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을 야무지게 보내는 방법 Ⅲ. 교양

<정유나 대학생 기자>인문학은 학문의 기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고리타분하고 난해하다는 이유로, 밥벌이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변명으로 사회적으로 외면당해 왔다. 인문학을 고집하는 사람들은 박해받는 종교의 순교자마냥 결연하고 숭고했다. 하지만, 스토리텔링과 크리에이티브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인문학은 화려하게 부활했다. 모든 학문에 물을 대주는 저수지와 같은 인문학. 무료한 방학, 우리의 교양을 업그레이드시킬 풍성한 재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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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일대의 대안 교육 공간 네 곳을 골라 청강했다. 현장감을 채집한다는 이유로 부지런히 강의 들으러 다닌 며칠 간, 놀란 사실은 지식의 깊이나 사유의 폭이 아니라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제목도 인문학, in문학, 人문학으로 지었다. 인문학의 다양한 결(in)을 탐색해보고 사람들(人)도 만나보자.

Intellect 로쟈와 함께하는 인문학여행 | 강사 이현우 |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인문학을 좀 안다는 사람치고 로쟈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인문학을 읽기 전에 로쟈를 읽자”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닉네임 로쟈로 알려진 이현우는 인기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의 서평꾼이자 <로쟈의 인문학 서재>의 저자다. 로쟈와 함께하는 인문학 여행은 프랑스 구조주의 철학자, 소쉬르, 푸코, 롤랑바르트와, 레비스트로스, 라캉을 다룬다. 소쉬르의 언어학, 레비스트로스의 문화인류학 바르트의 기호학, 라캉의 신분석학을 경유하는 구조주의를 정복하기란 만만치 않지만 로쟈는 핵심을 예리하게 짚어낸다. 입문자들에겐 친절한 지적 가이드가 되어주고 어느 정도 구조주의를 접해본 사람이라면 구조주의 사상의 전체 덩어리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준다.

강의의 미덕은 책으로는 도통 알기 힘든 ‘살아있는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인문학에서는 손에 잡히는 종이책 뿐 아니라 강사 자체가 곧 텍스트다. 에디터가 들었던 ‘푸코’ 강의만 해도 푸코의 생애 면면(‘쌈닭수준으로 석학들과 논쟁하길 즐겨했다’는 말에 좌중폭소), 현재 ‘푸코 르네상스’라 불리며 재조명되는 배경, 푸코의 저작이 국내에서 번역 중이고 빠르면 6월 달에 나오리라는 출판업계 사정까지, 방대한 지식을 아우른다. 러시아 문학 전공자답게 오역을 바로잡아주는 센스도 훌륭하다. 로쟈에게 빼곡히 들어차있는 지식을 유람한다면 인문학도 한결 쉽고 재미있어질 것이다. | 매주 월요일, 총 5회, 수강료 12만원

한겨레교육문화센터

한겨레 신문사가 1995년 설립한 한겨레교육문화센터는 대학교육이나 문화센터, 자격증 따기 교육과는 거리를 둔다. 딱히 어느 분야를 말하기 힘들 정도로 인문사회 교육뿐 아니라 출판, 영상, 디자인, 경영 강좌를 총망라한다. 특히 인문사회 강좌는 5만원~10만 원대로 20만원을 넘지 않는다. 온라인 e한터도 운영하고 있어 인문 ․ 역사 ․ 철학의 정통 강의를 저렴한 가격에 들을 수 있다. 한겨레신문의 명사특강도 빼놓지 말아야할 것 중 하나.

추천강좌

인문고전과의 대화-정치 편(마키아벨리, 로크, 마르크스) 6월 13일 개강, 수강료 8만원

시대의 금서를 읽다-혁명 이전의 금서, 혁명 이후의 양서 6월 13일 개강, 수강료 8만원

위치 신촌역 7, 8번 출구 서강대학교 정문 맞은 편

홈페이지 http://www.hanter21.co.kr Insight 철학과 놀기 |강사 강신주 | KT&G 상상마당 아카데미

시작은 유쾌했다. 철학자 강신주는 수강생들에게 “얼굴이 반쪽이 됐다”거나 “여자 친구와 안 만난 지 4주면 헤어졌다고 봐야 된다.”는 농담도 무람없이 건넸다. 이날은 5주 동안 제임스 조이스의 여정을 마치고 카프카를 시작하는 날이었다. 그는 카프카를 “불편하고 잠 못 들게 하는 작가”로 소개했다.

