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과 중국이 각각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미국은 한국에서 축소된 규모의 도상 한·미 연합훈련을 실시했지만 인도·태평양 해역에서는 하와이에 자리한 인도·태평양 사령부 주도로 일본, 호주, 영국 등과 함께 대규모 연합훈련을 실시했다. 동시에 유럽 방면의 제6함대, 그리고 아시아 방면의 제7함대 전력이 참가한 가운데 유럽의 흑해와 지중해, 아시아의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해역에 걸쳐 1981년 이래 최대 규모인 LSE(Large Scale Exercise) 훈련도 실시했다.
중국도 이에 대응해 남중국해의 하이난과 서사군도 해역에서 남부전구가 주도하는 합동훈련을 실시했고, 동부전구 주도 하에 타이완 남서 및 남동방면에서 해군과 공군의 합동 실탄훈련을 진행했다. 특히 중국 인민해방군은 타이완 방면 훈련이 타이완 통일전쟁을 실시할 경우 미국을 대상으로 한 훈련임을 이례적으로 밝혔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에 따르면, 훈련은 최초 단계에서 타이완 방면 전자전과 사이버전을 실시해 주요 전략시설들을 무력화하고, 다음 단계에서 타이완 군사기지와 항만에 대한 미사일공격을 가하고, 함선과 전투기로 제해권과 제공권을 장악하는 시나리오로 진행됐다. 타이완의 방공능력 및 지상기지를 무력화시킨 이후 마지막 단계에서는 상륙작전을 실시할 것이다. 지난 7월 인민해방군 4개 집단군과 해군·해병대가 참가한 합동 상륙작전훈련은 이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추정된다.
통상 군사훈련은 실제 전투 상황을 가정한 시나리오하에 실시되기에 훈련 양상을 통해 그 국가의 군사 전략을 추정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이 경쟁적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실시하는 훈련 양상을 볼 때 중국은 자신들이 핵심 이익으로 설정한 타이완이나 남중국해 도서들을 무력으로 확보하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고, 그에 대응해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현상 유지를 위해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과 연합 대응태세를 현시하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은 중거리핵전력조약(INF) 탈퇴 이후 중국 견제를 위해 중거리미사일을 인도·태평양 역내에 증강 배치하려는 동향을 보인다. 중국 글로벌타임스의 후시진 주필은 미국의 대중 전략적 봉쇄에 대응해 중국이 핵탄두를 늘려 동풍-41 등 대륙 간 탄도미사일과 쥐랑 계열 수중발사 탄도미사일에 탑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미중 경쟁이 핵 및 미사일 전력과 같은 전략무기경쟁으로까지 파급되는 양상이다. 그레이엄 엘리슨 하버드대 교수 등이 이미 지적했듯이 타이완이나 남중국해 도서에서 미-중 간 우발적 군사 충돌이 비화될 가능성도 작지 않다.
여기에서 우리는 미-중 간 전략적 경쟁이 한반도 안보에 미칠 영향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우리나라는 기존 남북관계 합의를 도외시하며 핵 및 미사일 전력 증강의 길을 포기하지 않는 북한과 직면하고 있다. 그에 더해 미-중 간 우발적 충돌 가능성과 군비경쟁 가능성을 포함한 전략적 경쟁은 또 다른 중대한 도전이다.
그런데 현재 대선 국면에서 후보들의 정책공약을 살펴보면 이 같은 이중적 안보위기 상황을 진지하게 검토하는 모습을 찾기 어렵다. 후보들은 경쟁적으로 복지나 지방발전정책 등 공약을 제시하지만 북한의 핵과 미사일 증강이나 미-중 간 전략적 경쟁에 직면해 안보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 대해서는 별로 고민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국가지도자에게 가장 요구되는 자질 가운데 하나는 국가안보에 미칠 위협들을 예상하고 그에 대응해 국방과 외교를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에 관한 식견과 비전이 아닐까.미래의 국가지도자들이 한반도가 처한 이중적 안보위기 상황에 대해 국가안보를 견지하기 위한 어떤 정책 비전을 제시할 것인가를 향후 정책토론에서 주시하고 싶다.
박영준 국방대 안보대학원 교수