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준의 안보 레이더] 한일관계 재구축의 비단주머니
올해 들어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에 발신한 메시지에는 양국 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강조하는 대목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3·1절 기념사는 과거에 발목 잡혀 있을 수 없다면서 “양국의 협력과 미래 발전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양국이 국교정상화 이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공통 가치를 기반으로 경제성장을 함께 이뤄왔다고 평가하면서 “양국 현안은 물론 코로나와 기후위기 등 세계가 직면한 위협에 공동 대응하기 위한 대화의 문을 항상 열어두고” 있다고 언급했다. 불과 2, 3년 전만 해도 대통령 연설에 나타난 대일 인식은 비판적이거나 공격적이라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한·일 관계가 악화되던 2019년 광복절 경축사는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국가목표로 제시하면서 일본의 부당한 수출 규제에 맞서 책임 있는 경제강국을 향한 길
2021.12.22 11:32[박영준의 안보 레이더] 냉전의 기억에 비춰 본 21세기 미중관계 해법
남중국해와 대만 방면에서 중국의 군사력 투사활동이 전례 없이 증대되고 있다. 북해와 동해함대 소속 중국 해군 함정들이 빈번하게 합동 해상훈련을 실시하면서 동남아 국가들의 긴장을 고조시킨 지 이미 오래다. J-16 전투기나 H6-K 전폭기 등 중국 공군 전력들은 최근 분리 독립 가능성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대만 인접 공역에 대한 위협적 비행을 실시하고 있다. 역사학자 닐 퍼거슨은 이 같은 상황하에 주저 없이 미-중 간 신냉전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단언한다. 이와 달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등은 중국의 전체주의를 경계하면서도 미-중 관계를 신냉전이라 부를 수 없다며 양국 간 기후변화나 코로나19 대응 등 협력해야 할 영역이 많다고 얘기한다. 현재 미-중 관계를 신냉전으로 규정하든, 전략적 경쟁과 협력이 병존하는 관계로 호칭하든 초강대국 간 경쟁이 격화되면 그 사이에 처한 한국 같은 나라는 곤혹스럽지 않을 수 없다. 21세기 미-중 관계가 극단적인 결말을 맞지 않기 위해서는 당사국
2021.11.17 11:36[박영준의 안보 레이더] 칼 빈슨 같은 정치가를 기다린다
미국이 보유한 10여척의 항공모함은 주로 위대한 대통령이나 해전사에 빛나는 전공을 세운 제독의 이름을 따라 명명된다. 일본 요코스카를 모항으로 하는 제7함대 소속 항모 로널드 레이건이나 2024년 취역 예정인 존 F. 케네디가 그렇다. 현존 최대 항모인 니미츠도 해전사상 빛나는 수훈을 세운 동명의 제독을 기린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인도·태평양 해역에서 활발하게 활약하는 항모 칼 빈슨은 예외적이다. 대통령도 아니고 전쟁사상 용명을 날린 해군 제독도 아닌데 왜 미국은 1982년 취역한 네 번째 원자력 추진 항모에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정치인의 이름을 헌정했을까. 칼 빈슨은 조지아주 출신 정치인으로 1930년대 하원 해군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1930년대 초반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선택한 국제고립주의 기조 속에 대공황 극복을 위해 분투하고 있었다. 그러한 시기 칼 빈슨 의원은 1920년대 초반 영국 및 일본 등과 합의했던 워싱턴 군축조약의 상한선에도
2021.10.13 11:35[박영준의 안보 레이더] 美-中 인도·태평양지역 대규모 군사훈련과 한국
지난달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과 중국이 각각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미국은 한국에서 축소된 규모의 도상 한·미 연합훈련을 실시했지만 인도·태평양 해역에서는 하와이에 자리한 인도·태평양 사령부 주도로 일본, 호주, 영국 등과 함께 대규모 연합훈련을 실시했다. 동시에 유럽 방면의 제6함대, 그리고 아시아 방면의 제7함대 전력이 참가한 가운데 유럽의 흑해와 지중해, 아시아의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해역에 걸쳐 1981년 이래 최대 규모인 LSE(Large Scale Exercise) 훈련도 실시했다. 중국도 이에 대응해 남중국해의 하이난과 서사군도 해역에서 남부전구가 주도하는 합동훈련을 실시했고, 동부전구 주도 하에 타이완 남서 및 남동방면에서 해군과 공군의 합동 실탄훈련을 진행했다. 특히 중국 인민해방군은 타이완 방면 훈련이 타이완 통일전쟁을 실시할 경우 미국을 대상으로 한 훈련임을 이례적으로 밝혔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에 따르
2021.09.01 11:42[박영준의 안보 레이더] 강철부대 뛰어넘는 ‘강철군대’ 만들기
육군 특수전사령부와 제707특수임무단, 군사경찰특임대(SDT), 해군 해병대수색대, 특수전전단(UDT), 해난구조전대(SSU) 등 훈련 강도가 세기로 정평이 난 특수부대 출신 예비역들이 실전 같은 상황을 경연하는 방송이 화제다. 현역을 떠났지만 고난도 훈련을 펼치면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패배가 확정됐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감동을 준다. 우리가 처한 안보 환경은 ‘강철부대’의 훈련 상황을 뛰어넘는 도전적 요인들로 가득하다. 북한은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의 비핵화 약속에도 핵 능력 및 그 운반 수단으로서의 미사일 능력을 증강하고 있다. 남북한 합의에 따라 건설된 개성공동연락사무소를 파괴했고, 북한 지도자는 지난 1월 당대회에서 핵무력 증강 방침을 재천명하기도 했다. 중국은 2050년까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첨단 강군을 건설하겠다는 목표하에 항공모함과 전략폭격기 같은 전력을 증강하고 있다. 훈련 범위도 남중국해와 동중국해는 물론 대