카프카의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는, 야생에서 자유롭게 뛰놀던 원숭이 ‘빨간 피터’가 인간에게 포획되어 학술원 회원 앞에서 인간화 과정을 보고하는 이야기다. “저는 자유를 원치 않습니다. 단지 하나의 출구만을 원했습니다.”라는 대목이 자못 의미심장했다. 여기에 철학자의 명쾌한 해석이 덧붙여졌다. “인간에게 본질적인 자유는 없다. 사람들이 자유를 향유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출구를 찾은 것에 불과하다. 그 출구조차도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 체제에서 뚫어 놓은 것이다.”

<철학과 놀기>는 어려운 철학 고전을 독파하기보다 않고 현실 속 고민을 나누고 문학의 모티프를 삶에 적용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철학과 놀면서 낯선 자아를 발견할 수도 있고 당당하게 세상과 대면하는 용기도 얻을 수 있다. <철학과 놀기>에서는 난해한 철학서 없이 느낀 대로, 고민한대로, 솔직하게, ‘나’를 말하면 된다. | 매주 금요일, 총 10회, 수강료 20만원

KT&G 상상마당 아카데미 홍대에는 술집도 카페도 있고, 상상마당도 있다. ‘Art for life, Art of life’란 기치아래 생겨난 복합문화공간 상상마당은 홍대의 랜드마크가 된지 오래. 4층에 자리 잡은 아카데미에는 상상력과 창조력을 자극하는 인문학, 글쓰기, 문화예술 강좌가 마련돼 있다. 올 여름방학에는 홍대 앞에서 서식하면서 마음껏 끼를 발산해보자.

추천강좌

제자백가, 내 마음의 정치학, 7월 1일 개강, 수강료 20만원

청춘의 고전, 6월 18일 개강, 수강료 5천원

위치 홍대입구역 9번 출구에서 주차장 골목으로 들어가서 수노래방 옆

홈페이지 http://www.sangsangmadang.com/academy Inspiration 작란의 시 난장 | 강사 정한아 | 문지문화원 사이 시를 읽으면서 시인의 숨결을 느끼고 언어의 속살을 맛본 이라면, 문지문화원 사이의 강좌에 귀가 솔깃해질지도 모르겠다. 문지문화원 사이에서는 ‘작란’ 동인 4명의 시인이 2주 동안 이론과 시 창작을 강의한다. 시인들의 개성은 강의 방식에도 오롯이 묻어난다. 오은 말놀이를 좋아해 언어유희를 즐겨하고 서효인은 문화나 정치에 관심에 많다.

이날은 정한아 시인의 순서였다. 먼저 수강생들이 미리 써온 시를 읽었다.

주제는 각자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일을 시로 묘사하기. 수강생들의 단단한 필력에 흠칫 놀랐다. 전공이 국문학인 에디터, 순간 긴장했다. 누군가는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에게 무자비하게 맞은 기억을 되살려냈고 누구는 호스피스 봉사활동에서 죽음을 목격한 경험을 썼다. “다들 가장 충격적인 사건을 써온 건가요?” 시인이 물었다. 기교에 의지한 시가 아니라 섬세하게 감정을 다루는 것이 시작(詩作)의 출발점이라 이런 과제를 냈단다. “시는 정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시인의 믿음처럼 수강생들은 자신의 상처를 부풀리거나 없애버리려 하지 않는 법을 배웠을지도. <작란의 시 난장>은 ‘무조건 즐거움을 표방'한다니 작란(作亂)과 함께 작심하고 써보자. | 매주 목요일, 총 10회, 수강료 20만원

문지문화원 사이 출판사 문학과 지성사가 설립한 사이는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강좌뿐만 아니라 세미나, 심포지엄, 워크숍, 전시 등을 다채로운 활동으로 대중과 소통한다. 출판사가 운영하는 대안교육공간답게 시인 황병승, 김소연, 소설가 한유주 등 작가들의 강좌가 많이 열리는 것이 특징이다.

