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8회> 인정사정 볼 것 없다 23

전해 듣기로…항간에 호랑이 걸음으로 산을 타는 기인이 있다고 한다. 그는 호랑이처럼 등을 굽힌 채 엎드려서 네 발로 기어 산을 오른다고 하는데 남들이 숨을 할딱이는 이른바 깔딱고개에서조차 지치는 기색 없이 유유히 정상까지 오른다고 한다.

손을 발처럼 써서, 이를테면 네 발로 벌벌 기다보면 손바닥이 호랑이 발바닥처럼 두툼해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생각이다. 곰 발바닥을 연상해도 물론 좋을 것이다. 만약 우리네 손바닥이 그 지경으로 변해버린다면…. 밥은 어떻게 먹고, 코는 어떻게 후벼 팔까. 허옇게 센 머리카락이라도 뽑으려면 과연 어찌해야 할까.

유호성의 생각은 그처럼 단순하고 유치하기만 했다. 하긴 누구라도 극한 상황에 이르게 되면 생각이 유치하고 단순해지는 법이므로.

“진리는 생각하는 동안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행동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자, 빨리 행동 개시하세요.”

“아니, 뜬금없이 무슨 말예요? 진리를 이루다니요? 우리가 박사학위 논문 쓰는 중입니까? 정말 미치고 환장하겠네.”

“이 메모첩 표지에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회장님 필체로 말입니다.”

“그게 어쨌다고요?”

“도련님이 게으름 피울 때마다 이 글귀를 읽어주라고 하셨습니다. 앞일을 훤히 예견하고 계셨다는 거지요.”

어쨌든 게으름 피우지 말고 육법전서에 적혀있는대로 행동하라는 명령이었다. 그러니 어쩔 수 있나. 상대방이 유도 4단, 혹은 특공무술 3단인 것을…. 그는 비루 먹은 호랑이처럼 네 발로 엎드려 어그적 어그적 아스팔트길을 기어가야만 했다.

“서킷 바닥을 타고 흐르는 바람을 몸으로 느껴야 합니다. 얼굴에 와 닿는 감각을 음미하라는 것이지요.”

“벌써부터 목덜미가 뻐근한데 음미는…개뿔!”

“코끝으로는 아스팔트의 열기를 감지해야 합니다. 향기가 있다면 그 향기를 기억해 두라고 쓰여 있습니다.”

“아스팔트에서 개 비린내밖에 더 나겠어요? 염병!”

“눈으로는 타이어 자국을 살피라고 되어 있네요. 굽은 길 위에 찍힌 타이어 자국은 어떤 형태인지, 어디쯤에 브레이크 자국이 있는지….”

“아니, 그걸 꼭 엎드려 기어가면서 봐야 한단 말예요?”

“보는 게 아니라 느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거야 원, 열이 뻗쳐올랐지만 팔자소관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법보다 주먹’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말로 대드는 것이야 얼마든지 용납받을 수 있었지만 행동으로 대항하면 대번에 업어치기, 조르기, 굳히기 등등 고난도의 유도기술이 들어올 판이니 아무런 재간이 없었다. 그나마 유도기술에 당하면 흔적은 남지 않을테니 거죽이나마 멀쩡하겠지. 그러나 특공무술에 걸리면…. 어이고, 거죽마저도 넝마처럼 너덜대기 십상이었다.

하긴, 사전을 뒤적여 보면 ‘문향(聞香)’이라는 말, 혹은 ‘관음(觀音)’이라는 단어를 발견하게 된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자면 문향이란 ‘향기를 듣는다’는 뜻이고, 관음이란 ‘소리를 본다’는 뜻이 된다. 미친놈 아닌 바에야 어찌 향기를 듣고 소리를 볼 수 있을까. 무릇 세상만사 천지의 이치를 오감으로 느끼라는 뜻일테지만 엎드려 벌벌 기면서 온 몸으로 육즙 쏟아내듯 땀 흘리는 유호성에게는 가당치도 않은 말이었다.

“형님들, 이러고 어디까지 가야 하는 건데요?”

“저기까지요.”

우문현답! 저쪽을 가리키는 유도 4단의 턱은 높이 들려있었다.

알리바바 더보기


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