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6>날개에 숨긴 칼 (36)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왱왱거리며 밥상 위를 날아다니다가 은근슬쩍 반찬그릇에 달라붙는 날 파리를 누구나 한 번쯤은 관찰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편편한 벽면이나 방바닥에 달라붙어 있다면 파리채로 철썩! 때려잡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파리채를 휘두르기 어려운 반찬그릇 혹은 물컵 가장자리 등에 올라앉곤 한다. 어쩌면 파리의 아이큐가 우리보다 훨씬 높은 지도 모른다는 속설을 증명이나 하듯이.
반찬그릇에 올라앉아있으니 때려잡을 수도 없고… 만물의 영장이라 일컬어지는 우리들은 아무런 대책 없이 파리와 눈싸움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럴 때마다 앞발을 싹싹 빌며 사과하는 파리를 보노라면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래, 처먹어라. 네까짓 게 먹어야 얼마나 먹겠니…
도종호와 송달민이 파리채를 든 사람들이라면, 팬티바람으로 꿇어앉아 싹싹 비는 권도일이야말로 반찬그릇이나 물컵에 달라붙은 날 파리와 다를 바 없었다. 때려잡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한편으로는 측은하기도 한 날 파리… 적어도 도종호와 송달민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는 말이다.
“그래, 뭘 도와주면 좋겠소?”
마음이 한결 누그러졌는지 도종호 상무는 그만 일어나 앉으라는 시늉을 하며 온화한 목소리로 물었다. 눈치 빠른 마담은 즉시 권도일을 부축해서 일으켜 세웠고, 벗어놓은 바지를 입히기 위해 그의 한쪽 다리를 치켜세우는 중이었다.
“1974년 산 치타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까짓 거, 도와드리지요. 그러나 그 차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아도… 그걸 끄집어내기가 만만치 않을 텐데?”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시기만 하면 그 뒷일은 제가 감당하겠습니다.”
“과연 그럴까?”
도종호는 어느새 거나하게 취해있었다. 만면에 희색을 띤 것으로 보아 최고로 기분 좋은 상태인 모양이었다. 하긴 아가씨들이 즐비한 곳에서 권도일을 팬티바람으로 빌게 만들었으니 어찌 흡족하지 않으랴. 송달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어느새 가장 키 큰 아가씨를 제 옆자리에 앉혀놓고 러브샷을 하는 중이었다. 꽃다운 아가씨와 팔을 엇갈려 꼰 채로 스트레이트 양주잔을 들이키는 모습은 호탕하기 그지없었다.
“네 이름이 뭐냐?”
“송송난난! 송난이예요 사장님.”
“송난? 거 참 생김새만큼이나 이름도 예쁘구나. 너처럼 예쁜 애가 부탁하면 그 차를 빼주실까 몰라도… 저런 작자가 부탁한들 그 분이 들어주시기나 할까 몰라, 그 분은 아무 부탁이나 들어주는 헐렁이가 아니거든? 허허허!”
송달민은 더불어 기고만장했다. 그는 원래 어수룩한 짐승 아니었던가. 화투를 치건, 팔씨름을 하건, 심지어 자장면 빨리 먹기 내기를 하건 무조건 남을 이겨야만 직성이 풀리는 단세포 동물. 팬티바람으로 항복을 받은 것이 가슴에 벅차 기고만장, 어쩔 줄 모르는… 파리보다도 아이큐가 낮은 동물.
“그분이 누구예요? 사장님.”
“그분? 바로 거성그룹의 회장님이시지. 민족의 태양이시며 아시아의 등불이신 우리 회장님. 등잔 밑이 어둡다고… 회장님 댁에 그 차가 보관되어 있는 걸 모르고 저 양반은 전국을 헤맸다지 뭐냐? 한심하지? 그래서 자고로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는 말이 있는 게야.”
송달민은 이렇게 떠들면서도 한편으론 도종호 상무의 눈치를 흘끔 보았다. 하지만 도종호 역시 기고만장한 상태였다. 그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까짓 거, 그분이 누구인지 알려준들 날 파리가 무슨 뾰족한 수를 내겠어? 하는 투로 웃고 있었다.
그 순간, 권도일은 아드득! 이를 갈고 있었다. 거성그룹 회장님 댁에 1974년 산 치타가 보관되어 있다는 말 한 마디를 듣기 위해 팬티바람으로 날 파리처럼 빌어야만 했던 치욕… 그것을 결코 잊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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