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을 보여줄 수 있을까?(Peut-on montrer le desir?)
화가 스테판 블랑케는 대사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 로망-포토(roman-photo)를 통해 첫 오르가슴을 경험한 한 여성의 삶을 그려낸다. 육체에 그림을 그린 사진이다.
벌거벗은 한 소녀가 숲속으로 도망치자 엉겅퀴가 그녀의 다리에 들러붙고, 칡이 그녀를 땅으로 잡아당긴다. 마침내 그녀는 쓰러진다. 둔부의 백색 피부 위에 레이스 모양의 포식자로 그려진 죽음의 꽃은 그녀를 매몰시킬 기세다. 소녀는 연방 헐떡거린다.
모델의 피부 위에 그린 80개의 이미지를 통해 블랑케는 ‘욕망 덕분에, 그리고 욕망 때문에’ 생명을 얻은 시신(屍身)의 역사를 담아내고 있다. 책의 이름은 ‘벗은 육체의 관절이 움직이다’(알랭 볼레출판사)다.
블랑케는 “애초 여성은 관절을 가진 인형이었다. 한숨을 내쉬고 ‘예스’라고만 이야기하는, 잘 정리된 상자 속의 아름다운 물건이었다. 이번 작업은 이렇게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됐다. 바로 그 여성이 처음 쾌락을 맛본다. 이 이미지는 그런 순간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욕망의 떨림에 화가가 형태를 부여하는 경우는 드물다. 욕망을 어떻게 재현해낼까. 전염성 강한 열병을 앓으며 블랑케는 모든 도구 중 가장 인상적인 도구인 피부 위에 강박관념, 불안과 공포를 표현해내는 데 성공했다. 한 달 동안 블랑케는 한 모델의 몸 위에 지극히 사실적인 잎사귀, 짓궂은 작은 괴물을 붓으로 그렸다.
모델 이름은 마드무아젤 Cr. 검은 그림으로 채워진 그녀의 육체는 여자와 어둠 간에 이상한 숨바꼭질이 벌어지는 무대로 바뀐다. 잎줄기가 여인의 둔부를 감싸고, 부리가 그녀의 겨드랑이 밑을 훑는가 하면, 불안감을 낳는 식물이 다른 곳으로부터 비집고 들어온다. 소녀가 도망치려고 발버둥치지만 소용이 없다. 어둠으로부터 벗어나기란 불가능하다.
“욕망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습니다. 그녀를 잠식하고, 그녀에게 두려움을 주지요. 도망치다가 소녀는 정글에서 의식을 잃어버립니다. 당연히 책 속에 정글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나의 은유죠.” 그가 강조한다.
역시 은유적으로 표현한 마드무아젤 Cr.의 입은 어두운 우물을 향해 열려 있으며, 그 주위를 검은색 번개가 감싸고 있다. 쿠르베의 그림 ‘세상의 기원’을 연상시키는 포즈를 취하고 있는 여인의 벌어진 둔부는 형이상학적 난해함을 보여준다. 애당초 털이 없던 인형은 핑크빛에 윤기가 흐르는 순결한 모양이었지만, 숨겨져 있던 털에 의해 침범당하면서 점차 어둠 속에 파묻혀 버린다. 성인이 된 것이다.
“나는 보여줌과 숨김에 대해 성찰하기를 좋아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여성이 차고 넘치지만 그녀가 누구인지, 그녀가 누구와 닮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걸 퍼즐 효과라부릅니다.” 퍼즐 맞추기를 너무도 좋아하는 블랑케는 자신이 머릿속으로 구상한 포즈를 모델에게 미리 알려주는 법이 결코 없다.
육체에 그림 그리는 작업을 책으로 출간하기 위해 블랑케가 처음 자신의 모델과 만난 시기는 2003년께다. 블랑케는 그녀가 놀랄 만큼 유연한 데 충격을 받았다. “마드무아젤 Cr.는 그 어떤 제약 없이 마음대로 그림을 그리도록 내버려뒀지요.
정확히 어떤 작업을 해나갈 것인지 알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작업하면서 이른 시간 내 책을 출간하자고 제안했습니다. 1년 후 아이디어가 떠오르자 그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녀는 내가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뒀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고 보여줘야 하는지 전혀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나는 구상한 작업일정에 따라 일을 진행시켰고, 그녀는 매일 새로운 포즈를 취했습니다.”
더없이 특이한 마드무아젤 Cr.는 주인이 마음대로 갖고 놀게끔 내버려두는 인형과 흡사했다. 블랑케의 성적 환상은 그녀 속에 ‘투영됐고’, 응고되면서 생명을 얻게 됐다.어둠에 침범당한 이 인체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우리는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무의식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피부의 동화적인 순결함에 이끌리고, 자화(磁化)된 힘의 어두운 부분을.
알랭볼레출판사가 출간한 ‘벗은 육체의 관절이 움직이다’의 가격은 18유로다.
*스테판 블랑케는 2009년 2월 13일부터 4월 19일까지 리옹 현대미술관에서 ‘피부 위의 사진들. 그림자 연극 놀이와 인간 크기만한 마법의 랜턴’이란 제목의 전시회를 개최한 바 있다.
글=아녜스 지아르(佛칼럼니스트),번역=이상빈(문학박사ㆍ불문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