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좋아하고 사랑과 우정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왔다.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도 결코 집착하지않는,그래서 주위에 늘 사람들이 끊이지않는 묘한 매력의 사나이.

공직을 천직으로 알았고,한국 경제사의 한 시대를 풍미한 최고위 관료.

이젠 관복을 훌훌 벗고 자연인으로 돌아온 인간 윤증현.

그를 다시 탐구하기에 세시간은 무척 짧았다.

기획재정부에서 장관 대 기자로서 꼬박 2년을 같이했지만 1년뒤 다시 만난 그에게서 또다른 내음이 느껴진다.

“김 부장,오랜 만이오!”(기자 시절 사석에선 ‘김 형’ 이라고 불렀다)

두손으로 덥석 잡고는 허리를 약간 뒤로 젖히면서 특유의 호방한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는 쓱 내미는 명함의 문패가 ‘尹경제연구소’다.

여의도 칼바람이 불던 지난달 30일 생각보다 큰 사무실에서 마주앉았다.

하지만 보이는게 다가 아니었다. 이야기를 풀어가다보니 휑한듯한 공간 곳곳에 지인들과 브레인들의 어렴풋한 흔적이 느껴진다.

‘1인 연구소’가 아닌 ‘모인 연구소’인 셈이다.

▶한번 따거는 영원한 따거 현재 공식적으로 혼자 활동하는 것은 ‘후배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다. 물론 도와주겠다는 객원연구원이 끊이지않으니 실제론 국내 최대 브레인이 모인 연구소인 셈이다. ‘윤따거(大兄)’다운 행보다.

큰 형님이라는 뜻의 중국어 ‘따거’는 금감위원장 시절 직원들이 붙인 별명이다. 공직생활 40여년 간 그는 경제 관료들의 능력과 자질을 믿고 이끌었다. 관료로서의 자부심으로 공식석상에서도 기 죽지 않았다. 취임 때 국회 인사 청문회에서부터 “우리 공직사회가 산업화에 기여했고 국제사회에서도 우수성을 인정받으며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우수한 관료들이다. 최소한의 자존심과 인격을 건드리면 참기 힘들다”면서 경제 관료들의 기를 한껏 살려주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그의 연설문을 모아둔 블로그(http://blog.naver.com/yjhio1)는 물론, 尹경제연구소 명함까지 후배들이 만들어줬다. 새 명함에 박힌 캐리커처를 묻자 역시 “나는 잘 몰라. 후배가 만들어준 건데,언제 넣었지?”란 대답이 돌아왔다.

요즘은 전세계에 몰아닥친 자본주의 위기에 대해 많은 생각과 연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윤증현, 전 정무직공무원/ 쿨함과 따뜻함 사이…‘자연인’ 윤증현..한 시대 풍미한 경제관료,그의 매력은
윤증현, 전 정무직공무원/ 쿨함과 따뜻함 사이…‘자연인’ 윤증현..한 시대 풍미한 경제관료,그의 매력은

▶공직생활 자랑스럽지만, 사위로는 별로 1971년 시작한 공직생활을 천직으로 알아왔다. 좌우명은 ‘선공후사(先公後私ㆍ공적인 일을 먼저 하고 사사로운 일은 뒤로 미룸)’라고 했다.

“경제발전 역사에서 관료들은 분명 나름의 역할을 했죠. 그런데 간혹 ‘관치’ 또는 ‘영혼’,이런 말이 나오면 상당한 거부감이 듭니다.”

공무원은 특정 정권이 아닌 나라의 공무원이며 따라서 정치적 중립과 신분이 보장돼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정권이 바뀌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곧은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요지다.

공직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두가지를 꼽았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따른 글로벌 금융위기를 훌륭히 극복한 것과,행운이라 여길만큼 ‘역사적 사건’ 이었던 주요20개국(G20) 서울 정상회담의 성공적인 개최다. 한국의 위기극복에 대해 당시 외신들은 ‘textbook recovery(교과서적 회복)’라고 호평했다.

금감위원장 시절 온갖 오해와 압박에도 생명보험사의 18년 숙원사업이던 상장 문제를 해결한 것도 그가 공직생활 중 손꼽는 성과다.

그럼에도 하나뿐인 딸(윤선주ㆍ39)의 사위로 공무원은 별로라며 웃는다. 선주 씨는 한때 SBS 예능PD를 거쳐 하버드대 로스쿨과 케네디대 스쿨을 졸업한 후 현재 홍콩에서 영국계 로펌 변호사로 활동중이다.

“공무원은 일정부분 사생활을 포기해야하는데…,아무래도 사위가 그렇다면 좀 생각이 달라져요.”(웃음)

내친김에 좀체 하지 않는 부인 얘기를 해달라고 청했다.

