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0회> 인정사정 볼 것 없다 35

“엄마!”

다행인지 불행인지… 백광돌이 레이스로 예쁘게 장식된 면직 삼각형, 이를테면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던 마지막 언더웨어를 벗기려 할 때 그녀는 또다시 엄마를 외치고야 말았다. 이미 밝힌 바 있지만…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남자의 손길이 마지막 삼각형을 벗기거나 뜯어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아니 저건 유리 양 목소리잖아요? 어쩜 저렇게 반가와 할까?”

신희영이 강준호의 어깨를 톡톡 치며 속삭였다. 마침 강준호는 그녀의 샌들 고리를 풀어주기 위해 허리를 잔뜩 굽히고 있던 중이었다.

“방금 엄마라고 하지 않았어요? 엄마?”

“그러게 말예요. 이곳으로 떠나오던 날 비행기에서도 날 엄마라고 부르더라니까? 유리 양이 내 옆자리에 붙어 앉아있었잖아요? 글쎄 무슨 얘기 끝에 눈물을 글썽이더니… 엄마 얼굴이 기억도 안 난다고 하지 뭐예요. 그러더니 다짜고짜 나를 엄마라고 불렀어요.”

쥐톨 만한 샌들 고리를 푸는 일도 손가락 굵은 강준호에겐 결코 쉽지 않은 아니었다. 느려 터지기는… 차라리 개구리 턱에 수염 나길 기다리는 편이 낫지… 하는 생각에 그녀는 대뜸 강유리를 향해 소리부터 질렀다. 반가와 하며 엄마를 부르는 유리에게 역시 반갑게 화답을 한 셈이었다.

“그래요, 유리 양. 엄마가 좀 늦었어요.”

순간적인 일이었지만 이 외침 한 마디에 숙소 안의 두 사람은 동물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백광돌과 강유리는 눈으로 묻고, 눈으로 대답해야만 했다. 겉으로는 조용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속으로는 불붙은 호떡집 주방장처럼 저마다 오두방정을 떠는 중이었다. 보들보들하게 녹아들던 두 사람의 알몸은 순식간에 뻣뻣하게 굳어졌고, 그들의 벌어진 입에서는 소리 없는 비명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어쩌면 유리가 엄마를 외치며 호들갑을 떤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그 호들갑에 신희영이 화답을 했기에 망정이지, 만약 헐벗은 채로 가쁜 숨을 몰아쉬던 현장을 들켰다면… 머나먼 객지에서 초상이라도 치를 판이었다.

‘이게 웬 날벼락이냐?’ 하면서 백광돌은 용수철 튀듯이 몸을 일으켰다. 미처 벗어놓은 옷을 걸칠 시간도 없었으므로 그는 옷가지를 움켜쥐고 베란다로 튀었다. 불행히도 숙소는 7층이었다. 이걸 어쩌나…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 마침 비상용 완강기가 눈에 띄었으므로 그는 알몸 위에 안전벨트를 맨 채 무작정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물론 한쪽 다리에 미처 벗지 못한 삼각팬티만을 걸친 상태의 알몸이었다.

‘어째서 현관 문단속을 안 했을까?’ 강유리는 빠른 동작으로 티셔츠를 걸쳐 입으면서도 철학적 성찰을 마다하지 않았다. 백광돌에 비하면 제법 침착한 편이었다. 비치웨어 스타일의 여자들 옷은 벗기도 쉬웠지만 입기도 쉬웠다. 티셔츠 걸치는 데에 2초, 짧은 스커트 입는 데에 2초… 벗겨져 나뒹굴던 브래지어는 발로 툭 차서 침대 밑으로 숨기면 그뿐, 이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표정관리만 하면 될 일이었다. 까짓 한강에 배 지나간 자국을 귀신인들 찾을 수 있을라고? 그 와중에 홀로 가슴 뿌듯한 사람은 강준호였다. ‘영악한 것! 왕회장으로 하여금 홀딱 반하게 만들었군.’ 하는 생각에 그는 큼!큼! 헛기침을 삼켜야 했다.

“유리 양 혼자 있었어요? 심심했겠다. 한솜이는 아직도 안 들어왔나요? 다 큰 것이 야밤에 어딜 싸돌아다니는 거야? 기획실장, 매니저… 모두 외출 중예요?”

상냥하기 이를 데 없는 목소리였지만 그녀의 등장으로 인해 강유리와 백광돌은 난감한 신세로 전락하고야 만 것이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유리는 재빨리 욕실로 뛰어가 샤워기의 뜨거운 물을 틀었을 뿐더러 고양이 세수일망정 얼굴에도 물기를 바르는 민첩함을 발휘했다. 어쩌면 그 민첩함과 대담함은 여자들에게 대대로 전해져 오는 본능인지도 몰랐다.

“어서 오세요, 회장님. 강 프로님과 데이트 하고 오셨어요?”

“어머, 데이트는 무슨… 모처럼 하와이에 왔으니 칵테일 한 잔 마셨지요. 그런데 베란다 문을 활짝 열어놨네? 벌레 들어오면 어쩌려고?”

아뿔싸, 아직도 완강기소리가 윙윙 들려오건만… 그녀는 어느새 베란다로 나서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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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