위치 신촌역 8번출구 홍대방향으로 직진. 신촌교회 건너편 ‘간판을 연구하는 사람들’ 옆 건물

홈페이지 http://saii.or.kr Infinite 크로스오버 인문학 | 강사 최정우 | 아트앤스터디 인문숲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처럼 “이거다” 싶었다. 크로스오버 인문학이라니. 인문 숲의 크로스오버 인문학은 뻐근해질 정도로 머리를 팽글팽글 돌려야한다. 대략 뇌의 rpm이 최대치에 달할 즈음, 기존의 사유를 전복하는 새로운 사유가 생겨난다.

강사 최정우가 싫어할 법한 생각은 대략 이렇다.

1. 폭력은 싫다. 비폭력만이 살길이다.

2. 서양철학을 일목요연하게 요약 ․ 정리해 마스터하겠다는 심보

일단 2부터. 그는 단순하게 정리되는 철학에 반감을 갖는다. 이걸 두고 떠먹여주는 ‘이유식 인문학’이라고 부를 정도다. 그는 “안온하게 내재화하는 것이 아니라 이론과 철학을 서로 충돌시켜보고 불협화음에 귀를 기울여보자”고 제안한다. 그래서 강좌의 부제도 '이론의 교배와 창궐을 위한 불협화음'이다. 개념을 비틀고 쪼개서 좌우로 흔들어 보고 다른 개념과 접목시키는 방법은 그의 전매특허다. 이제 1을 보자. 그는 보편적이지 않은 것에서 보편을 끌어낸 칸트와 유물론의 비판에서 진정한 유물론을 구상한 맑스, 제도와 협소한 의미의 정치의 영역에서 벗어난다. 정치적이지 않은 것에서 정치성을 새롭게 규정한 랑시에르의 테제를 추출해 폭력에 적용한다. “우리는 폭력에 비폭력으로 대응해야한다는 생각에 익숙하지만 이 사유를 밀어붙였을 때 우리는 항상 막다른 골목에 부딪히게 된다.” 그는 폭력에 대한 글쓰기 역시 객관적인 상위의 시각을 유지하거나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두 개의 선택지 중 하나의 선택지를 고르길 주저하는 까닭은 선택자체가 선택불가능성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강의를 듣는 사람이라면 이렇듯 무한하게 확장된 사유에 감탄하고, 그가 실은 기타리스트라는 반전에 또 한 번 놀란다. | 매주 월요일, 총 8회, 8만원

아트앤스터디

아트앤스터디는 명실 공히 온라인 문화예술 교육 포털이라고 부를 만하다. 가장 방대하고 세분화된 인문학교육 아카이브를 자랑한다. 진중권과 이택광의 강의를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온라인으로 들을 수 있다. 고등학교 시절 ‘인강의 추억’이 싫다면 인문 숲에서 오프라인 강의를 이용해볼 것. 오프라인 강좌 수강 시 온라인 강좌 무료 서비스, 50% 패키지 할인, 실시간 라이브 중계 등 폭넓은 혜택을 준다.

위치 홍대입구 1번출구 직진, 패밀리마트에서 좌회전 후 직진

홈페이지 http://www.artnstudy.com

강사 강신주(철학박사) | 철학과 놀기 (점퍼를 입은 에디터를 빤히 보며) 안 덥나?

Q. 안 덥다. (웃음) 왜 조이스와 카프카를 택했나? 어려운데.

쉽게 읽히면 우리 시대를 넘어간 거다. 조이스와 카프카는 거울과 같다. 조이스와 카프카의 작품에서 우리를 발견할 수 있다. 망가지고 추한 모습까지도 비쳐준다.