“양평 용문산쪽에 마련해둔 텃밭에서 (부인이) 지난 겨울 경작한 배추로 김치를 담궜어요. 고추 오이 가지 상추도 심고 블루베리로 잘 자라요. 벌써 3년 됐습니다. 올해는 집을 지을 겁니다. 나중에 1주일의 반은 그곳에서 지내며 후배들과 친구들을 초청할까 합니다.”

부인 이정혜(63)씨가 영어에 능통해 외국 대사 부부 모임 등에서 여자쪽은 모두 부인이 챙겼다고 귀뜸했다.

윤 전 장관은 이수성 전 국무총리의 매제다. 딸이 부인을 많이 닮았다고 했다.

▶각국 장관들이 프렌드..그의 매력에 빠지다

36만 7398㎞. 2년 4개월 동안 지구 아홉바퀴를 돌았다. 스무번이 넘었던 해외 출장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중재하는 역할을 많이 했다.

물론 G20 정상회의가 큰 매개체였다. 외국 경제 수장과의 소통이 어느 장관보다 많았다.

의전에 구애없이 소탈한 접근방식은 국제사회에서도 통했다. 회의 시작전에 꼭 미리 가서 아는 장관들과 환담을 나누고 눈을 맞췄다. 영어는 그리 중요치 않았다.

경주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회의 당시 주요 아젠다 중 하나는 위안화 절상을 둘러싼 환율문제와 각국의 국제통화기금(IMF) 지분 다툼이었다.

G2(미국ㆍ중국)의 환율 줄다리기에서 중국의 양보가 나오지 않자 “너죽고,나죽고,다 죽는다(you die,me die,all die)”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며 심각한 분위기를 일순간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휘어잡은 일화는 유명하다.

또 고집이 셌던 중국에 대해 “G20 깰까? 그럼 넌 어디 들어갈래? G7? 세계 2위국가인데 국제사회에서 걸맞는 책무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며 어르고달래서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당시 외신들은 한국에서 아주 ‘impressive(인상 깊은)’한 결과가 나왔다고 했고,각국 재무장관들은 “Mr.윤이 아니면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프랑스 르몽드 기자가 인터뷰 도중 G20 정상회담에서 위안화 문제를 논의 할 것이냐고 묻길래 단호히 말했어요. ‘정상회담에서 특정 국가의 환율을 놓고 토론하면 정상회담이 되겠는가?’ 라고 말이죠. 그 말이 끝나기무섭게 외신을 타고 한국 재무장관이 저렇게 말했다고 보도되면서 미국 의회가 난리가 났죠. 저 놈 혼내라고(웃음). 난 당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과 이미 통하는 게 있었어요.”

그 난리를 치고 미국에 가니 가이트너 재무장관이 복도까지 마중을 나왔다. 흔치 않은 광경이다.

“‘니 내 무슨 말인지 알지?’ 라고 했더니 가이트너가 ‘안다’고 했죠.”

IMF 지분 재배정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지분이 특별 배정된 사우디아라비아와 창립 멤버로 우선권을 가진 유럽이 문제였다. ‘브릭스(BRICs)’ 등 신흥국의 불만은 대단했다.

이번에는 당시 프랑스 재무장관이던 크리스틴 라가르드(현 IMF 총재)에게 도움을 청했다.

“와! 라가르드 대단히 통이 큰 사람입니다. 라가르드가 IMF 지분에서 유럽의 양보가 이뤄지면 그 영광을 우리 둘이 누리고, 만약 실패하면 모두 내 책임이라는 각오로 일하겠다고 했어요. 진짜 열심히 해서 독일을 설득해 합의를 이끌어냈고 사우디아라비아는 내가 맡았죠.”

라가르드와의 협업 덕에 당시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IMF 총재는 합의와 함께 흥분해 책상을 치면서 “Today is IMF’s day and Korea’s day”(오늘은 IMF의 날이자, 한국의 날이다)라고 외쳤다.

윤증현, 전 정무직공무원/ 쿨함과 따뜻함 사이…‘자연인’ 윤증현..한 시대 풍미한 경제관료,그의 매력은
윤증현, 전 정무직공무원/ 쿨함과 따뜻함 사이…‘자연인’ 윤증현..한 시대 풍미한 경제관료,그의 매력은

▶아픈 청춘 해소 위해선, 강력한 리더십 필요

관료로서 후회는 없지만 아쉬움은 있다고 했다. 실업문제와 미흡한 물가관리,제대로 해보지도 못한 서비스산업 선진화를 장관 시절의 아쉬움으로 들었다.

서비스선진화는 경제의 균형발전과 일자리창출을 위해 시급하다고 금감위원장때부터 목소리를 높였던 분야다. 하지만 국회에서 갈등만 하다 최근 일부 상비약의 약국외 판매가 그나마 진척된 정도다.

청년 실업문제에 이르자 목소리가 높아졌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를 연발했다. 아무도 핵심을 얘기하지 않으니 복통이 터진다고도 했다.

