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4> 끝까지, 죽을 때까지(19)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유민 회장으로부터 독립하게 되면… 그러니까 작은 계열사 하나라도 떼어 받게 되면 제일 먼저 직원들을 대상으로 사내 골프대회부터 엽시다. 직원들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심어주는 방법으로는 역시 골프대회가 제격일 게요. 예선부터 치러서 상위 열여섯 명을 추려내고 본선경기로 이어가는 거예요.”
“아, 좋아요. 좋아.”
“골프 잘 치는 사람이 일도 잘 한다고요. 그러니 핸디캡 싱글 이하인 직원들만 골라서 부장으로 승진시키는 거야…”
“그래요, 그렇게…굿, 굿!”
얼핏 들으면 장래에 꾸려갈 회사 경영에 대하여 진지한 토론을 벌이는 것 같았지만 실제는 동상이몽, 동문서답이 오가는 중이었다. 강준호는 장차 신희영을 이용해서 한 자리 차지하려는 욕심 때문에 늘 기회를 엿보는 중이었고,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그녀의 결심을 굳힐 수 있는 최적의 순간이라고 믿는 바였다. 지금 이 순간이란? 물론 사방이 탁 트인 유리방 욕실에서 알몸으로 샤워 물줄기를 받아가며 상열지사를 벌이는 순간이었다.
신희영은 외마디 대답을 하는 중에도 이미 숨이 턱에 닿아있었다. 숨이 가쁘다는 것은 몸 속에서 몰아치는 열정을 스스로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과 같았다. 드디어 강준호가 그녀의 허리를 낚아채어 거품이 그득한 욕실 바닥에 눕혔을 때 그녀는 하악, 하악!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강준호는 그녀의 숨소리만으로도 온 몸의 땀구멍이 바짝 조여지고, 콧날이 시큰해지면서 뜨겁게 뜨겁게 아랫도리로 혈기가 솟구치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싱글 이하로 골프를 치는 직원들을… @#$%&*&^%$#@…”
“아으, 좋아요 좋아. 그렇게…”
무릎까지 차오른 거품 속으로 온 몸이 잠겨 들어갔을 때 그녀는 더 이상 강준호의 말귀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긴 그 이전에도 이미 홍콩 하늘을 날고 있던 중이었으므로 그의 말에 건성으로 대답했을 뿐이었지만… 하여간 이명 현상처럼 귓가에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녀는 ‘좋아요, 좋아!’ 외마디 소리를 연발할 뿐이었다.
숨이 차서 할딱이는 것인지, 할딱이기 때문에 더더욱 흥분상태로 빠져드는 것인지… 에라 모르겠다, 그녀는 강준호의 단단한 어깨를 끌어안고 욕실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비밀스럽고 아늑한 침대에서 상열지사를 벌여도 정신이 혼미할 판인데, 사방으로 트인 유리창 앞으로 숱한 사람들이 오가는 백주대로에서 뒹굴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했다. 저벅저벅 행인들의 요란한 구두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고, 이러다가 사진 찍혀 온 세상 해외토픽으로 실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그녀를 더듬는 강준호의 손길이 워낙 뜨거워서… 그만 혼미한 상태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 이거야… 인생이 별 건가? 강 프로님, 우리 결혼하자고요. 서울 가면 당장 남편과 이혼수속부터 밟을 거야…”
신희영의 알몸이 욕실 바닥을 두 바퀴나 구르고, 온 몸에 들러붙은 거품 사이로 풍만하고 뽀얀 젖가슴이 드러나고, 거품방울마다 햇빛이 투과되어 오색 무지개가 생겨나던 그 순간에, 강준호는 너무 기뻐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결혼이라니… 빈둥빈둥 건달로 살아왔던 이 몸이 재벌 마나님과 결혼하게 되다니…
“그럽시다, 희영 씨! 남은 인생 폼 나게 살아봅시다.”
늘 신 여사! 라고만 부르던 강준호가 이름을 불러주는 통에 그녀는 좋아 죽을 지경이었다. 이제 가쁜 숨이 진정되면 욕조에 장미꽃잎이라도 띄워 놓고 무드라는 걸 살려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토록 낭만적인 몬테카를로 리틀스완 호텔에서 굶주린 동물처럼 서둘 필요가 있을까? 강준호는 실내용 슬리퍼도 벗지 않은 상태였다. 급히 바지를 벗는 통에 아직도 바짓단이 한 쪽 발끝에 걸려있는 상태 그대로였다. 발끝에 걸린 바지는 젖은 걸레처럼 질질 바닥에 끌려 다니며 거품을 빨아먹고 있었다.
“자, 때론 격렬하게 인생을 살아보는 것도 좋아. 이제부터 불꽃처럼 살아보는 거야.”
둘이 엉켜서 격렬하게 바닥을 구르는 통에 젖은 바지가 허공을 가르더니 철퍼덕! 유리벽의 습기를 닦아내고야 말았다. 그러자 밝은 햇빛이 빗겨 들어오기 시작했다. 단단히 엉킨 그들의 속살… 무럭무럭 김이 솟아오르는 네 쪽의 엉덩이가 햇볕에 뽀얗게 드러나고 있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