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돔 없는 섹스 : 관 위의 화관(花冠) 비용을 누가 지불할까?’(Sexe sans capote: qui paie la couronne mortuaire?)

나디야, 엘렌, 카를라, 마리아와 아나이스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음료수, 주전부리를 갖춘 상태에서 자신들 집에서 콘돔을 끼지 않고 갱뱅(gang-bangㆍ난교파티)을 즐기는 행사를 개최했다. 참가비는 50유로에서 100유로 사이이다.

화관의 비용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러브 갱뱅(Love Gang Bang) 사이트에 수록된 광고들은 노골적이다. “난 마음껏 즐기고 싶어요”라고 나디야는 선언한다. 하지만 죽기를 갈망한다는 얘기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정액 소녀’란 별명을 가진 금발 여성은 “남근을 만나 정액이 흘러내리는 걸 느끼고 싶어요.

전혀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 갱뱅을 곧 개최합니다. 나이와 외관은 중요치 않은 대신 오직 당신의 정액에만 관심이 있어요”라고 강조한다. 별명이 ‘콘돔을 거부하는 창녀’인 켄자 역시 ‘금기를 모르는’ 자신의 몸 안에 남자들이 ‘배설하기를’ 권한다.

크리스는 “나와 내 친구 베로는 음부와 항문에 100% 삽입을 허용합니다. 모든 사람의 정액을 받고 싶거든요”라는 소망을 피력한다. 전체 광고의 절반가량은 모임이 ‘베어백(bareback)’ 파티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베어백이란 단어는 로데오 경기와 관련된 승마 용어이다. 원래 베어백은 안장이나 등자가 없는 말에 ‘맨손으로’ 올라타는 행위를 지칭했다.

에이즈 세대, 다시 말해 대량학살 세대에 속하는 내 입장에서는 이런 글들을 읽으면 분노가 치민다. 파리 제8구에 소재한 방크클럽이 2008년 10월 콘돔을 끼지 않고 섹스를 하는 최초의 베어백 파티를 개최한다는 기사를 읽었을 때에도 나는 분노했다. 액트업(Act Up)협회는 “게이들이 드나드는 파리의 한 건물에서 그런 파티가 최초로 개최됐다”고 토를 달았다.

파티에 참석을 원하는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 18.50유로를 지불하면 된다. 그러면 건물의 주소를 e-메일로 받을 수 있다. ‘완전 베어백 및 트래쉬(Trash)’ 파티로 소개된 이 행사를 주최한 자는 ‘스콰트노크(squatNoK)’란 인터넷 사이트이다. 풀어서 설명하자면 ‘프랑스 및 불어권 베어베이커 모임’이다.

그에 반발하여 액트업 파리에 소속된 15명 멤버가 방크클럽 앞에서 시위를 벌이며 “에이즈의 공범들”, “베어백 비즈니스에 반대한다”, “동성애자의 목숨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액트업의 반응이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사람들이 서로를 감염시키는 것을 저지하고 싶다고? 일부 에이즈 양성반응자들은 원하는 사람 모두가 ‘수태’할 수 있도록 ‘병을 옮길’ 권리를 내세우며, 액트업의 ‘간섭’이 추잡스럽다고 평가한다.

에이즈 양성반응자들의 이러한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 중 한 명은 베어백존(BarebackZone) 사이트를 통해 “병을 옮긴다는 생각은 에이즈 및 성병으로 전파 가능한 질병들을 유포시키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한다. “내 생각에 그건 쾌락에 봉사하는 병적인 현실을 이용하는 겁니다! 납을 금으로 변모시키려는 환각에 빠진 방식이지요.”

이미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러한 주장을 펼치는 사람의 아이디 속에는 ‘금기 없음’이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음을 주목하자. 헤테로든 호모든 상관없이 ‘베어백’을 지지하는 사람 입장에서 볼 때 메시지는 자명하다. 콘돔을 사용하지 않지 않고 사랑을 나누는 행위가 혁명을 구현한다는 것이다.

소위 ‘전복적’인 이러한 행위를 통해 그들은 자신들이 자기 인생에서 원하는 것을 행할 권리를 주장한다. 그들은 주위의 편의주의를 조롱한다. 그들 눈에 자기의 삶, 타인들의 삶을 고집하는 것이 너무나 ‘편의주의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에이즈 인포 서비스(Sida Info Service)에 전화를 걸어보니 누군지 모를 한 여성이 나에게 상황을 과장한다고 탓한다. 에이즈로 사망할 확률이 오늘날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녹색 전화(0 800 840 800)에 전화를 해보니, 이번에는 의학이 진보했다는 사실을 나에게 알려준다. “치료가 실패하는 확률은 5~6%에 불과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에이즈에 감염됨 사람들 중 ‘단지’ 5~6%의 사람들이 에이즈 ‘단계’로 진입하면서 사망한다는 얘기다.

콘돔을 끼지 않고 사랑을 나누는 에이즈 양성반응자들은 단지 서로를 ‘감염시키고’ 있을 따름이다. 다시 말해 다른 취락의 바이러스를 서로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치료에 저항현상을 유발할 수 있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바를 전적으로 믿는다면 내가 불안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에이즈의 위험은 하루에 담배를 3갑 피우는 것보다 더 크지 않다.

사람들이 위험한 행위를 즐기는 것은 그들 자유이다. 원할 경우 환자가 되는 것은 그들의 자유지만, 자신들을 위해 돈을 지불해 달라고 사회에 요구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플라타너스 나무에 돌진하고, 4층에서 뛰어내리며, 심지어 독이 든 뱀을 끌어안는 것은 그들의 자유다. 그러나 쾌락과 일탈의 형태로 자유를 요구한다면? 약에 의존하고 영원히 타인의 도움을 받는 꼴이 되려고 쾌락에 몰두하는 모습을 나는 절대 이해할 수 없다.

글=아녜스 지아르(佛칼럼니스트), 번역=이상빈(문학박사ㆍ불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