“대학진학률이 85%에 이르고,한해 고졸자가 15만명인데 반해 대졸자가 50만명이 넘는 이런 구조가 대체 지구상에 어디있습니까? 또 중소기업은 극심한 고용난에 허덕이는데 대졸자는 취업난을 겪고 있죠. 그런데 이들이 점점 세력화되고 있어요.”

“지금은 반값 등록금 얘기보다는 과감한 대학 구조조정이 절실하며 고등학교만 나와도 대우받을 수 있도록 사회전체적으로 구조조정돼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과감한 장벽허물기라고 했다. 또 지금의 유럽 위기는 바로 정치적 리더십의 부재가 큰 원인이므로 정부와 정치권이 단호한 리더십을 보여할 때라고 지적했다.

▶걷기 전도사로 변신한 지하철 맨

장관 재임 시절 살인적인 국내외 일정을 소화했던 그다. 요즘 매일은 아니지만 가끔씩 하루에 몰아서 다섯시간씩 운동을 하기도 한다.

상당히 건강하게 보이는 그는 어느새 걷기와 지하철 타기 전도사가 돼 있었다. 자택의 매봉역에서부터 여의도까지 지하철로 출퇴근한다.

그리고는 시간만 나면 걷는다. 걸을때 누가 아는 척을 하면 “그렇지 않아도 닮았다는 얘기 많이 듣습니다”며 능청을 떨기도 한다.

일본 도쿄대 교수가 일본 사람이 한국인보다 10년 정도 더 살고 일하는 연령도 10년 정도 더 많다고 하길래 “소식(小食) 때문이냐”고 했더니 “그것도 물론이지만 70%는 걷는 것에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속으로 좋아했다는 후문이다.

그는 먹고싶은 것은 별로 참지 않는 대식가다. 키 176㎝에 몸무게 85㎏에 육박,예순 일곱의 나이에 비하면 거구다.

잠시 골프얘기가 나오자 “내 돈 못 따면 바보야. 이상하게 (체구에 비해 드라이브) 거리가 안 나”라며 싱긋 웃었다.

▶영화학도 꿈꾸던 소년의 꿈..“지인이 아닌 친구를 두는게 내 인생관”

딱딱할 것만 같은 경제관료지만, 실제로는 유머러스하고 감정이 풍부하다. 실제 그의 꿈은 영화감독이었다. 서울고 재학 시절 영화 관련 내용을 정리한 영화 앨범을 만들어 보다 선생님한테 걸린 적도 있고, 젊은 시절 영화란 영화는 모두 섭렵했다.

문학적으로는 박경리 선생의 ‘토지’가 영미권에서만 출간됐으면 진즉에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이런 남다른 감수성은 국제무대에서도 발휘됐다. 지난 2010년 한ㆍ아프리카 장관급 경제협력회의(KOAFEC)에서 아프리카 대표단과의 만찬때 만찬사로만 네 차례 박수를 받았다. 먼저 로버트 레드퍼드와 메릴 스트립 주연의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주제곡을 들려줬다.

그는 “젊은 시절 영화감독을 꿈꿨고 오늘 회의를 계기로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into Africa(아프리카를 향하여)’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상상을 했다. 한국이 양적 측면에선 다른 강대국에 비해 미미하지만, 개발경험의 측면에선 어느 나라보다도 강한 노하우가 있다. 한국인에게는 ‘따뜻한 가슴’이 있으며 신뢰를 바탕으로 장기적인 협력 파트너십 구축에 주력하겠다”고 말해 박수갈채를 이끌어냈다.

러시아와의 경제 협력에선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리나’를 인용해 대화를 풀어나가기도 했다.

인생관에서도 영화학도다운 답이 나왔다. “캐서린 햅번과 스펜서 트레이시가 평생 친구처럼,애인처럼 관계를 유지했듯 우정과 애정,만남을 갈구합니다. 지인이 아니라 친구를 두는 것이 내가 추구하는 인생관이죠.”

끝으로 양평 집에 가장 먼저 초청하고픈 후배 관료 두명을 꼽아달라고 하자 “많은 후배들이 눈에 밟히는데…” 라며 잠시 곤혹스런 표정을 짓다가 장관시절 각각 1차관과 경제정책국장을 지낸 임종룡 국무총리실장과 윤종원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을 꼽았다. 상황판단능력이 탁월한 임 실장이 차관을 맡아줘서 행복했고,윤 비서관은 공직자로서의 자질과 함께 이론의 깊이가 커 중요한 역할을 맡을 후배라고 평했다.

또 고교 동기동창인 고 구본영 박사를 최고의 친구로 꼽았다.

혹 정치에 관심이 있는지를 물었지만 단호히 “no”라고 했고,공직을 마친 것에 대해서도 본인의 의지가 크게 작용했기때문에 허전함은 없다고 했다.

<인터뷰=김형곤 글로벌증권부장>/kimhg@heraldm.com <정리= 성연진 기자>/yjsung@heraldm.com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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