었단 말이지요. 그는 에어 뮬 개발과정이 담긴 USB 10개 중에서 무려 다섯 개를 소지한 채로 실종되었습니다.”
“그럼 부상한 사람은 누군가요? 그 사람은 많이 다쳤습니까? 혹시 사고 당시를 확실히 기억하고 있던가요?”
“부상자는 후밍 박사입니다. 이스라엘 국적의 드라이버지요. 그런데 후밍 박사는… 그 사고가 분명히 누군가의 테러에 의해서 벌어졌다고 주장하는 중입니다. 물론 이스라엘 당국에서 비밀리에 조사 중입니다만.”
“아! 제가 몬테카를로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군요.”
“그래서 드리는 부탁입니다만, 권도일 전무께서 새로이 에어 뮬의 드라이버가 되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당장 이스라엘로 떠나주세요. 이건 국가를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재벌 2세의 명령에 권도일은 정신이 아득해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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