Q. 수강생 중엔 주부도 있고 직장인도 있다.

강의를 듣고 싶어서 온 사람들이라 깨우치는 속도도 빠르다. 이들은 인문학을 자기 고민으로 끌어안는다. 인문학은 주어가 ‘나’다. 자신의 사유를 해야 된다.

Q. 사람들이 왜 인문학을 찾는 걸까?

사회가 사람들을 돌보지 않으면 자신이 스스로를 돌본다. 전쟁 때 인문학이 발달하지 않았나. 교양의 인문학이 아니라 생존의 인문학이다.

Q. 철학은 무엇인가?

우리는 자본이 만들어놓은 흐름에서 태어나서 물에 떠내려가듯 휩쓸려간다. 철학은 일종의 멈춤, 정지에서 시작된다. 자기대로 사는 거지. 흉내 내거나 길들여지는 게 아니고.

Q. 뒤풀이도 하나?

물론. 지난 강좌 마지막 수업 땐 성상제에 가서 다 같이 은하수를 봤다.

이번에는 바다에서 일출을 볼까 생각 중이다.

수강생 이슬아(고려대 법학과 06학번) | 작란의 시 난장

Q. 사법시험에 합격했다고 들었다.

아직 학기가 남았다. 연수원은 학교를 마치면 들어갈 생각이다.

Q. 어쩌다 듣게 됐는지?

시에 관심이 있어서. 홈페이지에서 보고 신청했다.

Q. 평소에도 인문학 강좌를 자주 듣는 편인가?

찾아다니면서 듣는다. 전에는 철학수업을 들었다. 수유 앤 너머에서도 들었고 다중지성, 철학아카데미 등 여러 군데서 들었다.

Q. 전공이 법인데 의외다. 시인으로 등단할 건가?

등단까지는 아니고. (웃음) 인간을 이해하는 판사가 되고 싶다. 판사는 남의 인생을 좌우하기도 하고 예민한 문제에 대해 가치판단을 내려야하잖나. 판단을 내리기엔 어리다고 생각해서 인문학을 배운다.

Q. <작란 시 난장> 강좌의 매력은?

일단 선생님이 네 명이나 된다는 점. (웃음) 매번 뒤풀이를 해서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 인원도 적고 사람들과도 교류할 수 있어서 인간적이다.

tip. 인터넷 서평꾼이자 《로쟈의 인문학 서재》의 저자 이현우가 추천하는 인문학 도서

“추천도서는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며 떨떠름해하는 그에게 졸라서 물어봤다. 인문학게이지를 상승시킬 인문학 도서열전. 단계별로 살펴보자.

인문학 입문 느낌의 공동체

신형철 저 | 408| 문학동네 | 1만 3천원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첫 산문집.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신문과 잡지에 연재했던 짧은 글을 묶었다. 저자가 만난 시인과 시집, 소설, 영화 책에 대한 감상이 아름다운 문체로 그려졌다. 강정, 이병률, 문태준, 진은영 등 시인들의 시와 세계문학 고전까지 소개돼있어, ‘책을 읽도록 해주는 책’이다.

인문학 중급 세계공화국으로

가라타니 고진 저 | 236 | 1만 6천원 가라타니 고진은 인문학계의 ‘무라카미 하루키’라고 불릴만큼 철학, 역사, 건축 다방면의 저작을 쏟아내는 문예평론가다. 이 책은 고등학생이나 일반인이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쓰였다. 고진의 자본=네이션=국가 도식 너머 새로운 세계공화국의 패러다임에 귀기울여보자.

인문학 고수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

도스토예프스키 저 | 총3권 | 각 9천원

고수의 경지 치곤 뜻밖이라고? 그러나 고전치고 이 작품을 완독한 사람은 드물다는 사실. 누구나 작품성에는 동의하면서도 선뜻 작품에 대해 논하기 힘든 이유다. 로쟈는 러시아 전공자답게 도스토예프스키의 사상과 철학을 집대성한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을 추천해줬다. “분량으로 따지면 고수 격이에요.”

<For Tomorrow’s Leaders 캠퍼스헤럴드(http://www.camhe.com)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