2021.06.23 11:27[박영준의 안보 레이더] 쿼드와 인도·태평양 콘서트 구상
국제정치에서는 한순간의 외교적 선택으로 말미암아 국가의 흥망성쇠, 나아가 명운이 갈리는 일이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 특히 목표와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이 국제 협력체를 형성할 때 참가 여하가 해당 국가의 국제적 위상을 결정짓는 경우가 적지 않다. 1941년 8월,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 대서양 헌장을 발표했다. 전체주의국가들에 대한 대항을 선언한 헌장에 동조한 국가들은 당시 독일과 대적하던 소련과 이미 망명정부를 구성했던 프랑스를 포함해 10여개국에 불과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국의 승전으로 귀결된 이후 대서양헌장 참가 국가들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지위를 점하는 등 국제질서에서 주역 위상을 유지하게 됐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이 전후 국제사회로부터 교전국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면서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참가하지 못하고, 유엔 가입도 상당 기간 지체됐던 것은 이 시기 국제정치 상황에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없었던
2021.05.12 11:29[박영준의 안보 레이더] 미-중 경쟁시대, 한·미·일 안보협력의 방향
최근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 당국자들이 한·일 및 한·미·일 안보협력 필요성을 언급하는 빈도가 부쩍 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한·일 간 협력이 두 나라 모두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동북아 지역 안정과 공동 번영, 그리고 한·미·일 3국 협력에도 도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취임 후 처음 방한한 미국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한국 외교·국방장관과 2+2 회담 뒤 발표한 공동성명에도 역내 평화와 안보, 그리고 번영을 위해 미래지향적인 한·미·일 3국 협력을 계속하기로 합의했다는 조항이 포함됐다. 지난해 10월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과 우리 측 서욱 국방장관이 워싱턴에서 발표한 한·미안보협의회의(SCM) 공동성명에서도 양측은 한·미·일 3국 간 정보 공유,
2021.03.31 12:04[박영준의 안보 레이더] 전라좌수영이 보여준 국가안보의 자세
일본 유학 시절, 박사논문을 준비하기 위해 에도(江戶)시대 문서들을 읽다가 조선 수군에 관한 흥미로운 구절들을 접한 적이 있었다. 1700년대 작성문서들에서 도쿠가와 시대 사무라이 학자들은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세력이 조선 수군에게 연전연패했던 이유를 따졌다. 그들은 당시 조선 수군이 중앙정부하에 통일된 조직 체계를 갖추고 있었으나 도요토미 세력은 그러지 않아 집중적인 힘을 발휘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최근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다시 정독하면서 이 문제를 생각해봤다. 흥미로운 점은 1592년 왜적 침입 때, 조선 수군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전승을 거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경상좌수영과 우수영은 궤멸적 타격을 당했다. 육상 방어를 담당해야 할 제승방략 체제도 무력했다. 그렇다면 이순신 장군이 지휘하던 전라좌수영만이 예외적으로 연전연승을 거둔 비결은 무엇일까. ‘난중일기’ 전반부 기록, 즉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에
2021.02.24 11:12[박영준의 안보 레이더] 북한 옵서버 요청하더라도 한미연합훈련 활성화해야
한국과 미국이 동맹 조약을 체결한 것은 6·25전쟁 정전 직후인 1953년이었지만 연합군사훈련을 최초로 시행한 것은 1969년 3월부터였다. 그 전 해인 1968년 발생한 1·21사태나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 등 북한의 도발에 대한 억지 능력 강화를 위해 미국 본토에서 1만여명의 지상군 병력을 신속하게 한반도에 전개하는 ‘포커스레티나’ 훈련을 처음 시행한 것이었다. 이후 훈련은 1971년 ‘프리덤볼트’, 1976년 ‘팀스피릿’으로 개칭되면서 연례적으로 시행됐다. 2017년까지 한·미 양국이 시행해온 ‘키리졸브’와 ‘을지프리덤가디언’은 이들을 계승했다. 그간 굳건한 한·미 동맹의 상징이자 한반도 안보와 평화를 지탱해온 한 축으로서 역할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은 한국 이외에도 유럽 및 아시아 지역 주요 동맹들과 연례적인
2021.01.20 11:25[박영준의 안보 레이더] 바이든 시대 한미동맹의 설계
이달 초 리처드 아미티지 전 미국 국무부 부장관과 국방부 차관보를 지낸 조셉 나이 하버드대 교수가 공동 주도한 연구팀이 ‘미일동맹 2020’ 보고서를 공표했다. 마이클 그린, 빅터 차, 실라 스미스, 로버트 매닝 등 미국 내 대표적인 아시아 정책통도 참가한 보고서는 일본이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과 대등한 동맹 파트너가 됐음을 선언하고 있다. 그러면서 향후에도 미·일 동맹이 중국에 대한 경쟁적 공존, 북한에 대한 억제와 봉쇄를 공동 실시해야 하며 경제·과학기술 분야에서도 협력을 심화하면서 특히 중국에 대응해 5G 등 분야에서 국제적 표준을 정립하는 노력을 전개해야 한다고 제언하고 있다. 아미티지와 나이는 20년 전인 2000년에도 미·일 동맹에 관한 보고서를 공표한 바 있다. 당시에는 일본이 유럽에서 영국만큼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중요한 국가가 되고 있으나 미·일 동맹은 미·영 동맹 수준으로 발전되고
2020.12.23 1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