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죽음의 계곡 (33)
글 채희문/그림 유현숙
초특급으로 예산을 정하고 전지훈련에 따라갈 수행원 두 명을 선발하자 더 이상 신희영이 할 일은 없었다. 전지훈련에 필요한 나머지 잡다한 일은 이제부터 수행원들에게 떠맡기면 될 터이니 출발 전까지 쇼핑이나 할 요량이었다.
추운 날, 더운 날, 비오는 날, 맑은 날… 무려 6개월간이나 해외에서 골프를 치려면 날씨에 따라 패션을 리드하는 여러 종류의 골프복이 필요치 않겠는가. 더구나 정신적인 연인 한승우, 몸 친구인 강준호와 더불어 떠나는 여행이니 섹시코드에 맞춘 언더웨어도 수십 벌 쯤 구입해야 할 입장이었다. 어떤 형태의 언더웨어가 좋을까? 와이어리스 브라? 티팬티? 에그그, 티팬티는 좀 망측스럽지 않을까?
“에그, 답답해. 한솜이 휴학계부터 제출해야지요. 휴학이 확정 돼야 항공스케줄을 짜고, 호텔을 예약할 거 아니겠어요? 그리고 비자 발급 받는데 웬 서류들이 이리 많아? 미국 체류기간이 3개월 미만일 땐 비자가 필요 없잖아? 차라리 하와이엔 3개월 만 머물고 캐나다나 멕시코로 옮길 수 있도록 스케줄을 잡아 봐요. 일 처리를 맡기면 좀 제대로 해야지, 요령껏 말이야.”
신희영은 사사건건 수행원들에게 짜증을 부렸다. 왜냐고? 물어보나 마나 한솜이 때문이었다. 그 계집애는 어쩌자고 전지훈련에 까지 다라 나서겠다는 것인지… 자칫하면 한승우, 강준호를 동반한 ‘더블 허니문’이 눈치나 보는 여행으로 전락하게 될 것을 두려워하는 까닭이었다.
“한솜아, 너는 차라리 혼자서 유럽 배낭여행이나 다녀오는 편이 어때? 유럽 여행이야말로 낭만적이지 않을까?”
“싫어요. 전지훈련에 따라갈 거야.”
“거길 따라가 봐야 고생보따리일 뿐이야. 남들 골프치고 훈련 받는 동안 넌 뭐 할 건데? 선수들 뒷바라지나 해줄래?”
“어쨌든 난 결정했어요. 전지훈련에 따라갈 거야.”
신희영은 끌탕을 했다. 차라리 한승우를 둘 사이에 앉혀놓고 결투라도 벌일 수 있다면 속이 시원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모녀간에 한 남자를 놓고 결투를 벌인다는 생각이 가당키나 할까?
‘엄마는 행복하게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거든? 그러니 저 남자를 내게 다오. 너는 앞으로 연애할 기회가 엄청나게 많잖아.’
‘무슨 소리예요? 엄마는 젊어서부터 많은 연애를 해봤잖아요? 하지만 나는 처음이니까 저 남자는 내가 차지해야만 해요.’
어쩌면 신희영과 유한솜은 이렇게 생각하며 서로 버티는 중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자식 이기는 부모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 신희영은 한솜이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두 손을 든 셈이었다. 그러니 애꿎은 수행원들에게 짜증이나 부릴 수밖에.
“엄마, 이 수영복 어때요? 어울려?”
유한솜은 가슴가리개가 손바닥만이나 한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채 거울 앞을 떠날 줄 몰랐고, 그럴 때마다 신희영은 퉁명스럽게 맞받아치곤 했다.
“적어도 B컵은 돼야 그런 수영복이 어울리지. 계란 프라이 주제에…”
“엄마!”
이런 식으로 신경전을 벌이는 동안 일주일이란 세월이 후딱 지나갔고, 그들은 각자의 트렁크에 각자의 짐을 싸들고 드디어 대망의 전지훈련에 합류하게 되었다. 자식이 웬수지… 신희영은 공항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왕 회장님, 어서 오세요. 우리 팀원들 모두 저쪽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공항에 내리자마자 처음 맞은 사람이 한승우였건만 그녀는 어떤 호칭을 써야할지 부터 난감하기만 했다. 한솜이만 옆에 없다면 당장에 ‘반가워요 한 군.’ 하며 손을 부여잡았을 테지만, 기껏 ‘반가워요 한 실장님’ 하면서 고개를 숙여 인사할 따름이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