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철소 건설에 실패한다면 우리 모두 민족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다. 실패하면 우리 모두 우향우해 영일만에 투신해야 한다.”

박태준 고(故) 포스코 명예회장의 우향우 정신은 곧 한국 근대 경제의 서막을 여는 정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철에 미친 사나이’, 박 명예회장의 신화는 ‘한국철강의 국보1호’, 포스코 포항제철소 제1고로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한국 공업의 역사도 이 곳에서 막을 열었다.

1968년 11월 12일, 박정희 대통령이 포항 건설현장을 방문했을 때다. 한 겨울 마을이 철거된 허허벌판 속에 박 대통령과 박 명예회장이 나란히 섰다. 황량한 벌판 가운데에는 모래바람이 쉼 없이 날아들었고, 박 대통령은 “제철소가 정말 되기는 하겠냐”고 탄식했다. 박 명예회장이 우향우 정신을 강조하며 제철소 설립에 사활을 걸었던 것도 이때부터다.

박 명예회장은 그때부터 모든 취미활동을 접고 현장에 머물렀다. 건설현장은 전쟁을 방불케 했다.

“우리는 사느냐, 죽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소. 지금은 비상사태요. 건설비상 말이오. 이것은 공사가 아니라 전투요. 전장에 나선 이상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무조건 이번 전투목표를 달성하도록 하시오.”

24시간 내내 작업이 이어졌고, 박 명예회장은 작업복 차림으로 직접 공사를 감독했다. 비가 내리는 밤에서도 도로 옆에 트럭이 일렬로 서 있는 때도 있었다. 맨 앞차를 보니 피곤에 지친 운전수가 잠들고 있던 것. 이에 뒤에 있는 운전수 역시 모두 잠에 든 상태였다. 박 명예회장은 한명 한명 만나가며 모두 흔들어 깨웠다. 그만큼 모두가 손을 놓지 못한 순간이었다.

박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종이 마패도 지금까지 자주 언급되는 에피소드다. 제철소 건설 과정에서 많은 정치인이 개입해 협상에 시간이 지체되면서 1970년 2월 박 명예회장은 직접 박 대통령을 찾아갔다. 정치권의 압력을 배제해달라는 청을 전한 것. 이에 박 대통령은 친필서명으로 대통령 권한을 박 명예회장에 위임했고, 이게 지금까지 알려지고 있는 종이마패다.

밤낮없이 현장에 온몸을 던진 박 명예회장과 직원들, 이들 모두가 한국 경제 근대화의 영웅이었다. 포항제철소는 이처럼 철에 미친 사나이들이 만들어 낸 한편의 영화였다.

<김상수 기자 @sang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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